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왕비의 유산 - 개정판 쥘 베른 걸작선 (쥘 베른 컬렉션) 8
쥘 베른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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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요즘 어려서 읽었던 책들의 저자들을 다시 만나고 있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바로 읽었던 마크 트웨인이 그렇고, <인도 왕비의 유산>을 쓴 쥘 베른이 그렇다. 전자의 경우에는 톰 소여와 허클베리 핀의 모험으로 그리고 후자의 경우에는 <15소년 표류기>와 <해저 2만리> 같은 소설을 통해 아주 오래 전에 만났었다. 성인이 되어서 만나게 되는 옛 추억의 작가들의 이름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우선 <인도 왕비의 유산>에는 1870년 프랑스와 프로이센(독일)의 운명을 가른 전쟁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역시 프랑스 출신으로 애국심에 넘치는 쥘 베른은 소설에 등장하는 사라쟁 박사와 독일 예나 출신의 화학자 슐츠 교수라는 캐릭터를 통해 선악의 명확한 구분을 시도한다. 제목으로 나오는 인도 왕비의 어마어마한 유산(5억 프랑)이 예의 두 사람에게 유산으로 분배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프랑스인답게 사라쟁 박사는 유산으로 받은 돈을 인류의 복지와 발전을 위해 쓸 것을 선언한다. 한편, 자신의 유산의 절반을 사라쟁 박사에게 강탈당했다는 원한을 품은 슐츠 박사는 미국 오리건 주의 모처에 슈탈슈타트(강철도시)를 세워 예의 유토피아 프랑스빌을 파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사라쟁 박사의 아들 옥타브의 친구이자 조국 프랑스를 사랑하는 열혈청년 마르셀 브뤼크망은 슈탈슈타트에 비밀리에 침투를 해서 슐츠 박사의 가공할 만한 음모를 알아내는데 매진을 한다. 엄청난 자금과 뛰어난 소재 그리고 최첨단 기술로 40km 이웃한 프랑스빌의 10만 명의 사람들과 도시를 단방에 날려버린다는 끔찍한 계획을 알아낸 마르셀 하지만 그 자신도 생명의 위협을 당하게 된다.

<인도 왕비의 유산>은 표면적으로는 각기 다른 두 개의 이상을 가진 과학자들의 대결을 그리고 있지만 그 내면에는 이 책의 저술 8년 전에 프랑스가 프로이센에게 당한 처절한 패배가 자리 잡고 있다. 이 전쟁의 결과 프랑스는 알자스와 로렌 지역의 상당 부분을 프로이센에게 강제로 빼앗기게 된다. 주인공 중의 한 명인 마르셀의 고향이 알자스라는 설정 또한 눈여겨 볼만하다.

19세기에 이르러 전기의 도입으로 이루어진 눈부신 과학 발전의 힘으로 인류의 유토피아 건설에 한 발자국 다가가게 된 이면에는 전쟁기술 역시 발전하게 되면서 그 어느 때보다 대량살상의 위험이 극대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특히 슐츠 박사의 예에서도 보이듯이 거대 자본과 전쟁을 위한 기술력의 결합이 평범한 삶을 사는 현대의 인류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주고 있다.

쥘 베른의 다른 작품들을 읽어 보지 못해서 그가 계몽주의자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프랑스빌을 건설하면서 중국인 노동자들인 쿨리들의 노동력을 값싸게 이용하면서도, 신세계의 유토피아인 프랑스빌에 황인종의 발을 들여 놓지 못하게 하겠다는 인종차별주의적 제도적 장치를 옹호하는 듯한 발언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어쩔 수 없는 19세기 프랑스 지식인의 한계였을까?

작가의 눈에 비친 독일의 세계 정복 야욕에 대한 예언은 정확하게 반세기 후에 아돌프 히틀러의 제3제국을 통해 현실화된다. 아울러 게르만 민족이 가장 우수하다는 자의적 우생학에 근거한 슐츠 박사의 망상은 나치즘의 그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과연 그들의 이데올로기는 쥘 베른의 공상과학 소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가 있는 걸까.

비록 엉성한 이론이긴 하지만 19세기 말에 이미 지구 궤도를 도는 인공위성의 개념을 도입하고, 거대 포탄에 이산화탄소를 탑재한 생화학 무기에 대한 발상을 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쥘 베른의 상상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 수가 있었다. 게다가 그의 상상력은 많은 면에서 현실화되기도 했잖은가 말이다.

한 가지 <인도 왕비의 유산>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지 않았던 점 중의 하나는 미국의 영토 내에서 이뤄지는 불법적이면서도 폭력적인 슐츠 박사의 행동이 어째서 미국 연방정부의 개입을 초래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프랑스와 독일간의 민족국가의 대립의 연장선이라는 측면이 훨씬 더 크게 부각이 된 모양이다.

그동안 단순하게 아이들이 읽는 SF 공상과학소설 작가라고만 생각해온 쥘 베른의 다양한 작품 세계의 지평을 연 독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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