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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 당신은 어떤 시간에 살고 있나요?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권국성) 옮김 / 다산책방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신문에서 어느 신예 작가의 내 삶의 책인가 하는 코너로 이 책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됐다. 그 글에서 이 책이 너무 좋아서 지인들에게 자주 선물하곤 했다는 말이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좋은 책이길래 하는 생각으로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을 해보니, 절판되었단다. 온라인 헌책방을 샅샅이 뒤졌어도 <아인슈타인의 꿈>은 도저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차에, 다산북스에서 재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는 그 자리에서 공중부양이라도 할 듯이 기뻤다.
이 책은 20세기 초반에 “상대성 이론”으로 유명한 실존 인물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특정 시기, 1905년을 그린 소설이다(이 해는 그가 특수 상대성 이론을 발표한 기념비적인 해이다). 글쓴이는 물리학자 출신의 앨런 라이트맨이다. 화려한 그의 경력을 여기서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물리학자이면서도 인문학의 소양을 두루 갖춘 지식인이라고 해두자.
소설의 배경은 스위스 베른이다. 도시를 굽어 흐르는 아레 강, 그리고 처음으로 등장하는 지명인 마르크트 거리와 베른 동쪽의 니데크 다리를 구글 맵의 도움으로 찾으면서 미지의 도시에 대한 윤곽을 잡아냈다. 참 세상 좋아졌다. 전지적 시점의 작가는 “시간은 원이다”라는 명제 하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바로 원형(圓形)의 순환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문득 기시감, 데자뷰(deja vu)가 떠올랐다. 더불어 불가에서 말하는 억겁의 윤회도.
작가는 미래에서 온 나그네를 임시주인공으로 해서 ‘만약에’라는 매혹적인 가정으로 독자들에게 시간의 일회성에 대해 각인시켜 준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시간의 진리, 지나간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현재는 미래를 조각한다는. 그리고 갑자기 가로, 세로 그리고 높이라는 세 가지 가능성으로 어떤 일들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는 이론적 설명이 불쑥 튀어 나온다. 놀랍다, 마치 오래 전에 본 영화 <런 롤라 런>의 감독 탐 튀크베어처럼 시간을 자유롭게 조종할 수 있을까? 우리는 매 순간마다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면서 살지만 그 중요성에 대해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중요성에 대해 정말 심각하게 깨닫게 된다면, 바로 미쳐 버릴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다가 문득 시간의 본질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명명한 “시간의 아티스트”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연구를 진행하던 중에 시간을 이해하고 싶게 되었다고 하던데. 그 이유가 뭐래더라, 신에게 더 가까워지기 위해서라고? 내가 보기에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은 절대적이면서도 너무나 상대적이다. 게다가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엉켜 있는 느낌이다. 앨런 라이트맨 같은 물리학자처럼 구체적으로 뭐가 어때서 그렇다고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뜬금없이 등장하는 세계 종말에 대한 가정은 인간들의 내면을 아주 조금 들여다 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해 준다. 모두가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면서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마음 말이다. 아마 누구나 세상 마지막 순간에 자신들에게 허락되지 않았거나, 하고 싶었던 일들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까.
어느 순간 앨런 라이트맨의 전지적 시점에서 진행되던 책은 드디어 아인슈타인을 등장시킨다. 하지만 곧 다시 그 이야기는 작가의 시점으로 돌아간다. 곧 이어 등장하는 계절에 따른 사람들의 심리묘사는 탁월하면서도 유쾌한 경험을 제시해준다. 질서 가운데 살기를 원하면서도, 무질서를 원하는 인간 본연의 심리라고나 할까. 봄기운이 뻗치면 모두들 무질서를 받아들이고, 다시 여름이 오면 질서정연하게 제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앨런 라이트맨의 서정적인 스위스 베른의 곳곳에 대한 풍경 묘사는 가히 예술적이다. 공학도 출신의 작가가 논리적인 글뿐만 아니라 이런 멋진 묘사의 기술을 보여준다니 놀랍기만 하다. 게다가 일상의 삶을 통해, 그 복잡하고 어렵다는 상대성 이론에 독자들을 이끌고 가는 솜씨는 역시 대가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간이 자신의 인식 영역 밖에 존재하는 시간의 존재에 토론 이야기는 일품이었다(103쪽). 더 나아가 그는 이 진지한 토의를 시간미학으로까지 승화시킨다.
이 책에는 아인슈타인과 더불어 유이하게 실존이 확인되는 유일한 인물로 그의 취리히 시절부터 친구였던 미켈레 베소(Michele Angelo Besso, 1873-1955)가 등장을 한다. 공교롭게도 아인슈타인과 같은 유대인이었고, 실제로 베른의 특허 사무실에서 함께 일했었다. 과도하게 연구에 매달리는 아인슈타인을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카메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꿈>을 읽는 동안 계속해서, 도대체 시간이 절대적인가 아니면 상대적인가 하는 것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을 해봤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근거한 시간에 대한 논의는 자못 철학적이기까지 하다. 과학 계통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그런진 몰라도, 개인적으로 인문학적 접근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이 우주에는 절대적이면서도 보편적인 진리가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인간이 가진 인식의 한계로 인해 그 절대 진리에 도달할 수 없다는 엄연한 사실이 새삼 깨닫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