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 북유럽에서 만난 유쾌한 몽상가들
박수영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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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있는 나라, 스웨덴의 수도다. 예전에는 뉴욕, 런던 혹은 파리 같은 대도시를 다룬 여행 수필들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변방의 나라들인 볼리비아, 쿠바 심지어 마다가스카르까지 그 수필 목록에 오르고 있다. 박수영 작가의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 역시 후발 주자로서 천국보다 낯선 이름으로 들리는 스웨덴 중세 도시 웁살라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작가는 어느 날, 삶의 ‘깊이’를 쫓아 북구의 나라 스웨덴행을 결심한다. 조금 어깃장을 놓자면, 그 깊이는 꼭 북구의 나라에서만 찾을 수 있었던 걸까. 책 표지에 나와 있는 카피 문구에 심술이 났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 생활은 마치 이십 대의 전유물처럼 되어 있는데 도대체 책의 중간까지 읽기 전에는 작가의 나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우파 독재정권 아래서, 이십 대를 보냈다고 기술했는데 일단 적은 나이는 아닌 듯. 어쨌든 스웨덴의 명문 웁살라대학으로 역사학을 전공하러 홀연히 떠났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의 전형적인 유목민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고등교육을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개인 부담으로 간주하는 신자유주의국가들과는 달리 근 1세기가량 사회민주주의와 복지 천국으로 세계의 부러움을 받아온 스웨덴에서는 대학교육이 자국민이든 외국인이든 차별하지 않고 무상이라고 한다. 깊이도 깊이지만, 아마 작가가 스웨덴 그중에서도 영어 커리큘럼이 훌륭한 웁살라를 택한 현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솔직히 말해서 책을 펴면서, 스톡홀름(왜 웁살라가 아니라 스톡홀름을 제목으로 정했을까! 리뷰를 쓰다가 문득 그 생각이 들었다) 혹은 스웨덴의 평생 가보지 못할 대부분의 독자를 위한 조금은 색다른 이야기들을 기대했지만, 그런 나의 독서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가 버렸다. 박수영 작가 이야기의 중심은 이국적인 풍물이나 색다른 경험담이 아닌 웁살라 대학 역사학과에 둥지를 튼 7명의 보헤미안들과의 소통이었다. 그녀가 스웨덴에 체류하는 내내 그렇게 충돌했던 호앙과 같은 남성들이라면 도저히 잡아낼 수 없었을 그런 미묘한 감정의 기술과 관계에서 빚어지는 이야기들은 사실 스웨덴의 스톡홀름, 아니 웁살라가 아니더라도 지구 상의 어디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던가. 세계화 시대의 유니버설리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007 패러디 영화로 유명한 <오스틴 파워즈>에서 스웨덴 사람들은 모두 섹스에 미친 사람들로 묘사하는 장면을 보면서, 정말 서구인들에게 널리 퍼진 그릇된 믿음 중의 하나인 스웨덴은 정말 자유연애의 천국인가라는 나의 착각은 박수영 작가의 양성평등 모범을 보여주는 그네들의 삶을 통해 완전하게 박살이 나 버렸다. 진정한 양성 간의 평등은 다른 성에 의존하지 않고, 무거운 캐리어를 스스로 끌고 금발을 휘날리며 자전거를 타는 스웨덴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올곧이 이해가 되지 시작했다. 솔직한 사랑에서 비롯된 자유연애 역시, 그릇된 시각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그녀의 주장에도 공감이 갔다.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로 이제는 지구촌이라는 개념이 낯설지 않지만, 여전히 민족 국가라는 개념으로 다문화 국가로의 진화에서 뒤처져 있는 우리나라의 상황을 볼 적에 스웨덴에 사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야모”(평등기회 옴부즈맨) 에피소드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의 석학 미셸 푸코가 한 때, 웁살라 대학에서 수학하면서 자신의 박사 논문으로 <광기의 역사>를 제출했다가 보기 좋게 퇴짜를 맞았다는 이야기 역시 흥미로웠다.

유럽의 변방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에서도, 나치 독일 시대의 홀로코스트에 대한 담론들이 계속되고 있다는 점이 참 놀라웠다. 우리의 이웃나라에서 전쟁과 제국주의 식민과거를 후손들에게 아예 알려 주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과 반세기가 지나도록 지울 수 없는 과거의 참혹한 역사를 꾸준하게 후손들에게 알리고 함께 고민하려는 모습이 어쩌면 그렇게도 대조적으로 다가오는지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박수영 작가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닌 7명의 보헤미안들의 이야기들을 책으로 내면서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을까? 어떻게 보면 굉장히 타인의 사적인 담론들인데 말이다. 두 번째 의문은, 보헤미안 친구들과의 대화들에 대한 적확한 기술이다. 작가는 참 기억력이 좋은가 보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두세 시간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기가 한 말도 다 잊어버릴 텐데, 아 놀라운 기억력이여!

어느 책에선가 지난 노무현 정부에서 앞으로 국가 모델을 정하자는 담론이 공론화되었을 대, 사민주의에 입각한 스웨덴과 신자유주의 미국을 놓고 고민하다가 후자 쪽으로 전환했다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스웨덴 역시 우경화되고 있긴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지난해 경영진의 부도덕성과 신자유주의 경제의 허구가 만천하에 알려지면서 망신을 톡톡히 당하고 있다. ‘시카고 보이’들이 주도했던 자유방임에 가까운 신자유주의는 더는 유효하지 않은 지난 십 년의 유산이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정치 경제적 평등을 좌우명으로 하는 스웨덴식 모델이야말로 우리의 미래지향점이 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스톡홀름, 오후 두 시의 기억>을 통해 북구의 먼 나라 스웨덴을 재발견하는 좋은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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