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에서 온 아이 펭귄클래식 21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전유경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어려서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 그 시절에는 주로 동화를 즐겨 읽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기억나는 작품으로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 <소공자> 그리고 <소공녀>다. 지금처럼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지 않아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때 조금이라도 기록을 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왜 뜬금없이 오래전 독서 타령을 하냐 하면, 지금 막 읽은 책이 바로 어른들을 위한 동화 모음집이기 때문이다.
 
당대에 소설가보다는 극작가로 필명을 날렸던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 <별에서 온 아이>를 읽었다. 여기저기서 오스카 와일드의 이름을 듣고, 심지어 그가 조연으로 등장하는 미스터리물도 읽었지만 정작 오스카 와일드가 직접 쓴 작품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 그건 아니다. 모두 9편으로 구성된 <별에서 온 아이> 첫 번째로 등장하는 <행복한 왕자>를 읽었었구나 다만 그게 그의 작품인 줄 몰랐을 뿐.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국 옥스퍼드에서 수학한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문학 세계보다, 동성애와 송사로 관련된 스캔들로 더 유명한 셀러브리티였다. 극작가로서의 짧은 성공, 친구 아니면 적이라는 관계 공식, 오히려 자신에게 독이 되었던 송사로 2년간의 강제 노동형을 선고받고 육신이 만신창이가 된 상황에서 외롭게 세상을 뜬 외로운 영혼이었다. 게다가 그의 작품은 죽고 난지 한 세기가 지나서야 조금씩 인정받고, 재평가가 이루어졌다. 하긴 거의 유명한 예술가들의 삶이 그렇지 않았던가. 고흐가 어디 살아서 자신의 그림 값을 제대로 받았던가 말이다.
 
<별에서 온 아이>는 19세기 말에 출간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와 <석류나무 집> 두 편의 단편모음집을 한데 묶은 책이다. 잊고 있던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가운 <행복한 왕자>가 일번 타자로 등장한다. 고백하건대 <행복한 왕자>가 오스카 와일드의 작품이란 걸 처음 알게 됐다. 스토리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작품인데 말이다. 초반에 인상적이었던 건, 세상에 ‘행복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어서 다행이라는 말과 아이들의 꿈마저도 용납하지 않는 제도 교육을 담당한 수학 교사의 말이었다. 놀랍군!
 
철새인 제비인 이집트 행을 꿈꾸지만, 번번이 불쌍한 이웃을 돕자는 행복한 왕자의 말에 주저앉는다. 그래서 왕자가 지닌 루비, 사파이어 그리고 금박을 드레스 가공업자, 작가지망생, 성냥팔이 소녀 그리고 굶주린 아이들에게 물어다 주는 메신저 역할을 맡는다. 이렇게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나눠주자 행복한 왕자는 졸지에 “불쌍한 왕자”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것의 나눔을 통해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된 왕자를 불쌍하다고 부를 수 있을까.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던 19세기 말, 빅토리아 시대에 대한 작가의 적나라한 풍자다.
 
이런 왕자를 보다 못 한 제비는 자기가 이집트에 가서 보석을 가져오겠다고 제안한다. 아, 원작에 이런 제안이 있었구나. 나름 현실적인 이야기인데 왕자는 당장 불우한 이웃을 돕느라 제비의 제안을 가볍게 물리친다. 결말에서는 다분히 기독교적 색채를 보이면서도, 내세의 약속보다는 현세를 중시하는 작가의 생각이 반영된 느낌이 들었다.
 
<자기만 아는 거인>과 <별에서 온 아이>는 인류 구원자로 이 세상에 강림한 예수 그리스도를 떠올리게 한다. 아름다운 정원을 홀로 독차지하려는 이기적인 거인은 자신의 정원에서 마음껏 아이들이 뛰노는 것이 아름다운 정원의 비밀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다. 그런 깨달음은 정원을 둘러싼 담장을 허물어 버리고 평안한 안식의 세계로 거인을 인도한다. 별에서 온 아이는 자신의 빼어난 외모로 자기밖에 모르는 삶을 산다. 그러다가 자신을 아들이라고 주장하며 찾아온 거지 여인을 매몰차게 박대했다가, 나락으로 떨어진다. 자신을 구원할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한 우매한 인류에 대한 패러디일까. 도시의 왕이 된 별에서 온 아이가 3년 만에 세상을 떴다는 설정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삼 년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어린 왕> 역시 이상의 두 이야기와 비슷한 궤적을 그린다. 출생의 비밀을 가진 어린 왕은 아름다움에 도취해 있다. 왕위 계승을 앞둔 어린 왕은 대관식 전날, 놀라운 세 개의 꿈을 꾼다. 자신의 대관식에 입을 옷을 만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직공, 왕관과 홀에 사용될 진주와 루비를 캐기 위한 흑인 노예의 희생과 죽음의 신 그리고 탐욕의 신이 다투는 장면에 어린 왕위 계승자는 그만 소스라치게 잠에서 깬다. 그리고 염소지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대관식에 나서겠다는 어린 왕의 말에 주위 신하들은 한목소리로 반대한다.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권력자는 허영과 부도덕함이 필수라는 말로 그를 설득한다. 나사렛의 목수였던 예수 그리스도의 문학적 현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스카 와일드는 정곡을 찌른다.
 
<어부와 그의 영혼>에서도 인어와의 사랑을 위해 자신의 영혼마저도 포기한 어부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어부에게서 억지로 분리된 영혼은 광야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유혹한 사탄처럼 지혜와 재물 그리고 소녀들의 흰 발로 유혹하지만, 어부의 사랑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영혼의 끊임없는 유혹에 흔들린 어부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나게 되지만, 방황하던 영혼이 비로소 안식을 찾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별에서 온 아이>에 실린 9개의 단편은 서문을 쓴 이언 스몰 교수가 말한 사랑과 자제심이라는 공통된 주제로 유기적인 연결체를 형성한다. 동성애라는 19세기 영국 형법으로 처벌된 금단의 사랑에까지 도달했던 오스카 와일드는 ‘꿈꾸는 것이 금지’된 어른을 위한 동화에서 기독교 사상의 바탕을 이루는 사랑에 대해 설교한다. 이런 걸 사랑의 역설[irony]이라고 부르는 걸까? 신의 사랑과 인간의 세속적 사랑이 교차하는 중간계가 조금은 혼란스럽다.
 
한편, 사랑에 버금가는 미덕으로 자제심을 상징하는 중용(中庸)을 오스카 와일드는 강조한다. 사랑과 우정도 지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고래의 진리가 반복된다. <공주의 생일>에서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인지하지 못한 난쟁이의 나르시서스 같은 모습은 파멸의 전주곡이다. 예술의 이기적 속성을 예리하게 짚어낸 <나이팅게일과 장미꽃>에서도 능력 이상의 것을 대가로 요구하는 사랑의 속성을 파헤친다.
 
오스카 와일드와의 첫 만남은 쉽고 평안했다. 지금으로부터 또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다시 만나게 될 <행복한 왕자>는 또 어떻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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