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백 모중석 스릴러 클럽 21
할런 코벤 지음, 최필원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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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출신의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작가 할런 코벤의 책을 처음으로 읽었다. 어제 오후에 책을 펴들었는데, 책의 서두 부분을 읽는 순간 <결백>을 다 읽지 않고서는 뭘 할 수가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잠시 외출했다가 저녁 먹을 때만 빼고는 도저히 손에서 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정말 제대로 된 “페이지터너”였다. 결국, 자정을 넘겨서 다 읽게 됐다.

혹자는 할런 코벤의 작품이 너무 편차가 심하다고 하는데,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나는 정말 운이 좋은 것 같다. 어떤 책이고 처음 접하는 책이 좋으면, 그 작가는 좋은 편으로 들어서게 되고 그렇지 않다면 반대편에 서게 되니 말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던 폴 오스터 역시 전자의 대열에 들어설 것 같다.

프롤로그에서 이 책의 주인공 맷 헌터의 기구한 삶을 잘 요약해서 들려준다. 대학 시절, 원치 않는 싸움에 말려들어 과실치사를 저지르게 된다. 고의였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인명이 살상된 사건이니만큼 맷 헌터는 그로 말미암아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4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하고 대학으로 돌아가 법학 학위를 받고, 자신의 친형인 버니가 일하는 법률사무소에 변호사 보조원으로 다시 사회에 복귀한다. 하지만, 전과자가 된 맷 헌터를 보는 지역사회의, 그리고 지인들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하다.

그에게 구원은 바로 아름다운 부인 올리비아다. 헌터의 대학시절 라스베이거스에서 우연히 만났던 인연의 끈이 닿아, 뉴저지에 보금자리를 튼 헌터 가족에게 어느 날 이 올리비아의 핸드폰 번호로 기이한 동영상이 전송되면서, 이야기는 매우 급하게 전개가 된다. 설상가상으로 근처 수녀원의 어느 수녀가 죽었는데 그녀의 죽음에서 도저히 수녀로서의 삶과는 동떨어진 놀라운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야기는 슬슬 미궁으로 빠져든다.

또 한 명의 멋진 캐릭터로 맷 헌터의 초등학교 시절 친구이자, 이제는 뉴저지 검찰청의 민완 형사로 뛰어난 활약을 펼치는 로렌 뮤즈가 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뜻하지 않았던 자살로 심리적 내상을 입은 로렌은 아버지의 죽음이 어머니 탓이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불륜에 빠진 것으로 의심되는 아내 올리비아의 행적을 추적하기 위해, 맷 헌터가 사건 의뢰를 맡긴 도저히 사설탐정으로는 보이지 않는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 싱글 쉐이커 역시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런 다양하면서도 멋진 캐릭터를 읽는 재미만으로도 독자들은 황홀한데, 그의 치밀한 내러티브 구성이 결정타를 날린다. 가톨릭교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인 미국 동부의 뉴저지와 이와는 대조적으로 환락의 도시 라스베이거스를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할런 코벤은 화려한 전개를 펼친다. 책의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는 서로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사건들이 할런 코벤의 소설적 깔때기에 걸려지면서 작가가 도처에 심어 놓은 암시와 복선들을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치 않다.

<결백>은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 내면의 본질에 대한 문제제기다. 가령, 예를 들어 실수지만 사람을 죽이고 다시 사회로 복귀한 맷 헌터의 고뇌와 그를 바라보는 피해자 부모와 사회의 시선, 그는 과연 평범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 자신의 과거를 모두 받아들이고 새로운 출발을 약속한 올리비아의 헌신적인 사랑, 자신을 버린 미혼모 엄마를 찾아나서는 십대소녀의 사모곡, 빗나간 우정으로 말미암은 궁극의 복수에 이르기까지 온통 인간의 삶을 혼란 그 자체로 만들 법한 이야기들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바로 그런 예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기대감이 바로 이 책의 마지막 장까지 단숨에 읽게 하는 비결이 아니었을까.

역시 뭐니뭐니해도 미스터리 스릴러는 반전이다. <결백>은 그 반전에 있어서도 전혀 인색하지 않고 푸짐하게 독자들을 위해 진설한다. 모든 스릴러가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특히 아주 작은 단서들이라고 하더라도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너무 많이 중요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통에 이름 확인을 위해 다시 앞장을 찾아봐야 한다는 점이 옥의 티라고나 할까. 비채에서 꾸준하게 나오는 모중석 스릴러 시리즈 21번째 책이었던 <결백>에 흠뻑 빠졌던 11월의 어느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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