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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평점 :
열린책들에서 지난 2003년에 작고한 로베르토 볼라뇨의 책들을 전집으로 출간한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 무척이나 기대를 많이 했다. 게다가 버즈북이란 기발한 방법으로 우리에게는 생소한 로베르토 볼라뇨에 대한 마케팅을 하면서 그에 대한 호기심은 증폭됐다. 적어도 나한테는 출판사의 홍보 전략이 먹혀든 것 같다. 게다가 1월 말에 출간예정이라고 했던 전집의 제 1탄 <칠레의 밤>의 출간이 늦어지면서 기다림의 증세는 도를 더해 갔다.
결국, 지난 명절 전에 가까스로 <칠레의 밤>을 입수하게 됐다. 결론부터 미리 이야기를 하자면 너무 기대가 컸던 걸까? 생전에 문학 테러리스트라는 악명을 떨치면 칠레 출신의 망명 작가 로베르토 볼라뇨의 짧은 장편 <칠레의 밤>을 읽고 난 소감은 ‘혼란’이었다.
움베르토 에코의 걸작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는 죽음을 앞둔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 신부의 고백으로 <칠레의 밤>은 시작된다. 문학 비평가를 꿈꾸던 십 대 소년 우루티아가 어떻게 해서 사제의 길을 걷게 되고, 문학 비평가를 꿈꾸던 신학생 시절 자신의 정신적 스승 페어웰과 많은 문인을 만났던 시절을 회상한다. 그 후, 우루티아는 가톨릭 대학에서 일하며 일단의 시를 발표하고 이바카체 신부라는 필명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이바카체 신부는 오데임과 오이도라는 사업가들과의 교제를 통해 성당 보존 연구를 위해 유럽으로 떠나 좀 더 넓은 세상을 체험하게 된다. 성당 보전에 치명적인 비둘기의 소탕을 위해 매를 이용해 유혈이 낭자한 사냥을 하는 유럽 신부들의 모습은 후에 기술된 피노체트 독재의 그것을 위한 예고편이다.
한편, 인민연합의 대선후보로 대통령이 된 살바도르 아옌데 박사의 승리에 보수주의자인 이바카체 신부는 심기가 불편하기만 하다. 수년간의 혼란 끝에 결국, 미국의 사주를 받는 피노체트 장군이 이끄는 군부 쿠데타로 아옌데 대통령의 합법정부는 붕괴하고, 피노체트를 수장으로 한 군사 평의회가 민주주의 절차를 무시한 폭압적인 군사독재를 시작한다. 바로 이 시점에서 이바카체 신부는 군부로부터 ‘칠레의 적’들이 도대체 얼마나 나아갈지를 알기 원하는 장군들을 위해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는다. 이에 절대 비밀은 전제조건으로 이바카체 신부는 9번의 비밀 강연회를 갖는다.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 놀랍다. 실제로 있었던 일을 소설화한 이야기로, 작가를 꿈꾸는 마리아 카날레스라는 여성이 자신이 소유한 교외의 화려한 저택을 문인들에게 소통의 장으로 제공한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던 시절에 그런 공간은 예술가들의 해방구였다. 하지만, 그녀가 파티를 벌이던 빌라는 칠레의 반체제 지식인들을 불법적으로 감금하고 고문하던 장소였다. 그 빌라를 드나들던 지식인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체 했노라는 충격적인 고백이 이어진다.
사실 조금은 장황한 전반부의 구성에 비해, 피노체트에게 마르크스주의를 강의했다는 어느 사제의 고백과 문인들이 파티를 벌이던 장소가 반체제 인사들의 고문장소였다는 후반부의 이야기는 그 밀도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유럽 성당의 신부들이 매를 이용해서 성당 보존에 치명적인 비둘기들을 사냥한다는 설정은, 피노체트 일당이 칠레의 적들을 소탕하기 위해 ‘사형집행인’을 하수인으로 내세운다는 것과 너무나 유사했다. 과연 볼라뇨가 글을 쓰면서 그런 비교를 예상했는진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가 그 둘 사이의 연관성이 보였을 때의 충격이란!
그 무엇보다 진리와 정의를 구하는 지식인으로서 이바카체 신부의 작태는 유감 그 자체였다. 그는 절차를 중요시하는 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초법적인 권한을 휘두르던 군사독재 시절 권력에 영합해서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적들로부터(심지어 존재하기는 했었던가!) 조국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권력자들에게 봉사했다. 야만적인 독재에 신음하는 조국의 현실을 외면한 채, 이바카체 신부는 그리스 작가들이 쓴 고전을 읽는다. 그 가운데 자신은 조용한 평화를 간구한다. 바로 이런 지식인의 역설을 볼라뇨는 신랄하게 비판한다. 도대체 그 시절의 지식인들은 양심이란 걸 가지고는 있었던가?
자신의 문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인으로 시작한 볼라뇨는 멕시코의 거장 옥타비오 파스와 조국 칠레의 대문호 파블로 네루다를 가차없이 비판한 <인프라레알리스모> 활동으로 문학 테러리스트로서의 악명을 날렸다. 주술적 리얼리즘을 특징으로 하는 라틴아메리카 <붐> 문학에 대해서도 지나친 상업성과 반복에 날카로운 비판의 화살을 날렸다.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공격적인 볼라뇨의 날 선 비판이 조금은 거북할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된 <아메리카의 나치 문학>에서 자신의 블랙유머를 만개했다면, <칠레의 밤>에서는 피할 수 없는 과거사와의 대면을 로베르토 볼라뇨는 독자에게 요구하고 있다. 앞으로 계속해서 출간될 11권의 대장정이 어떻게 귀결이 될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