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가는 비둘기 똥구멍을 그리라굽쇼? - 디자인, 디자이닝, 디자이너의 보이지 않는 세계
홍동원 지음 / 동녘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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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며칠 동안 여기저기 이 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었다. 그런데 그전에 내가 읽던 책에 대해 지인들이 보이는 반응과 사뭇 다른 반응을 보여 주었다.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제목 때문이었다. 뭐 비둘기 똥구멍? 아니 비둘기 똥구멍을 본 적은 있나? 하고 웃어댔다. 글쓰는 아트 디렉터 홍동원 씨의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책 제목을 얼마나 잘 지어야 하는지 깨닫게 되었다.

홍동원 씨는 책의 말미에서 광고를 ‘악의 꽃’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쓴 이 책이 팔리기 위해선 광고를 해야 할진대 그러기 위해서라도 그의 제목 설정은 다시 한 번 탁월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독일 유학을 비롯해 아주 출중한 이력을 지닌 저자가 지난 30년간 몸을 담아온 디자인 판의 이모저모를, 디자인 업에 종사하는 틈틈이 익힌 글 솜씨로 아주 맛깔나게 잘 담아냈다. 멋지다!

책의 뒷면에도 나와 있는 질문인데 과연 디자인이란 무엇일까? 그 디자인을 한 마디로 하면 뭐가 될까? 이에 대한 대답을 홍동원 씨는 간략하게 하는 대신 이 한 권의 책을 통해 장황하게, 그리고 어떻게 보면 매우 간결하면서도 핵심적으로 짚어내고 있다. 라틴어 데지그나레(deginare)에서 유래했다는 디자인은, 한 마디로 말해서 관념 속에 들어 있는 아이디어들을 (조형적으로) 실체화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디자인의 본격적인 역사는 한 백년 정도로 볼 수가 있겠지만, 인간은 유사 이래로 디자인과 함께 해왔으면 특히나 현대문명은 디자인을 생각할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가 소비하는 거의 모든 것들이 디자인의 영향력 아래서 작동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저자는 디자인 세계를 구축하는 인적 요소로 다음의 세 가지를 지적한다. 우선 실체화를 담당하는 디자이너, 그 디자이너에게 일감과 일용한 양식을 공급해주는 클라이언트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산된 디자인을 소비하는 소비자, 일반대중이 있다. 이 삼위요소들의 역학관계를 저자는 아주 흥미로운 시각에서 풀어나간다.

피티(프리젠테이션)하지 않기로 유명한 아트 디렉터이자 디자이너답게 작가는 디자이너로써 클라이언트에게 꿀릴게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방침이 들지 않으면 다른 곳에 물어 보란다. 세상은 넓고, 클라이언트는 많으니까 말이다. 아티스트의 자존심이 빛난다고 해야할까? 그의 말에 수긍이 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기십 만원씩 하는 한정식상을 쏘는 클라이언트일수록 꼭 가격을 깎으려고 한다는 분석 또한 일품이었다. 아 그렇지 그렇고말고. 그런 쓸데없는 비용 말고,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있게 투자를 하란 말이다.

그 외에도 이 책에는 디자인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 간다. 사랑 바이러스 I♥NY의 주인공 밀튼 글레이저, 전 세계 공통으로 사용되고 있는 지하철 노선도의 초안을 고안해낸 전기 배선 엔지니어 해리 벡, 근대 파리를 통째로 뜯어 고친 르 코르뷔지에의 요상하기 짝이 없는 의자 이야기, 프랭크 뮬러의 크레이지 아워 워치, 마르쿠스와 다니엘이 만든 그 유명한 프라이탁 가방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화수분처럼 마구 샘솟는다. 특히 이 책을 나고 나서 하도 궁금해져서 화물 덮개 천으로 만든다는 프라이탁 사이트에도 방문해 봤다.

하지만 이 책 중에서 가장 나의 관심을 끈 저자의 주장은 바로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아이디어였다. 그가 독일 유학에서 교수에게 배웠다시피, 우리가 아무리 독일어를 잘하고 영어를 잘한다고 하더라도 그네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가장 자신 있는 한국어를 가지고,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디자인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이 가장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무조건적인 베끼기가 아닌, 창조적인 아이디어의 생산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년 전 뉴욕의 구겐하임 뮤지엄을 찾았을 때의 그 감동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다. 가는 길을 몰라, 물어물어 찾아가는데 저 멀리서 희여멀건 건물의 둥근 곡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동이란, 이루 다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나 같이 디자인에는 일천한 사람까지도 감동의 도가니탕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그 무언의 힘!!! 그것이 바로 21세기 우리가 추구해야할 디자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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