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네이크 스톤 -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
제이슨 굿윈 지음, 박종윤 옮김 / 비채 / 2008년 12월
평점 :
절판



 (제이슨 굿윈 작가의 홈페이지에서 찾은 보스포루스 해협의 스케치)

이스탄불, 지금은 터키 땅이지만 고래로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관문으로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비잔틴 제국의 수도로 삼은 이래 콘스탄티노플로 불려왔다. 그 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의 술탄 메메드 2세가 정복하면서 터키의 땅이 되었다. 이렇게 보스포루스 해협의 아시아 쪽 맞은편에 자리 잡은 이스탄불은 고대와 현대가 함께 존재하는 공간이다. 영국 출신의 작가로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비잔틴 역사를 전공한 제이슨 굿윈은 바로 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는 일단의 연작들을 발표했고, <스네이크 스톤>은 두 번째 이야기에 해당한다. 이미 그 첫 번째 이야기인 <환관 탐정 미스터 야심>이 우리나라에 지난 2007년에 이미 소개됐다.

제이슨 굿윈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터키 궁정의 환관(eunuch) 출신인 야심(Yashim)이다. 야심은 오스만 제국의 30번째 술탄인 마흐무트 2세(재위기간 1808-1839)의 봉신으로, 비록 신분은 환관이지만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마음을 지닌 터키 지식인의 전형이다. 개혁군주 마흐무트 2세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터번을 두르고 다니지만 그에게서 일체의 무슬림이 가진 종교색은 보이진 않는다. 이슬람 문화에 대한 작가의 중립적인 태도라고 할까.

이야기는 이스탄불의 모처에서 일어나는 린치와 살인사건으로 시작된다. 역시 팩션 소설들의 장기인 살인과 미스터리가 빠질 수 없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엉뚱하게도 오늘날로 치면 흥신소업을 하며 조용하게 살려고 하는 야심의 목을 죄어온다. 야채장수 조지가 린치를 당하고, 책방주인과 자신에게 도움을 청해왔던 프랑스인으로 자칭 고고학자라는 르페브르가 살해당하면서 야심이 유력한 용의자로 떠오른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뿐이다.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1453년을 끝으로 역사상에서 사라져 버린 천년제국 비잔티움의 전설이 서려 있다. 터키군이 콘스탄티노플로 막 난입을 하기 전, 아야 소피아 성당에서 마지막 미사 집전을 했던 총대주교가 의전 때 사용한 성찬 도구들의 향방이 관건이다. 혹자는 성배라고도 하고, 의견이 분분하다. 작년에 읽었던 존 J. 노리치의 비잔티움 연대기 삼부작이 이 책을 읽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그리고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도.

굿윈은 미스터리에 으레 등장하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나 냉철한 추리를 해내는 멋진 캐릭터 대신에, 그랜드 바자르로 대표되는 미로와 같은 이스탄불의 거리들을 삽입하고 온전하지 못한 존재인 환관 야심을 기용한다. 오스만 제국의 환관 출신인 야심은 그리스어는 물론이고, 프랑스어로 된 소설을 자유롭게 즐긴다. 게다가 또 한 요리하면서, 미각적인 즐거움까지 선사해주고 있다. 터키 음식이라고는 고작해야 케밥 정도 밖에 모르는 나에게, 아주 다양한 터키 음식의 소개는 색다른 체험이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동양기행>에서 언뜻 본 음식들이 떠올랐다.

작가는 현재의 이스탄불을 비잔티움,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이스탄불의 세 가지 정체성을 각각 고대, 중세 그리고 근대의 개념으로 치환시키면서 천수백년을 이어온 오늘날의 이스탄불을 너무나 매력적으로 묘사해주고 있다. 물론 그 중심에서는 ‘물의 도시’(어쩌면 이 표현이 이 소설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다)와 유스티아누스 대제가 건립한 세계 8대 불가사의라는 아야 소피아가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제이슨 굿윈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대중적인 신화적 요소들을 <스네이크 스톤>에서 많이 채용하고 있다. 클라이맥스에서 비잔티움 제국의 마지막 보물을 찾아 지하 수도를 헤매는 아멜리에와 야심의 모습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테세우스와 아드리아네의 근대 버전이었다. 미궁을 벗어나기 위해, 실타래를 푸는 아멜리에의 모습에서 예의 장면이 바로 연상이 되어졌다. 그리고 아마 작가의 프랑스 문학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평생 동안 프랑스 파리에는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야심이 당시 프랑스의 유명작가들인 발자크와 스탕달을 읽는 장면으로 치환되고 있었다. 아주 구체적인 작품의 이름까지 등장을 하는데 <고리오 영감>과 <적과 흑>이 그것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점 중의 하나는 도대체 이 팩션의 시대적 배경이 언제였는가 하는 점이었다. 그런 나의 궁금증은 책을 읽으면서 찾아낸 하나의 단서로 바로 풀렸다. 154쪽에서 키오스 섬의 학살 사건(1822)을 언급하면서, 지금으로부터 16년 전의 일이었다는 기술이 나오는데 그것으로 이 책의 시간적 배경이 1838년이라는 점을 알 수가 있었다. 또 하나의 미스터리가 아주 쉽게 풀렸다.

자신의 성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주인공 야심의 캐릭터는 아주 매혹적이다. 이스탄불의 터줏대감, 미로 같은 도시의 곳곳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는 술탄의 모후라는 든든한 빽도 가지고 있다. 프랑크 여인 아멜리에 르페브르와의 스쳐가는 로맨스 처리도 일품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랄라(실권을 지닌 부유한 가문에 봉사하는 신뢰할 만한 환관:45쪽) 야심의 다음 모험이 벌써부터 기다려진다(야심의 세 번째 이야기인 <벨리니 카드(Bellini Card)>가 미국에서는 이번 달에 출간이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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