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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뿔 - 이외수 우화상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09년 12월
평점 :
품절
내가 가장 최근에 이외수 작가의 이름을 들어본 것은 지난가을 막을 내린 MBC 시트콤 <크크섬의 비밀>에서였다. 우리 나이로 예순네 살에 첫 연기자로 데뷔한 이외수 작가는 예의 시트콤에서 치매에 걸린 이선장 역을 맡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한다. 아쉽게도 방영 중에는 미처 보지 못하고, 오늘에서야 당시 이외수 선생의 인터뷰를 봤다. 하여튼 그의 기인 캐릭터는 일면 황당해 보이는 시트콤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각설하고, 오늘 이야기할 이외수 선생의 2001년 작 <외뿔>은 그가 발표한 ‘우화상자’ 연작 중 <사부님 싸부님>에 이은 후속편이라고 할까. 역시 피씨통신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던 십 년 전에 피통체(피시통신에서 사용되는 문체)를 남발하면서 우리네 세태에 대한 날 선 비판을 아끼지 않는다.
전작에서 강원도 어느 산골에 사는 하얀 올챙이와 그의 제자 까만 올챙이가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에는 춘천 의암호에 서식하는 물벌레를 그 주인공으로 삼았다. 세상의 오만가지 열등감에 시달리는 아름답지 못하고 하찮은 물벌레의 입을 빌려 아름다움에 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한다. 외형적 아름다움이냐, 아니면 내면의 아름다움이냐 하는 고전적 질문으로부터 공주병환자와 살다 보면 어떤 남자라도 3년 안에 지극히 평범한 마부가 된다는 썰에 이르기까지 이외수 선생, 아니 물벌레는 자신의 철학적 사유를 유감없이 펼쳐낸다.
아름다움에 대한 깨달음을 구도하는 물벌레는 왠지 거북스러운 염세주의자의 초상으로 다가온다. 물벌레의 세상에 대한 한탄에서 종교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는데, 거기에도 역시나 “사랑을 빙자한 욕망의 독버섯”(67쪽)이 창궐하고 있다는 독설을 퍼붓는다. 물벌레의 진리와 사랑에 대한 간구는 깨달음을 통해 욕망과 허영을 털어내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기도 한다. 아따, 그놈의 물벌레가 사람보다 훨씬 낫구먼 그래. 아니 그건 물벌레에 대한 모욕이던가.
이렇게 세상의 온갖 고민을 지고 사는 물벌레가 과연 세상과 타협할 것인가, 아니면 절연할 것인가에 고민하고 있을 때, 홀연히 등장한 물벼룩이 ‘아니다, 그게 아니라 세상과 조화롭게 살아야 한다’라는 독자적인 썰을 풀기 시작한다. 이어 나오는 도깨비 이야기에서 이 도깨비 녀석들이 희한하게도 깨달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주는데, 어디 가십니까? 혹은 식사는 하셨습니까? 라는 지극히 단순해 보이는 문답을 통해 도(道)와 깨달음에 대해 이외수식 썰을 한바탕 풀어 젖힌다. 나는 이에 대해 ‘꿈보다 해몽이로소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다.
(탐관)오리들을 비판하는 이외수 선생의 발언에는 통쾌함마저 느낄 수가 있었다. 재산, 명예, 학벌 그리고 권력으로 무장한 기득권자야말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온갖 부조리의 근원이라는 그의 선언이 어찌나 그렇게 마음에 들던지. 아울러, 사랑과 깨달음 대신 취업의 전당이 돼버린 오늘날 대학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에도 공감이 가더라. 감각이 온통 시장을 지배하는 작금의 세태에서 과연 우리가 깨달음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묘연하기만 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