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올해 추석맞이 독서의 키워드 작가는 바로 오쿠다 히데오였다. 추석 연휴 전에 우연한 기회에 헌책방에 들러 <공중그네>를 샀다. 이미 <공중그네> 전에 두 권의 오쿠다 히데오의 책들을 만나 봤지만 그다지 큰 감명을 받지 못했었다. 그런데 <공중그네>의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를 알게 된 순간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닥터 이라부 이치로 시리즈를 모두 사들였다.

순서는 원래 <인 더 풀>, <공중그네> 그리고 <면장 선거>인데 나는 <공중그네>, <면장 선거> 그리고 <인 더 풀>의 순서로 읽고 있다. <면장 선거>는 나오키상을 받은 전작 <공중그네>만큼이나 기대되는 이야기들로 가득한 유쾌한 독서 체험이었다. 뭐랄까, 자신을 찾아온 환자들이 모두 바보, 괴짜 의사선생이라고 생각하는 이라부 이치로는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다고 느낌이 들었다. 아울러 가슴 계곡의 비밀로 환자들의 넋을 빼고 몽롱하게 만들고 자신이 어느새 주사대에 묶여 비타민-포도당 주사를 맞고 있는지도 모르는 얼빠진 환자들을 양산해 내는 펑크록 밴드의 멤버인 간호사 마유미짱의 활약 역시 멋지다, 올레!!!

내가 읽은 <면장 선거>는 2007년 초판이 나온 이래, 무려 15쇄나 찍은 버전이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독자가 닥터 이라부에게 열광하는 걸까? 그건 아마 오쿠다 히데오의 닥터 이라부 시리즈에 나오는 주인공 이라부 이치로의 파격에 있지 않을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과는 왠지 괴리된 세상에 살고 있을법한 의사 선생님이 알고 보면, 돌아이 포스라는 거다. 엄청나게 음식을 밝히고, 사람들과의 관계 때문에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서슴지 않고 테러를 꼬드기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반달리즘마저 공모하는 의사 선생이 이 세상천지에 또 어디겠느냐는 말이다. 물론 타인에게 최소한의 피해를 주는 한도에서 말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독자들의 통쾌한 공감대가 폭발한다. 게다가 재밌기까지 하다.

책을 읽다 보니 하나의 간단하면서도, 전체 에피소드들을 관통하는 패턴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선, 이라부를 찾아오게 되는 이들은 누구나 한가지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강박으로 보고 싶은데, 그런 강박증을 가진 이들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해서 이라부 박사를 찾게 된다. 그리고 이들 모두에게 이라부와 마유미는 천편일률적인 처방, 요청하지도 않은 주사를 맞힌다. 물론 저항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런 소동을 통해 환자들은 심리적인 안정을 찾는다. 이라부가 아무 생각 없이 툭툭 던진 한 마디에 바로 걸려들면서, 주기적으로 그를 찾게 된다. 그리고 어이없어 보이는 이라부와의 직접 체험을 통해 자신만의 정답을 만들어 가는 패턴이 읽히기 시작했다.

한편으로 보면, 참으로 무책임해 보이는 서사 기법처럼 보이기 하지만 심각한 인문 서적이 아닐 바에야 어떤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읽어서 즐겁고, 지속적으로 허를 찌르는 이라부 선생의 처방전이야말로 온통 혼란스러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절로 마음이 푸근해져 온다.

이제 그만 물러나라는 세대교체 요구에 꿋꿋하게 버티는 전후세대의 상징처럼 다가오는 인물이 환자로 나선 <구단주>, 능률과 효율만이 삶의 전부라고 믿는 IT업계의 풍운아를 다룬 <안퐁맨>,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카리스마 직업>을 가진 중년 여배우 그리고 마지막 어느 시골 섬의 면장 자리를 두고 2,500명 정도 되는 섬사람들이 두 패로 갈려서 막장 대결을 펼치는 <면장 선거>의 네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전 <공중그네>와는 달리 각각의 에피소드들이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전개가 된다는 점에서 아주 작은 변별점을 보여 준다.

세상사가 답답하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이렇게 자신의 속을 툭 털어 넣고 사뭇 엉뚱해 보이는 공모를 할 수 있는 의사이자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상상을 해본다. 오쿠다 히데오의 이야기들은 어쩌면 현실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이야기라서 더 독자들에게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게 아닐까? 오쿠다 히데오의 이 맛깔 나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닥터 이라부 시리즈가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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