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트 Young Author Series 1
남 레 지음, 조동섭 옮김 / 에이지21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나의 책읽기 즐거움 중의 하나는 바로 책에 나오는 지명들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읽은 남 레 작가의 <보트>는 나에게 여러 가지 도전을 제공해 주었다. 물론 뉴욕이나 히로시마, 카르타헤나 그리고 테헤란 같이 누구나 다 알만한 지명 말고, 정말 낯선 곳 말이다. 책 속에서 천국보다 낯선 느낌을 구가한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남 레 작가의 세계를 돌며 펼쳐지는 7개의 이야기들 중에서 그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그야말로 미스터리였다. 베트남 출신으로 호주에서 교육받고 자란 작가는 미국 아이오와의 모처에서 작가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던가. 호주에서 살고 있는 그의 아버지와 4년 만의 만나게 되는 곳이 어디일까. 벌링턴 스트리트와 서미트 스트리트만으로 단서로 그가 사는 도시의 이름을 찾는 재미란, 낯선 작가의 이야기의 작은 길을 따라 가는 것만큼이나 즐거웠다. 구글맵을 이용해서 아이오와 주와 이웃 위스콘신 주를 가르는 미시시피 강 연안의 더뷰크(Dubuque)라는 도시라는 것을 알아냈다.

창작의 고통에 빠져 있던 작가는 아버지의 이야기로부터 자신이 쓰고 싶었던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자신만이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작가적 임무가 새삼 다가온다. 1975년 사이공 함락, 무력통일, 재교육 수용소 그리고 1979년의 탈출은 맨 마지막 이야기 <보트>의 선순환적 구조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에 5개의 세계의 곳곳의, 때로는 아마도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작가의 개인적 체험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이야기들이 전개된다. 사실 이 책의 목차를 보고 가장 관심이 갔던 이야기가 바로 <카르타헤나>였다. 하지만 그 배경은 콜롬비아의 카르타헤나가 아니라, 14살짜리 킬러 주인공이 주무대로 활동하는 메데인이었다. 이 단편의 플롯은 브라질 영화 <시티 오브 갓>을 바로 떠올리게 했다. 무엇보다 과연 14살짜리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책임질 수 있는 나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태어나 산 햇수만큼의 사람을 죽이고, 생활비를 벌고 어머니를 위해 집을 샀다는 주인공의 무용담이 허공을 휘젓는다.

그 다음으로 가장 마음을 끄는 이야기는 <히로시마>였다. 2차 세계대전 막바지의 일본을 그 무대로 하고 있다. 이오지마와 오키나와 후, 1억 총옥쇄를 운운하면서 미군의 상륙에 대비하고 있는 모습과 세계 최초로 원폭 피해지인 히로시마의 이미지가 중첩되고 있었다. 원자폭탄 한 방으로 악랄한 침략자·가해자의 입장에서, 피해자로 거듭난 그네들의 변신에 씁쓰름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개인적으로 <보트>를 관통하는 키워드를 꼽자면, 죄책감이 아닐까 싶다. 전쟁과 탈출이라는 고통의 순간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 어려서 이별한 딸과 함께 하지 못한 죄책감, 죽어가는 어머니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자신에 대한 자책감 등의 비애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 그런 비슷하면서도 다양한 상황 가운데 전개되는 이야기의 서술이 매력적이었다.

아쉬운 점은 서로 연관되지 않은 이야기들 때문인지, 책을 읽다가 어느 순간 동력의 실종된 지점에서 책읽기가 버거워져 버렸다. 사실 <테헤란의 전화>는 여전히 이해불가 코드다. 그래도 <보트>는 막 포기하려던 순간에, 작가의 글처럼 “종일 기다리다가 막 떠나려 할 때 무엇을 내놓는다.”(208쪽) 남 레 작가의 타이틀이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보트>에 등장하는 죽음의 여행은 사이공 함락 이후, 역사적 고찰 대신에 오로지 탈출과 생존만이 선이었다는 아버지 세대의 변명처럼 다가온다. 보트피플인 마이, 퀴엔 그리고 트렁 간의 죽음 가운데 삶의 희망을 건져 보려는 노력이 그저 무망할 뿐이다. 정말 그런 처참함을 경험한, 세대의 추억담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과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하지 않는 과거는 더욱 치명적이겠지만.

책 속에서 남 레 작가가 말했듯이, 오직 자신만이 쓸 수 있는 그만의 다음 글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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