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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위의 딸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12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1월
평점 :
지난달에 읽은 유시민 선생의 <청춘의 독서>를 통해 읽을 결심을 했다. 항상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하고,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대위의 딸>이 헷갈리곤 했는데 이번에 읽으면서 확실하게 구분하게 됐다. 리뷰에 앞서, 러시아 소설을 읽으면서 항상 하는 고민이지만 주인공들의 이름을 외우기가 너무 어렵다. 게다가 긴 이름을 마샤, 쉬바브린, 뻬뜨루샤 혹은 로쟈라고 줄여 부르는데 더 헷갈리기만 한다. 나의 독서노트에 주인공 이름표를 정리할 생각도 잠깐 했었다.
<대위의 딸>은 우리에게는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라는 시로 널리 알려진 러시아 출신의 시인 알렉산드르 뿌쉬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다. 물론 <예브게니 오네긴>이라는 걸출한 소설도 있지만,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이 소설은 운문소설에 들어간다고나 할까. 귀족 가문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프랑스어 가정교사로부터 프랑스어를 배운 뿌쉬낀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덕분에 귀족다운 환경 가운데 자라났다.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했던 일단의 러시아 청년 장교들의 조직이었던 데카브리스트들과 어울리면서 자연스레 자유주의 사상에 심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농노제와 차르의 지배가 횡행하던 19세기 러시아에서 자유로운 영혼 뿌쉬낀의 활동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뿌쉬낀은 나이 38살 나던 해에 결투 끝에 어이없는 죽음을 맞이한다.
30대에 요절한 뿌쉬낀이 죽기 2년 전에 발표한 <대위의 딸>은 뿌가쵸프의 반란(1773~1775)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뾰뜨르 안드레이치 그리뇨프(뻬뜨루샤)라는 퇴역 장교 출신 아버지의 유일한 혈육으로 16세가 되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오렌부르그로 아버지의 대를 이어 장교로 복무하러 떠나게 된다. 뾰뜨르 안드레이치의 사이드킥이라고 할 수 있는 마부 사벨리치와 길을 가던 중에 눈 폭풍을 만난 그들은 정체불명의 사나이의 도움을 받기에 이른다. 젊은 뾰뜨르 안드레이치는 길을 안내해준 허름한 차림의 농부에게 토끼 가죽 외투를 선물한다.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사건이 훗날 그의 목숨을 구하게 되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아버지 안드레이가 청탁을 한 오렌부르그 주둔 사령관은 귀족 출신의 장교 후보 뾰뜨르 안드레이치를 외진 요새 벨로고르스끄로 전출된다. 여기서 주인공 뾰뜨르 안드레이치는 요새 사령관 미로노프 대위와 그의 아내 바실리사 예고브로나 그리고 그들의 딸 마리야 이바노브나(마샤)와 만나게 된다. 자, 이제 <대위의 딸>에 나오는 주인공들이 모두 소개가 되었나? 아니다, 결투로 사람을 죽인 죄로 이 오지 요새로 쫓겨 온 쉬바브린을 빼먹었다. 쉬바브린은 뾰뜨르 안드레이치의 친구이자 연적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강력한 적으로 변신을 거듭하게 된다.
젊은 청년 뾰뜨르 안드레이치와 아리따운 매력의 아가씨 마샤가 만났으니 그다음 이야기는 뻔하지 않은가? 그렇다, 그 둘 사이의 로맨스가 피어나고 소설의 중반까지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들의 사이를 시샘하는 쉬바브린과의 결투로 뾰뜨르 안드레이치는 오른쪽 어깨에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을 위협하는 결정적인 사건이 외부에서 터지게 되는데 바로 <뿌가쵸프의 반란>이 그것이다.
실제로 뿌쉬낀은 니콜라이 1세 황제 치하에서 자기가 태어나기도 전인 예까쩨리나 시대에 일어났던 뿌가쵸프의 반란을 조사할 기회를 얻었었는데, 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그의 시선이 <대위의 딸>에 잘 표현되어 있다. 로마노프 왕실의 러시아 출신 차르들은 서유럽에서 진행된 정치혁명과 산업혁명에 자극을 받은 일단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자유를 허용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러시아 제국의 발목을 잡고 있던 농노제와 기득권층의 지배를 영속화하는 반동정치를 일삼고 있었다. 이런 사회구조적 모순에 불만을 품은 야이끄 까자끄들이 뿌가쵸프의 영도하에 결집을 해서 러시아 제국을 뒤흔든 일대 반란을 일으키게 된다.
뾰뜨르 안드레이치와 마샤의 알콩달콩한 사랑은 이 황제를 스스로 칭하는 산적두목 같은 뿌가쵸프에 의해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뿌가쵸프 일당은 뾰뜨르 안드레이치가 수비하고 있던 벨로고르스끄 요새를 단숨에 함락시키고, 미로노프 대위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일단의 장교들을 처형한다. 자, 과연 이 전란의 위기 속에서 뾰뜨르 안드레이치와 마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결말이 궁금한 독자들은 책을 한 번 읽어 볼지라.
차르의 검열이라는 혹독한 시련에 맞서, 뿌쉬낀은 자신이 만들어낸 러브스토리와 뿌가쵸프의 반란이라는 얼개를 맞추는데 많은 공을 들인 흔적이 <대위의 딸>에 자주 보인다. 역사적 사건과 픽션의 결합이라는 매혹적인 구성에 소설의 재미는 배가 된다. 16세의 소년에서 한 여인을 사랑하게 되고, 조국과 명예를 생각하게 되는 청년으로 탈바꿈하게 되는 뾰뜨르 안드레이치의 모습에서 성장소설의 단면을 느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다른 여타의 러시아 소설보다 지극히 짧은 편인 뿌쉬낀의 이야기가 참 마음에 들었다. 장황하게 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도 소설가의 역량이겠지만, 짧은 분량 속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는 것도 또한 걸출한 재주가 아닐까?
마치 자신이 쓴 소설을 타인의 이야기에 비춰 차르의 검열을 피하려는 뿌쉬낀의 눈물겨운 노력에 2세기 전을 살았던 작가의 비애가 느껴지기도 했다. 번역을 맡은 석영중 교수가 캐릭터 분석을 보면, 황제를 참칭하면서 반역을 도모한 뿌가쵸프나 남편을 제위에서 끌어내리고 자신이 직접 러시아를 철권통치했던 예까쩨리나 여제는 이미지는 다를 게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전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영화 <300>에서 “나는 관대하다”라는 말을 했던 크세륵세스의 대사를 떠올릴 것도 없이 두 실존 인물 모두 주인공 뾰뜨르 안드레이치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권력가의 모습으로 소설에서 나오고 있다. 뾰뜨르 안드레이치는 살기 위해서라면 어느 쪽이라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었을까? 그의 목숨을 건 도박은 언제나 이기는 패였다.
적진에 남겨 두고 온 마샤의 안위를 걱정하며, 특공대를 조직해서 뿌가쵸프 반란군이 득시글대는 벨로고르스끄 요새로 달려가겠다는 뾰뜨르 안드레이치의 모습에서 아내의 명예를 위해 결투를 벌이다 결국 죽음에 다다른 뿌쉬낀의 그림자를 엿보게 된다. 사랑에 눈먼 피 끓는 젊음은 그만큼 맹목적일 수밖에 없었나 보다.
2010 고전읽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읽던 고전을 읽고 나면 수중에 더 읽을 고전이 있나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 워낙에 쟁여둔 책들이 많아서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전혀 없었다. 다음 도전 작품이 도끼의 <죄와 벌>이냐 아니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가 그것이 문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