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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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들어오던 전설 같은 동명 영화의 원작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을 읽었다. 이 황홀하고 달콤한 소설이 멕시코 출신의 여류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장편 데뷔작이라니 정말 놀랍다. 순식간에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녀의 전 남편이었던 알폰소 아라우가 감독한 동명의 영화도 보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구할 수가 없어서 아직 못 보고 있다.

소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주인공 티타를 중심으로 해서 22년간의 이야기를 열두 달, 열두 가지 요리에 빗대어 보여준다. 우리의 주인공 티타가 부엌에서 만들어내는 요리에는 인생사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 있다. 고통, 사랑, 분노, 분노 그리고 열정에 이르는 모든 감정이 요리사의 손끝에 실려 음식을 먹는 이들의 심장을 타고 흘러들어, 온몸을 뒤흔든다. 그렇다, 그 정도로 라우라 에스키벨이 그려내는 ‘요리 문학’의 정수는 맵디매운 칠레 고추처럼 강렬했다.

라우라 에스키벨은 소설에서 티타의 어머니 마마 엘레나를 딸의 앞길을 막는 천하의 못된 악당 엄마다. 티타의 가문에는 우습게도, 막내딸이 어머니가 죽을 때까지 결혼하지 않고 봉양해야 하는 가문의 법칙이 있다. 그리고 그 법칙이라는 미명의 형벌은 바로 주인공 티타를 겨냥한다. 그녀가 만난 첫눈에 반한 페드로는 그야말로 살갗을 뚫을 것 같은 뜨거운 정열의 눈길을 티타에게 보내고, 곧바로 청혼을 하지만 별 소용이 없다. 서릿발 같은 청상과부 마마 엘레나의 고집을 꺾을 순 없었다.

그래서 페드로는 차선으로 티타의 맏언니 로사우라와 결혼한다! 페드로는 자기가 죽도록 사랑하는 티타를 곁에서 보고자 그런 끔찍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페드로는 자신의 결정이 주변의 모든 이들을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으리라는 예단은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티타를 데리고 사랑의 도주를 감행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러기에 티타는 너무 어렸거나 아니면 마마 엘레나로부터 세뇌된 인습의 굴레에 철저하게 종속되어 버렸던 것일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이를 고통을 안겨 준 페드로가 야속해지기 시작했다.

요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사랑의 에로티카는 이 휘황찬란한 아우라를 발하는 멕시코 소설의 고갱이다. 티타가 눈물을 머금고 만든 메추리 요리를 먹은 티타의 둘째 언니 헤르트루디스는 자신의 몸에서 타오르는 뜨거운 열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벌거벗은 채 들판으로 달려나간다. 그리고 멕시코 혁명의 풍운아 후안 알레한드레스와 운명적인 만나게 된다. 결국, 여걸 헤르트루디스는 장군이 되어 고향집으로 돌아온다.

티타의 또 다른 남자 닥터 존 브라운은 티타-페드로-로사우라의 삼각 틀에 또 새로운 긴장감을 불어 넣는다. 알렉스라는 아들이 딸린 홀아비 존은 티타를 보는 순간,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거스를 수 없다. 웬 놈의 운명이 이리도 많이 등장을 하는지. 티타는 페드로와 존 사이에서 예상된 갈등을 겪게 되고, 결혼과 불륜이라는 위험한 불장난을 한다. 그녀에게서 페드로라는 존재가 떨어지지 않는 한 그것은 숙명일 것이다.

마마 엘레나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자유를 얻게 된 티타에게 행복의 시간을 도래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페드로의 법적 아내이자 티타의 언니인 로사우라가 이번에는 새로운 장애물로 등장한다. 첫 아이 로베르토를 잃고 두 번째 딸인 에스페란사가 태어나지만, 자기 가문의 법칙대로 에스페란사 역시 자기가 죽을 때까지 봉양해야 한다는 언니의 말에 티타는 그야말로 까무러칠 것처럼 놀란다. 그런 가문의 악습은 자기 대로 충분하지 않은가 말이다.

티타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가부장의 위치에 오르게 된 마마 엘레나와 뜨거운 열정에 못 이겨 나선 길에서 혁명의 대열에 참가한 헤르트루디스와 달리 집 안에서 얌전하게 요리를 하며 자신의 숙명을 곱씹는 티타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티타는 페드로의 사랑에 매달려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가지 못한다는 점에서 입체적인 신여성이라고 부르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결국, 어머니의 반항하고 가출을 감행하지만, 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다시 농장으로 돌아오는 모습에서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캐릭터의 절망이 느껴지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땅이 갖는 의미란 과연 의미일까? 티타는 그 땅의 결실인 다양한 식재료들을 가지고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놀라운 요리들을 만들어낸다. 언니를 바람나게 한 열정의 메추리 요리, 칠면조 몰레, 참판동고 그리고 바람난 언니도 돌아오게 한 디저트 크림 튀김에 이르기까지 티타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요리의 비결이 무얼까 생각해 봤다. 십 년 전에 본 드라마 <맛있는 청혼>에서 주인공 정준이 말한 것처럼 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사람을 생각하면서 만드는 요리라면 짜장면이라도 맛있지 않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갑자기 고소한 토르티야로 만든 타코에 얼음을 갈아 넣은 마가리타 한 잔이 마시고 싶어졌다. 라우라 에스키벨과의 만남은 정말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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