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래그먼트 - 5억년을 기다려온 생물학적 재앙!
워렌 페이 지음, 하현길 옮김 / 비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십수 년 전,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을 정말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 잔뜩 기대를 하고 영화도 보았는데 책보다 못해서 실망했던 일이 떠오른다. 미국 출신의 작가 워렌 페이의 SF소설인 <프래그먼트>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쥬라기 공원>에, 최근 유행하는 텔레비전의 리얼리티 쇼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태어난 이종교배의 멋진 돌연변이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프롤로그에서 소개되는 워렌 페이가 나열한 새로운 서식지에 새로운 생물군의 도입이 우리가 사는 환경 시스템에 얼마나 큰 재앙인지에 대한 생생한 경고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리고 200여 년 전, 이 책의 주요 무대가 되는 남태평양의 외딴 헨더스 섬으로 독자들을 조용하게 초대한다.

일련의 과학자들과 방송 출연진들을 실은 리얼리티 쇼의 지원을 받는 “트라이던트”호가 지구 상의 가장 외딴곳들을 탐험하겠다는 목적에서 1년간 세계를 누비며 위성으로 생생한 방송을 송출하고 있다. 물론 트라이던트 호에는 하루에 3,000 갤런의 담수를 만들어내는 시설에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문명의 이기들이 잘 어우러져 있다. 여느 리얼리티 쇼처럼, 그들의 목적은 더욱 이국적이면서도 자극적인 방송으로 케이블TV의 시청률을 높이고, 더 많은 스폰서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다. 다분히 자본주의적인 발상이 아닌가?

그렇게 무난한 항해를 하던, 시 라이프(Sea Life) 팀은 조난신호 자동발생장치(EPIRB)를 수신한다. 이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식물학자 넬 덕워스는 세상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섬인 헨더스 섬에 기착하고 싶어 하지만, 전혀 상업적 매력이 없는 외딴 섬에 머물고 싶지 않았던 시 라이프 팀도 조난신호를 외면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해서 꾸려진 일단의 탐험대는 예의 헨더스 섬에 상륙해서, 제대로 된 탐험을 시작하기도 전에 섬의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에게 처참하게 학살당하고, 그 모든 과정이 전 세계로 위성을 타고 중계된다.

당연히 시 라이프의 방송분은 전 세계에 파문을 불러일으키고, 곳곳에서 시청률을 노린 조작이다 아니다로 갑론을박이 벌어진다. 소설의 초반 미국의 동물학자로 등장해서, 진화와 생태계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을 하는 주요 인물로 역시 제프리 빈스뱅거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한편, 미국은 헨더스 섬 주변을 완전 봉쇄하고 통제하면서 도대체 그 섬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다. 자, 이제 독자들은 원반 개미, 송곳 벌레, 헨더스 그리고 스피거 같이 정말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 미지의 헨더스 섬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된다.

조금 진부하기는 하지만 <프래그먼트>는 지구의 진화에서 동떨어진 채, 격리되어 평화로운 공존이라는 자연계의 개념에 반하는 오로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약육강식의 법칙만이 존재하는 전혀 새로운 헨더스 섬의 생태계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몇몇 캐릭터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작가 워렌 페이는 캐릭터 설정이나 묘사보다는 인류의 삶과 진화 같은 좀 더 거창해 보이는 주제에 집중한다. 테크노 스릴러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상상을 초월하는 새로운 기술을 바탕으로 한, 첨단 장비들이 속속들이 소개된다. 하지만, 헨더스 섬의 치열한 삶의 각축장에서 살아남은 괴생물체들은 지구 상의 그 어떤 다른 종보다도 우월하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그리고 계속되는 인간들의 도전을 분쇄하면서 입증된다.

<프래그먼트>는 확실히 비채의 다른 책들처럼 기대 이상의 재미가 있다. 물론 시 라이프 팀들의 사투에 비해, 대학의 세미나실에서 과학자들이 벌이는 과학의 본질적 토론 부분은 상대적으로 그 재미가 많이 떨어지긴 하지만 소설의 균형을 맞추는데 한 몫 단단히 하고 있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들만 나오면, 그 현실감이 떨어질 테니 말이다. 아쉬웠던 점은, 이러구러 잘 진행이 되던 이야기가 마지막 100페이지 정도를 남겨 두고 전혀 예상치 못했던 캐릭터의 등장으로 소설 전개의 집중력이 급속하게 떨어졌다는 것이다.

워렌 페이의 <프래그먼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다. 나와 다른 종, 혹은 개체와 충분히 의사소통이 가능하고 이 지구에서 평화로운 공존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다만, 한계는 우리 인간과 대화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지불식간에, 작가는 곳곳에서 그런 자신의 메시지를 표출해 내고 있다. 물론 그렇지 못한 대처 레드먼드 같은 이는 권선징악의 법칙에 따라 응징된다.

마지막으로 하나 궁금한 건, 과연 <프래그먼트>가 언제 영화화가 되느냐는 것이다. 아마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시나리오 감이 또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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