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 In the Blue 2
백승선 / 쉼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맙소사, 책의 첫 페이지에 나오는 “벨기에는 다른 나라를 침략한 역사가 없는 나라다”라는 글을 보면서 이 책의 작가의 역사의식 부재에 그만 경악하고 말았다. 벨기에가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맙소사!!! 작가는 벨기에가 19세기에 아프리카 콩고에서 저지른 악랄한 식민제국의 역사를 정녕 모르고 한 말일까? 전 페이지에서 봤던 달콤해 보이는 초콜릿 맛이 한 순간에 다 달아나 버렸다.

책을 읽기 전에 작년에 접했던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편을 보고서 가지고 있던 작가들에 대한 호의가 일순간에 날아가 버렸다. 그래도 어쩌랴, 먹먹한 마음을 가지고 푸르른 일러스트가 빛나는 책장을 넘긴다.

책의 벽두에서부터 흥분한 나는 벨기에의 매력인 노이하우스 초콜릿과 파란색 스머프를 보면서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동안 파리나 로마 혹은 베를린 같은 유럽의 대도시들은 가보면서 왜 벨기에에는 가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걸까? 이웃 네덜란드만 해도 고흐로 대변되는 이름난 화가들과 운하의 도시 암스테르담이라는 매력적인 장소들이 있건만, 그 이웃나라 벨기에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하나씩 벨기에에 대해 배워간다. 색소폰도 벨기에 사람 아돌프 삭스가 발명했다나.

여행의 재미 중의 하나는 바로 먹거리다. 여행에서 별난 먹거리가 빠진다면 말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 벨기에에는 무슨 먹거리가 있을까? 바로 와플이 있다. 요즘에는 우리도 거리에서 흔하게 와플을 먹을 수가 있지만, 역시 와플의 본고장 브뤼셀에 왔으니 작가도 먹지 않고, 또 글로 쓰지 않고 배길 재간이 없었겠지. 작년 여름에 홍대 근처에 벨기에 사람이 직접 운영한다는 와플 집에 갔을 적에, 우리가 말하는 와플은 벨기에 와플이 아니라 리에주 와플이라고 했는데 다시 한 번 책에서 확인할 수가 있었다. 그렇군!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가 브뤼셀 다음으로 독자들을 안내하는 곳은 우리에게는 <플란더스의 개>로 유명한 안트베르펜이다. 난 그런데 왜 이 어색한 이름보다, ‘앙베르’라는 프랑스식 이름이 더 마음에 드는 걸까? 발음하기가 불편해서일까? 난 앙베르라고 부르련다. 네덜란드에 고흐가 있다면, 벨기에에는 루벤스가 있다(맙소사,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루벤스가 아니라 ‘후벵스’란다!). 루벤스의 걸작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가 있는 노트르담 대성당과 안트베르펜이라는 도시 이름의 근원이 된 전설과 맞물려 있는 브라보 동상은 앙베르에 가게 되면 꼭 봐야할 명소라고 넌지시 알려준다. 어려서 그렇게 죽어라고 봤던 <플란더스의 개>의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 노트르담 대성당, 네로와 파트라슈의 고향이 바로 앙베르였단 말이지?

브뤼셀과 앙베르를 지나 독자를 인도하는 곳은 세 번째 기착지 브뤼헤다. 운하의 도시라는 명성이 부끄럽지 않게 어딜 가나 물을 볼 수가 있는 곳, 브뤼헤. 확실히 앙베르 같은 대도시하고는 사이즈가 다른 중소도시다. 사실, 대도시를 꺼리면서도 교통과 숙박의 편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대도시를 찾게 되는 여행자들에게 이런 도시는 어떤 매력으로 다가올지 궁금해졌다.

프랑스의 아비뇽, 이탈리아에 아시시가 있다면 벨기에에는 중세 도시의 숨결을 여전히 지닌 브뤼헤가 있다! 역시 운하의 도시답게, 운하를 도는 보트 투어가 보인다. 수백 년 전의 건물과 거리를 보존하고 있는 브뤼헤를 보면서, 가장 우리다운 것이 세계적인 관광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비웃듯 날마다 새로움이 더해지는 도시 우리의 서울이 떠올랐다. 파리나 뉴욕, 도쿄 같은 대도시와 다를 것 없어 보이는 거대한 구조물은 편리라는 문명의 이기 외에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마지막 일정은 벨기에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라는 겐트다. 얼마나 작은 도시인데 두 시간이면 족히 다 둘러볼 수가 있단다. 왠지 자전거가 잘 어울리는 도시 겐트는 15세기와 21세기가 공존한다. 작가는 방문 도시의 인포메이션 센터를 꼭 들른다. 나도 그처럼 그 도시의 공짜 지도를 얻을 수 있느냐 없느냐가 그 도시의 첫인상을 좌지우지하는 모양이다. 그전에 들른 브뤼헤에서는 0.5유로를 내고 지도를 샀다는 말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까짓 지도 하나쯤 거저 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이다. 가난한 나그네의 헝그리 정신은 어딜 가도 바뀌질 않는 모양이다.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백승선, 변혜정 듀엣의 다음번 “번지는 곳”은 어디가 될지 참 궁금해졌다. 전작 <행복이 번지는 곳, 크로아티아>에서 유럽 변방을 소개해 줬다면 이번 <달콤함이 번지는 곳, 벨기에>에서는 유럽의 복판에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벨기에의 이모저모를 선보여 주었다. 다음번에도 유럽일지, 아니면 또 다른 새로운 세계를 소개해 줄지 기대가 부푼다. 아, 그리고 별점은 응당 5개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초반에 등장한 역사의식의 부재로 한 개를 과감하게 뺐다. 다른 건 그냥 넘어갈 수 있어도 역사 왜곡만큼은 그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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