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소녀의 짓궂음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지음, 송병선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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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사랑해, 널 사랑해 나쁜 소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신간 소설 <나쁜 소녀의 짓궂음>에서 주인공 리카르도가 평생을 바쳐 사랑한 ‘나쁜 소녀’에게 수도 없이 반복한 ‘감상적인 싸구려 말’의 본질이다. 2010년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요사 선생은 좌우를 아우르는 자신의 화려한 정치 인생만큼이나 다채로운 리카르도의 연애사와 쿠바혁명 이후 세계적 정치·문화 흐름이라는 다른 두 가지 요소를 소재로 멋진 러브 스토리를 탄생시켰다.

1950년대 페루 미라플로레스에 혜성처럼 나타나 소년 리카르도의 마음을 빼앗아 버린 칠레여자애 ‘릴리’의 존재감은 리카르도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여름의 추억을 남겼다. 조실부모하고 고모와 작은아버지의 후원으로 페루에서 교육을 마치고 평생 빛의 도시 파리에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소망대로 리카르도는 파리에서 통번역가의 삶을 시작한다. 운명의 여신은 칠레여자애에서 게릴라 전사 아를레테 동지로 변신한 릴리를 리카르도에게 파견한다.

사그라지던 잉걸불에서 사랑의 불씨를 다시 찾아낸 리카르도는 파리에서 아를레테 동지에게 자신의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의 감정을 고백하지만, 미라플로레스 시절과 마찬가지로 냉소적인 미소를 날리며 아를레테 동지는 착한 소년의 간절한 소망을 단칼에 거절해 버린다. 미라플로레스에서 맘보춤을 신바람 나게 추던 이래로 나쁜 소녀는 물질적 풍요만이 자신의 행복을 담보해주리라고 굳게 믿어왔다. 그런 나쁜 소녀에게 객지에서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는 리카르도가 성에 찰 리가 없다. 성공의 사다리에 오르기 위해 중혼은 물론이고 거짓 결혼도 마다하지 않고, 남자를 오로지 상류사회로 진출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나쁜 소녀에 대한 리카르도의 맹목적 사랑이 왜 이렇게 미욱하게만 보이는 걸까.

파리에서 외교관 부인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리카르도를 매정하게 거부하고 떠나간 아를레테 동지 아니 로베르 아르누 부인은 이번에는 히피 문화가 판을 치던 영국 런던에서 리처드슨 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주인공 리카르도를 놀라게 한다. 키스와 교태 그리고 특유의 짓궂음으로 무장한 나쁜 소녀를 도대체 어쩔 수 없이 사랑하게 되는 리카르도. 소유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끓어오르는 욕망을 요사 선생은 특유의 문학적 감성이 배인 에로티시즘으로 유려하게 풀어낸다. 동시에 조국을 떠나 소유할 수 없는 욕망의 신기루를 쫓는 리카르도의 발자취 곳곳에 군사독재, 쿠데타 그리고 게릴라 활동으로 정치적 혼란으로 불안정한 페루의 상황을 알려주는 작은아버지의 예시를 심어둔다.

한 때 카스트로의 쿠바혁명으로 사회개혁의 희망을 품었던 청년은 혁명 대신 사랑을 선택하고, 정치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으로 여생을 보내게 된다. 1970년대 히피문화와 반전운동에 대해 특이할 만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그저 청교도적 삶을 살던 청년에게 쾌락의 비밀을 알려주었다는 정도로 서술하는 장면에선, 모 언론에서 요사 선생을 페루의 이문열이라고 지칭한 기사가 떠올랐다.

40년 동안 나쁜 소녀와의 인연으로 만남과 이별 그리고 배신을 반복하는 리카르도의 모습에서 규정할 수 없는 연민하는 마음이 생겼다. 주변인들조차 자신을 농락하는 나쁜 소녀에게서 멀어지라고 충고하지만, 언제나 자신을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시점에 등장하는 그녀를 냉정하게 내칠 수 없는 자신을 잘 알고 있는 리카르도. 어쩌면 그는 소부르주아적인 삶을 살 수 없는 자신의 삶에 폭풍처럼 등장해서 한바탕 헤집고 또 떠나갈 운명을 타고난 나쁜 소녀와의 사랑에 길들었던 건 아닐까? 파멸적 사랑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리카르도는 그녀를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준다.

수십 년간의 세월 동안 미라플로레스, 파리, 런던, 도쿄 그리고 마드리드에 이르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코스모폴리턴적인 러브 스토리의 전형을 보여준 나쁜 소녀는 결국 착한 소년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평생을 거짓말쟁이로 살아온 그녀의 이야기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또 거짓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다만, 칸톨라오 해변에서 만난 나쁜 소녀의 아버지이자 현자로 칭송받는 아르키메데스에게서 들은 이야기에서 그녀의 과거를 유추해볼 따름이다. 나쁜 소녀에 대한 사랑과 증오 사이에서 번민하는 리카르도의 모습이 미련해 보이면서도 또 한편으론 이해도 되는 양가적 감정이 들었다.

<나쁜 소녀의 짓궂음>은 요사 선생의 다른 작품에서 추구해온 포스트모던 스타일의 리얼리즘 성격의 소설과 다른 궤도에 있는 것 같다. 기존의 작품들이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조합한 이야기였다면, 이번 <나쁜 소녀의 짓궂음>은 작가의 직접 체험에 시대를 관통하는 역사적 사건들을 양념으로 삼았다고나 할까. 요사 선생이 만들어낸 우리나라의 자유부인 뺨치는 ‘나쁜 소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난한 운명을 거부하고, 정말 아스트랄한 삶을 추구하는 신여성 전사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온다. 다만, 그 방법론적 각론에는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삶 자체가 한 편의 연극이자 소설 같았던 나쁜 소녀의 인생을 폄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녀 말대로 이렇게 멋진 소설의 소재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이십 대에 영원할 것만 같았던 아름다운 기억의 각인 때문에 착한 소년은 청년, 장년 그리고 중년에 이르는 오랜 시간 동안 한 여자에게 사랑의 충성을 맹세했다.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착한 소년의 40년 순애보와 나쁜 소녀의 짓궂은 냉소에 대한 인내심 부족한 나의 도리질이 그에 대한 답일 것이다. 오랜 사랑의 기다림 끝에 서 있는 애잔함이 참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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