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일야화 1 열린책들 세계문학 136
앙투안 갈랑 엮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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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라비안나이트>에 대해 흔히 잘못 아는 사실 하나. 셰에라자드는 천 일 동안 술탄 샤리아에게 이야기를 해준 것으로 있으나 정확하게 말해서 1,001일 동안이란다. 나도 이번에 열린책들에서 오리지널로 나온 <천일야화>를 접하면서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동안 영국 출신의 작가 리처드 버턴의 <아라비안나이트>가 오리지널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그전에 앞서 프랑스 출신의 앙투안 갈랑이라는 이가 신비롭고 놀라운 환상의 이야기로 가득한 <천일야화>를 집필했다는 것도 덤으로 알게 됐다. 사실, 아마 갈랑이 혼자서 이 많은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으리라. 그리스어, 라틴어 그리고 아랍어에 능통했던 갈랑이 중근동 지방을 여행하면서 남긴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천일 밤의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새로운 창조의 바탕에는 기존의 무엇인가가 자리하지 않던가.

이야기의 시작은 얄궂게도 오쟁이 진 두 명의 남자들의 이야기에서 비롯된다. 샤즈난과 샤리아 형제는 페르시아(꼭 짚고 넘어갈 것이 페르시아는 아랍이 아니다!) 사산조의 왕자이자 술탄으로 만인지상의 자리에서 훌륭한 군주로 칭송을 받았다.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어 보이던 이들에게도 불행의 씨앗이 잉태되고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그들의 왕비들이 어이없게도 은밀하게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분노한 술탄 샤리아는 이 세상의 모든 여성에게 복수하겠다는 일념에 불타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기게 된다. 젊은 처녀를 왕비로 맞아들여 하룻밤을 보내고 어김없이 그 다음 날에는 죽여 버리는 것이다. 아 놀라워라, 한 사내의 맹목적인 복수심은 그칠 줄을 모른다.

이를 보다 못한 대재상의 큰딸 셰에라자드는 술탄의 광기를 잠재우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에 나서게 된다. 나서서 술탄의 왕비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만한 결심을 하기까지에는 단단한 준비가 되어 있을 터, 자신의 동생 디나르자드까지 동원해서 매일 밤 동이 트기 전 무렵에 술탄에게 도저히 헤어날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면서 자신의 목숨을 연장하고 한편으로는 술탄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 어이없는 복수심을 조금씩 누그러뜨린다.

앙투안 갈랑은 프랑스 독자들을 위해 원래 <천일야화>가 가지고 있던 외설적이면서도 잔인했던 부분들을 순화시켰다고 한다. 상인과 정령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천일야화>는 그야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환상과 마법이 어우러진 문학적 상상력의 향연이다. 고전 소설의 영향 탓으로, 다분히 교훈적인 색채를 띠고 있으면서도 그 재미를 잃지 않는다.

셰에라자드의 이야기에 빠진 술탄 샤리아의 심정으로 그렇게 책을 읽었다. 그가 차마 자신의 부인이자 대재상의 딸인 그녀를 죽이지 못한 이유는 오로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너무 재밌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의 연재 이야기에는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 때문에 잠에 졸린 눈을 비비며 천일하고도 하루 동안의 매력 속으로 흠뻑 빠져들었다.

17세기에 쓰인 책이라 그런지 어쩌면 그렇게 죄다 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왕이나 공주 같은 지위를 가진 선남선녀들인지 모르겠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소한 캐릭터의 픽업에 있어서는 최소한 평면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리고 등장하는 이야기에 나오는 모든 터부(taboo)들은 어김없이 깨진다. 다양한 방법으로 제시되는 경고는 하나같이 무시되고, 꼭 대가를 치르게 되는 터부 브레이크(taboo break)가 등장한다. 하긴 그런 금기들은 모두 깨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세계 어느 전설이나 신화에 나오는 금기들이 온전하게 지켜졌던가! <천일야화>도 그것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일야화>의 전개에 있어 재밌는 설정 중의 하나는 셰에라자드의 동생 디나르자드가 해가 뜰 무렵에 꼭 자신의 언니를 깨워 술탄이 그녀의 이야기에 빠지게 한다는 것이다. 만인지상의 위치에 있던 술탄이 왜 만사를 제쳐 두고서라도 그 재밌는 셰에라자드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는지 굳이 밤에만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는지에 대해 의문이 갔다. 그런 독자의 의구심에 대비해서 갈랑은 술탄 샤리아가 항상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다는 교묘한 장치도 설치해 두었다.

책을 읽으면서 셰에라자드의 기가 막힌 이야기 완급 조절능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매일 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술탄을 호기심의 구렁텅이에 몰아넣으면서도 유유자적하게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내기 위해 그녀는 자신의 낮 시간을 충분히 활용했던 건 아닐까? 다음에는 또 어떤 이야기가 튀어나올지 기대와 호기심으로 가득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드디어 신드바드의 대모험이 등장하게 될 2편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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