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 A
조나단 트리겔 지음, 이주혜.장인선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최근 들어 작가들의 첫 번째 소설들을 많이 대하고 있다. 지금 막 읽은 조나단 트리겔의 <보이 A> 역시 작가의 데뷔 소설이라고 한다. 영국 출신은 조나단 트리겔은 2002년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맨체스터 대학에서 창조적 글쓰기로 석사 학위를 받고, 2004년 <보이 A>를 발표한다.

이 소설은 1993년 2월 영국의 리버풀의 쇼핑센터에서 실제로 발생했던 아동 살해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두 명의 10살 난 소년들인 존 베나블스와 로버트 톰슨이 두 살 난 제임스 패트릭 불거를 살해했다. 경찰에 의해 검거된 이 소년들은 법원에서 최소 10년형을 선고 받았는데, 소설에서처럼 <선>지가 30만 명의 청원을 받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마이클 하워드에게 양형을 늘리도록 압력을 행사했다. 그들은 8년을 복역하고, 조건부로 2001년 풀려났다. 이런 실제 사건의 줄거리를 주지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면, 좀 더 이해가 쉬울 것 같다.

<보이 A>의 구성은 모두 24개의 영어 알파벳으로 시작된다. 실제 사건과 유사한 사건으로 소년원과 교도소에서 14년간 복역을 하고 자신의 신분을 감춘 채, 교도관이었던 테리의 도움으로 맨체스터에서 새 출발을 시작하는 소년 A, 아니 이제는 잭 버리지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여느 결손가정에서처럼 아버지와 어머니의 보살핌을 충분히 받지 못한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참혹한 아이들의 세상에서 항상 지는 역을 맡았던 잭은 어느 날 소년 B의 도움으로 비로소 자신감을 얻게 된다. 그동안 누려 보지 못했던 친구와의 즐거움들이 드디어 소년 A에게도 주어진 것이다. 아, 조나단 트리겔의 구성은 시간에 따른 연대기적 구성이 아닌 플래시백과 현재의 일들이 뒤죽박죽으로 맞물려 있다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처음에는 당혹스러울 수도 있지만, 책에 몰입할수록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구성이었다.

어머니가 죽고, 친부마저 자신을 떠난 잭에게 테리는 아버지 그 자체였다. 성난 군중들과 그들의 심리에 편승한 매스컴은 두 소년을 괴물로 몰아가고, 이미 재판을 하기도 전에 그들의 운명은 결정지어진다. 한 때 잭의 절친한 친구였던 소년 B는 교도소에서 레테의 강을 건너는 선택을 하고, 그보다 훨씬 약해 보였던 잭은 싸워 보지도 않고 질 수 없다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숱한 고난과 외로움의 장벽을 테리의 도움으로 뛰어 넘어 가석방에 성공한다.

14년이란 시간 동안 소년에서 청년이 되어 잭은 새 출발을 했지만 자신이 저지른 사건에 대한 죄책감과 언제라도 자신의 정체가 들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자유 속에서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렇게 같은 회사에서 일하는 미셸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동료 크리스와 우정을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잭에게는 모래성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모든 것이 거짓말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보이 A>에는 많은 담론들이 배어 있다. 우선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 교정기간을 통해 다시 사회에 복귀가 가능하냐는 회의론적 주장이 존재한다. 반면에 그들이 몇 달만 더 어렸더라도, 무죄가 될 수 있었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가 않다. 이런 측면에서 작가 조나단 트리겔은 주인공 잭에게 좀 더 동정적인 시선으로 접근을 시도한다.

잭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을 통해 독자들의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 상대적으로 극중 희생자인 안젤라 밀튼에 대해서는 조금은 편파적인 매스컴의 주장들을 배치시킨다. 가해자와 희생자의 구분이 어느 순간 모호해진다. 소년 A와 B는 가해자이면서도, 궁극적으로 희생자가 된다. 사실 잭은 새로운 관계를 설정해 나가면서, 자신의 정체에 대해 커밍아웃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을 한다. 그 이유는 스스로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들이 자신의 커밍아웃에 앞서 자신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그들의 관계는 모래성처럼 무너질 것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사실들이 생략된 진실”(223쪽)의 치명적 약점이다.

이제는 퀜틴 타란티노의 전매특허처럼 되어 버린 뒤죽박죽된 시간의 나열 역시 소설의 읽는 재미를 더해 준다. 조나단 트리겔은 치밀한 계산 아래, 스토리텔링의 고저를 파악해서 적시적소에 현재와 과거, 사건의 경중에 따라 이야기들을 배열한다. 그의 내러티브 연주에 독자들은 일희일비한다. 도저히 글쓰기를 전공했다지만, 초짜 작가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다.

작가는 용서와 화해라는 궁극적인 대전제를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맡겨 놓는다. 그가 비록 주인공 잭/소년 A에게 동정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그것에 대한 판단은 온전하게 책을 읽는 이들의 몫이다. 우리의 일상에서 그런 소년 A를 만나게 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떠한 편견 없이 그의 아픔의 눈물을 닦아 주고, 친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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