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보면서 가장 먼저 “그림묵상”이라는 단어가 나의 시신경을 파고들었다. 아주 오래전에 그림묵상 이용하기 위해서, 어느 웹사이트에 허가를 구하던 시절의 생각이 났다. 단 한 컷의 그림으로 정말 오래 시간의 여운을 남기곤 하던 그 그림묵상이란 말인가? 산뜻한 표지의 그림과는 달리 마음 한구석이 묵직해져 오고 있었다. 국민일보에 이 그림묵상 칼럼을 연재했다는 책 뒷날개의 소개 글을 보고서 바로 국민일보 홈페이지에 들러 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았다. 김병종 화백은 이미 지난 2005년 5월 <바보 예수>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었다고 한다. 이 책은 모교회의 안수집사님인 작가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사부곡(思父曲)이다. 모두 네 장으로 이루어진 김병종 화백의 <오늘밤, 나는 당신 안에 머물다>는 작년 가을 국민일보에 연재됐던 북아프리카 여행기와 카리브의 바다가 보이는 풍경으로 시작한다. 서울대 미대 동양화과 교수에 재직 중인 작가가 그려내는 지중해와 카리브의 푸른 물빛이 얼마나 생생하던지 느낄 수도 없을 유화의 질감에 손을 대보기도 했다. 하지만, 여느 작가와는 달리 김병종 화백의 자연예찬은 궁극적으로 자신이 이 책에서 궁극적으로 지칭하는 당신 혹은 ‘그이’인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귀결된다. 어쩌면 자신이 사모하는 절대자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화폭에 붓으로 그려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2차세계대전 당시 레지스탕스로 나치에 대항하고, 행동하는 지성의 전범이라고 할 수 있는 알베르 카뮈의 고향인 마그레브 여행기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작가가 직접 체험한 알제리 티파사(Tipasa) 바닷가에서의 꽃 대궐의 향연 그리고 몽환적 아름다움에 대한 예찬은 정말 평생 나그네의 역마살을 자극하기도 했다. 두 번째 장에서부터 본격적인 자신의 종교관에 대해 밝히기 시작한다. 이스라엘의 시골마을인 나사렛의 목수였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김병종 화백은 바보로 그리고 있다. 세상 모든 권세보다도 더 위대한 메시아를 바보로 부르는 것은 역설 그 자체였다. 골고다에서 구속사를 마무리 지으시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다른 동물도 아닌 나귀를 타고 들어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과, 공관복음서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길을 좇는 글과 그림들이 이어진다. 낯선 이국의 아름다움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그리고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한 김병종 화백은 마지막 장에서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내면의 세계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조선의 물도리동네 하회마을 그림에서 아주 오래전 답사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가봤던 하회마을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림에 달린 해설들을 보다가,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을 주목하게 됐다. 동양화가라고 한다면 보통 화선지를 떠올리기 십상인데 김병종 화백은 특이하게도 골판지 위에 많은 그림을 그렸다. 그의 재료와 ‘바보’ 예수라는 그림의 소재는 묘한 동조현상을 일으키고 있었다. 서구의 유명한 성당에 걸려 있는 위엄으로 가득한 모습의 예수 그리스도가 아닌 우리네 삶의 어디에서고 찾아볼 수 있는 친근한 서민의 모습이야말로 이천 년 전 메시아가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내려오신 그대로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