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본능 - 법의곤충학자가 들려주는 살인자 추적기
마크 베네케 지음, 김희상 옮김 / 알마 / 200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독일 출신의 탁월한 법의학곤충학자 마르크 베네케의 범죄 3부작의 마지막 편인 <살인 본능>을 읽었다. 아쉽게도 첫 번째 작품인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올해 초에 <연쇄살인범의 고백>에 이어 <살인 본능>도 접할 수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중에 시간을 내서 이 3부작의 시작이 되는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범죄의 흔적을 쫓는 범죄 과학 수사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범죄의 미스터리를 푸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진 지문 감식은 도입된 지가 100여 년 남짓이고, 유전자 감식은 20년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요즘 텔레비전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CSI 같은 프로그램들은 불과 십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다년간 범죄 현장에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이 책을 저술한 마르크 베네케는 이러한 증거들조차 절대적으로 신뢰해서는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범죄를 입증하기 위한 하나의 객관적인 증거로만 받아들일 것을 주문한다. 지문이나 유전자감식을 통해 얻어진 증거들은 하나의 증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물며, 증인들이나 피해자들의 주장에 대한 신빙성은 더더욱 떨어진다.

마르크 베네케는 무겁지 않고 가벼운 주제로 책을 시작한다. 명예와 양심 코너에서,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결투”를 무대 위에 올린다. 우리가 잘 아는 철혈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자존심과 오만으로 똘똘 뭉친 프로이센 귀족 출신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조그만 시비라도 붙으면 절대 넘겨버리지 못하고 피를 결투로 결판을 내곤 했던 이 정치가는, 훗날 프로이센 지방의회에서 자신을 공격한 정적으로부터 명예를 지키기 위해 법으로 금지된 결투를 신청하기에 이른다. 그 누구보다도 법질서를 우선으로 지켜야 하는 이들이 초법적인 행위를 하겠다고 나서는 장면이 우스꽝스럽기만 했다. 작가는 과연 명예훼손의 범주가 어디까지 해당되는지, 건전한 상식의 범위에서 해결될 수는 없는지를 독자들에게 묻는다.

테네시 대학교 녹스빌에 존재한 “보디 팜”의 기원에 대한 설명 또한 주목할 만하다. 보디 팜은 조직의 부패 정도와 곤충들의 활동 양태를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윌리엄 배스라는 이가 만든 연구소의 이름이다. 다양한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통한 뼈 연구를 통한, 얼굴 복원 작업 또한 범죄수사에 대한 과학적 접근 방식 중의 하나로 소개가 된다.

물론 범죄 사건들이 치밀한 수사와 증거물 수집으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마르크 베네케는 말하고 있다. 가장 유명한 사례로 1930년대 전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찰스 린드버그 주니어의 납치사건을 제시하고 있다. 사건 초기부터 미국의 국민적 영웅인 실종된 주니어의 아버지 찰스 린드버그는 경찰이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면서, 사건의 체계적인 수사에 훼방을 놓았다. 이렇게 미궁에 빠져 있던 사건은 주니어의 몸값으로 지급된 금화증권이 우연히 발견되면서, 뉴욕 브롱크스에 사는 브루노 하우프트만을 유괴범으로 검거하게 된다. 하지만, 마르크 베네케는 다시 한 번 물증만으로 정황이 참작되지 않은 판단에 대해 독자들의 의견을 구한다.

1990년대 캐나다에서 벌어진 폴 베르나르도와 칼라 호몰카의 연쇄 성폭행과 살인사건이 어떻게 캐나다 국민에게 경찰에 대한 불신을 심어 주었는지에 대한 상세한 추적을 보여준다. 겉보기에 멀쩡해 보이는 이들이, 믿을 수 없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면서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경악하게 된다. 이렇게 살인자의 모습은 우리의 상상과는 달리 남다르지 않고, 지극히 일상적인 삶을 사는 가운데 끔찍한 일탈을 저지르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제보와 정황 증거들에도, 무능력한 경찰들은 그런 범죄자들을 활개치게 놔두었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마지막으로 작가는 사형제도에 반하는 태도에서, 사형제도가 과연 범죄 예방과 재발을 막기 위한 제일 나은 방법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한 발짝 더 나아가, 과연 현재 우리의 사법 제도에 문제는 없는가에 대해서는 세기의 재판으로 불렸던 O.J. 심슨 사건을 그 예로 든다. 누가 봐도, O.J. 심슨이 끔찍하게 살해된 그의 전 부인 니콜 브라운과 그녀의 남자 친구 론 골드만을 살해한 것으로 생각했지만, O.J. 심슨의 유능한 변호인들은 이 살인사건의 본질을 인종차별로 흐리고 배심원들의 인간적인 측면에 최대한으로 호소하면서 결국 O.J. 심슨의 무죄방면을 이끌어냈다. O.J. 심슨의 변호사들은 재판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여론몰이까지 마다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물론 뒤이은 민사재판에서 O.J. 심슨은 패소하면서 빈털터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공정한 재판이 아닌 한 편의 쇼를 본 듯한 느낌이 들었다.

도전과 응전의 역사대로 범죄의 기술 역시 범죄수사학의 신기술 개발과 발전에 비례해서 날이 갈수록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진화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법의 테두리에서 발생하는 심각한 문제들 역시 간과할 수가 없을 것이다. 당장에 되돌릴 수 없는 사법 살인이나 증인 혹은 피해자들이 무고한 이들을 범인으로 지목하면서 생긴 오심에 대한 책임은 도대체 누가 지느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물증의 채택과 명백한 정황들의 톱니바퀴 맞추기 그리고 공정한 재판 절차를 통한 진실확인에 초점을 맞춰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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