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프로젝트
박세라 지음 / Media2.0(미디어 2.0)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타지에서 꽤 오래 살아 봤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의 주체할 수 없는 역마살은 주기적으로 도지곤 한다. 책이나 혹은 잡지, 아니면 텔레비전의 프로그램에서 매력적인 곳들을 보면 ‘아, 나도 저기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한 석 달쯤 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만, 경제적이거나 혹은 시간적 이유로 해서 실천에 옮기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하지만 <런던 프로젝트>의 작가 박세라 씨는 분연히 자신의 삶을 정리하고 런던으로 떠났다. 솔직히 그녀가 왜 런던에 갔는가에 대해서 분명 책의 초반에서 읽었을 텐데, 그건 다 까먹고 말미에 가서 목적이 “낭비”였다라는 낱말에 왜 이렇게 꽂혔는지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부럽다, 그렇게 낭비할 수 있다는 여유가.

살면서 유럽에 두 번 갔었는데, 사실 영국과 런던은 한 번도 나의 목적지가 아니었다. 왠지 대륙과 동떨어진 채 나 홀로 유로(Euro)도 거부하고 파운드화를 쓰는 고집쟁이들의 나라가 탐탁지 않았다. 하지만 이 책 <런던 프로젝트>를 통해 본 바에 의하면 그런 나의 생각들이 모두 고정관념이고, 편견이었다고 자수해야할 것 같다.

작가가 그리는 입헌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영국은 공화제 국가인 대륙의 프랑스와 독일과는 또 다른 맛이 배어 있었다. 기품이라고나 할까? 책의 곳곳에서 여왕에 대한 이야기들과 프린세스 다이애나 그리고 왕실납품이라는 낱말들이 확실히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한 왕국이라는 이미지들을 독자들에게 전달해 주고 있었다. 왕을 모시고 사는 이들의 심리는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확실히 남성과는 여성 특유의 세심하면서도 주변의 사물들에 대한 빼어난 관찰력이 돋보이는 글과 사진들이 인상적이었다. 매주 마다 <이 주의 낭비 결산>이란 코너를 만들어서, 나라면 한 번 받아 보고 내버렸을 영수증이나 클럽이나 혹은 각종 이벤트들을 선전하는 플라이어들을 곱게 모아 찍은 사진들을 통해 자신의 ‘낭비들’(물론 긍정의 뜻이다!)로 꾸며지는 알찬 삶들을 소개한다. 이 기발한 아이디어란!!!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장점으로 꼽고 싶은 점은 바로 다양성이다. 열린 마음으로 주변의 모든 것들과 소통하는 가운데(물론 쇼핑도 빠지지 않는다, 아마 남자들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이런저런 재밌는 에피소드들과 정말 화려하면서도 멋진 런던의 이모저모를 다룬 이미지들을 요소요소에 잘 배치해주고 있다. 특히 작가도 런던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꼽았던 픽토그램도 빠질 수가 없다.

런던에 거주를 하면서 주말마다 바지런히 다닌 주말여행을 통해 영국 교외에 멋진 관광지와 만나는 즐거움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휴일 마켓에 어워드 리본으로 무장하고 나가, 현지인들과 부대끼는 삶의 스케치 역시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니까 순전한 관광객의 시선이 아닌 비록 임시적이긴 하지만 체류자로서의 여유라고나 할까? 아마 짧은 여행을 하는 이들은 절대 짚어낼 수 없는 런던의 숨은 볼거리들과 할거리들 그리고 먹거리들의 향연이 조근조근하게 펼쳐진다.

하지만 그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다양성은 마치 양날의 칼처럼 책으로의 몰입을 막는 훼방꾼 같기도 하다. 왜 15주나 되는 이야기들을 읽으면서도 패턴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면, 아직 가보지 못하거나 경험부족으로 인한 관심도의 저하 탓일까? 작가의 마켓 입성기가 좀 더 궁금했었는데 살짝 맛보기만 보여 준 것 같아 많이 아쉬웠다.

<런던 프로젝트>를 읽으면서 영화 <노팅 힐>과 <러브 액츄얼리>이 이 책과 참 궁합이 맞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들을 보고 나면 아마 책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책에 나오는 것만으로 부족한 독자들이라면, 작가가 아주 친절하고 꼼꼼하게 적어 놓은 인터넷 사이트들을 직접 방문해 보는 것도 간접적으로나마 런던을 체험하는데 아주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세계화에는 반대하지만, 이렇게 지구촌을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세계화라면 대찬성이다. 참 그거 아나? 영국에는 캔커피가 없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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