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우울
안드레이 쿠르코프 지음, 이나미.이영준 옮김 / 솔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안드레이 쿠르코프, 이름만 들어도 단박에 러시아 작가라는 걸 알 수가 있겠다. 아니 최소한 슬라브 계열의 작가겠지. 구소련의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안드레이 쿠르코프 작가는 우크라이나에서 살면서, 러시아 어로 소설을 발표한다고 한다. <펭귄의 우울>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소설로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됐다.

어디선가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보고 나서 사두기는 진작 사뒀었는데, 이제야 읽게 됐다. 제목에 있는 그대로 펭귄이 등장하는 이 소설의 배경은 포스트 소비에트 시대의 우크라이나 키예프다. 30대 후반의 주인공 빅토르 알렉세예비치 졸로따례프는 신문사에 주로 짧은 글과 산문을 기고하는 작가다. 빅토르는 여자친구와 이별하고 나서, 동물원에서 분양받은 황제 펭귄 미샤와 동거 중이다(이 일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아니 다른 동물도 아니고 펭귄이 애완동물이라니! 그 설정부터 참 특이하다.

검은 턱시도를 입은 것 같은 남극 출신의 펭귄 미샤는 슬픈 눈을 하고 조용하게 빅토르의 삶 속으로 들어선다. 자신이 쓴 글을 팔기 위해, 신문사를 전전긍긍하던 빅토르는 어느 날 <수도뉴스>의 편집장으로부터 기묘한 제안을 받는다. 아직 살아 있는 이들의 추도기사를 쓰라는 거다. 월급 300달러의 괜찮은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겠지. 작가적 상상력과 철학적 사고를 회전시켜, 빅토르는 술술 글을 써내려 간다.

중간마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긴 했지만, 평온한 빅토르의 삶에 큰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다. 편집장 이고르를 통해 알게 된 ‘펭귄이 아닌 미샤’의 딸 소냐가 그리고 그 소냐를 돌봐주기 위해 경찰 친구 세르게이의 조카딸 니나가 합류하면서 유사가정의 형태를 보이기 시작한다. 펭귄 미샤는 말없이, 빅토르의 작업을 지켜보고 혹은 친구와 함께 얼음소풍을 나가는 한가로운 일상이 계속된다.

우울증에 약한 심장을 가진 펭귄 미샤는 빅토르가 우연히 알게 된 이들에 의해 반강제로 장례식에 동원된다. 그리고 빅토르가 쓴 추도기사 <십자가>에 이름이 올라간 이들이 차례대로 죽는다. 그에게 일감을 물어다 주던 편집장 이고르마저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면서, 비로소 빅토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위험을 깨닫게 된다. 게다가 펭귄 미샤마저 중병을 앓게 되면서, 이야기는 미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펭귄의 우울>은 기본적으로 소통의 부재로 말미암은 개인의 고독에 그 방점을 찍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사는 빅토르는 출장을 가게 돼도, 펭귄 미샤를 맡길만한 친구 하나 없는 그런 외로운 존재다. 관계는 필요에 의해 증발되어 버리고, 내내 외톨이 생활을 해온 빅토르는 소냐나 니나 같은 유사가족보다도 묵묵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펭귄 미샤에게 더 동질감을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네 살짜리 꼬마, 그 꼬마를 돌보는 유모로 채용된 관계라는 연결고리는 취약하기 그지없다.

그런 취약한 관계의 공간을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스릴러는 파고든다. 추도기사 <십자가>를 부추기는 A그룹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다. ‘사회방역소탕’이라는 거창한 핑계로, 거대한 음모가 진행 중이라는 것을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빅토르는 벼랑으로 내몰린다. 치밀하게 짜인 틀 안에서 전개되던 이야기는 열린 결말과 만나면서 후속편을 기대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거의 본편에 두 배 가까운 분량을 자랑하는 <펭귄의 실종>이 독자들을 맞이한다.

평등과 공존이라는 구 소비에트 시대의 사회적 가치들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대신 자본과 결탁한 물신주의와 권총으로 상징되는 폭력이 찬란했던 소비에트 시대의 영화(榮華)를 대체한다. 게다가 러시아의 루블화도 아닌, 그렇다고 우크라이나의 통화인 흐리브냐도 아닌 달러가 통용되는 세상은 천국보다도 낯설기만 하다. 심지어 이 책이 영역 본의 번역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모든 거래는 달러로 통용된다. 21세기 달러 패권주의의 몰락이 현실화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한편, 작가 빅토르는 이 글을 쓴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거울이다. 그는 지속하지 않는 영감으로 말미암은, 창작의 고통을 자신의 아바타를 통해 토로한다. 신문지상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밝히고 싶어 하는 글쟁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생활을 위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빅토르의 처지를 설명한다. 펭귄 미샤를 통해서는 작가가 느끼는 의무적 고독의 묘미를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책읽기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영미권 작가들의 글보다 제3세계 작가들의 글에 더 깊은 관심이 있다. 그래서 그런진 몰라도 우크라이나 작가 안드레이 쿠르코프의 펭귄 미샤 이야기에 흠뻑 빠져 버렸다. 열린 결말(open end)이 조금은 불만스러웠지만, 후속편 <펭귄의 실종>이 전편에서 풀리지 않은 비밀과 의혹을 말끔하게 해결해 주리란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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