사랑에 관하여 -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과 대표 단편들 펭귄클래식 70
안톤 파블로비치 체홉 지음, 안지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언젠가 누가 그랬던가. 러시아 소설에서 등장인물의 이름만 영어식 이름으로 고쳐도 책이 반은 줄어들 거라고. 확실히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은 기억하기가 쉽지 않다. 작년에 그렇게 애를 써가며 읽었던 <안나 카레니나>에서 안나의 남편 이름이 안드로비치였던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서 선뜻 러시아 소설은 도전하기가 쉽지 않다. 수년 전에 산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은 어디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러시아 문학 특유의 만연체는 어떻고? 하지만, 여기 오늘 이야기할 안톤 체호프는 적어도 그렇지 않다. 아니 톨스토이나 도스토옙스키 같은 작가와 달리 그의 스타일은 간결 그 자체다. 게다가 장편보다는 단편에 강하다고 하니 부담 없이 도전해 보련다.

러시아 19세기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중의 한 명으로 당당하게 손꼽히는 안톤 체호프의 <사랑에 관하여>에는 모두 9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굴>은 거리에 구걸하러 나선 아버지를 보는 아들의 시선을 좇는다. 가장이라는 족쇄는 생존을 위해 거리에 나서게 하지만, 선뜻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도움을 청할 배짱도 없다. 그가 쭈뼛쭈뼛하는 사이에 허기를 참지 못한 아들은 굴을 먹겠다고 덤빈다. 실크해트를 쓴 신사들은 아들을 데리고 주점에 데려가고, 굴을 먹을 줄 모르는 아들은 껍질째 굴을 먹는다. 가난과 부르주아의 가난에 대한 경멸이 단편적으로 읽힌다.

다음에 등장하는 <진창>은 제목 그대로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미수금을 받기 위해 수산나 모이세예브나라는 유대인 여성을 찾아간 주인공은, 그녀에게 결혼자금을 융통하려다 그녀의 마력에 그만 빠져 버리고 만다. 유럽 사회에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의 흔적이 엿보인다. 유대인 다음으로 프랑스인과 러시아인을 좋아한다는 그녀의 말에서는, 모국어 대신 프랑스어를 교양의 척도로 삼은 러시아 귀족의 허영도 잠깐 스치고 지나간다. 여자와 ‘진창’에 빠져 버린 중위의 형 알렉세이 역시 마찬가지다. 수산나의 마력에 빠져 귀대마저 미룬 중위를 그녀의 집에서 맞닥뜨린 순간의 낭패란!

반유대주의와 여성에 대한 비하는 <로실드의 바이올린>에서도 반복된다. 장의사 야코프는 모든 것을 자본주의적 관념에서 수치화하고 계량화한다. 자신이 못한 일조차도, 손실로 생각하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자본주의에 물든 남자다. 그렇게 돈타령을 해대면서도 정작 수십 년을 함께 한 부인에게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러시아말을 서툰 유대인 로실드를 표현하기 위해 경음으로 번역한 낱말들이 인상적이다. 부인 마르파의 죽음을 앞두고 관을 만들면서도 “2루블 40페코이카”라고 기록하고 한숨을 내쉬는 야코프의 모습은 차라리 서글프기까지 하다. 도대체 뭣 때문에 강아지도 먹지 않는 돈에 그렇게 매달리는지. 체호프는 서구 자본주의의 유입으로 전통 가치를 상실한 러시아 민중의 삶을 그리려고 했던 걸까.

<상자 속의 사나이>에서는 달뜬 사랑 이야기로 전개되는 듯하다가 냉큼 뒤통수를 치는 반전이 기다린다. <산딸기>에서는 자신이 평생 꾸던 꿈을 이루지만 막상 그 행복의 맛은 기대와는 다르다는 어쩌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의 씁쓰름함을 직접 들려준다. 개인적으로 <사랑에 관하여>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은 역시 <검은 수사>라고 생각한다.

<검은 수사>를 읽으면서 얼마 전에 읽었던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등장하는 위버멘시가 떠올랐다. 주인공 코브린은 우연히 만난 ‘검은 수사’가 속삭인 신의 선민, 영원한 진리 그리고 인류의 빛나는 미래에 대한 감언이설에 자극받는다. 그 정도 되는 인물이라면 누구나 다 그런 경지에 다다르고 싶은 걸까? 현실을 초월한 광기에 사로잡힌 코브린은 아리따운 아내와 장인의 보살핌도 마다하고 ‘선택받고 재능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에 검은 수사와의 재회만을 꿈꾼다. <검은 수사>를 읽으면서, 코브린이 만난 검은 수사의 정체가 어쩌면 “메피스토펠레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체호프는 검은 수사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에서 정말 놀라운 묘사를 선보인다. 만약 이 장면을 영화화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 공포의 대상이 아닌, 인간에게 놀라운 우주의 비밀을 전달한 메신저에 대한 섬망(譫妄)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부질없는 희망일진 모르겠지만, 다른 러시아 문학도 체호프의 책처럼 간결하면서도 재기 넘치는 해학을 담고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아무래도 깊이보다는 스타일이 더 좋은 모양이다. 어쨌든 체호프와의 첫 만남은 성공적이었다.

[뱀다리] 표지에 실린 칸딘스키의 <모스크바의 여인>이라는 그림에 보이는 시커먼 부분의 정체를 알고자 인터넷을 뒤졌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가 없었다. 심지어 책 표지의 그림과 원본은 달라 보였다. 검은 칠이 된 부분의 정체가 너무 궁금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