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호두과자
크리스티나 진 지음, 명수정 옮김 / 예담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어느 평화로워 보이는 푸른 숲 속에 빨간 지붕을 한 <달콤한 호두과자> 가게를 상상해 본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 포레스트가 말하듯이 삶은 초콜렛 상자라고 했던가. 무엇이 들어 있는지 모른다고, 그 표현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책 <달콤한 호두과자>였다.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도무지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지 모르는.

책을 처음 집어 드는 순간, 그냥 책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에 딱 잡히는 손맛하며, 일러스트레이터 명수정 씨가 그린 나뭇잎과 티팟 그리고 갖가지 호두과자들의 형상들……. 그리고 그 안에서 펼쳐지는 호두과자 가게에서 일하는 주인공 마로의 이야기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느껴질 정도로 예뻤다.

이야기는 아버지를 잃고(그 이유에 대해서 작가 크리스티나 진은 살짝 빗겨간다), 호두과자 가게를 운영하는 소년 마로와 그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13살 난, 마로는 어머니를 도와 호두과자 반죽을 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심은 호두나무를 관리를 한다. 아버지는 호두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면 그들이 행복할거라는 잠언 같은 예언을 남긴다. 확실히 호두나무는 두 식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준다.

<달콤한 호두과자>는 모두 5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시대와 그 공간을 알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마로의 담담한 이야기가 풀어져 나간다. 어느 날 불현 듯, 자신들을 찾아온 빅풋 삼촌. 어머니는 혹 자신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게 되면 마로를 부탁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빅풋 삼촌은 다시 그들의 곁을 떠나지만 마로에게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으로 호두과자 반죽에 마술을 걸어 준다. 모든 일로부터 영감을 얻는 마로에게, 이 새로운 마술은 놀라움 그 자체이다.

여느 아이들처럼 자신만이 가지고 있어 하는 물건에 대한 소망을 가지게 된 마로. 그는 이웃 친구들이 타고 다니는 산악자전거에 그만 넋이 빠진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에도 여전히 일을 해야 하는 마로는, 어머니 심부름을 하느라 너무나 바쁘다. 하지만 소망하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동네 빵집 주인장 이한스 아저씨의 말에 용기백배하는 마로. 심부름 하다가 얼결에 더 받은 거스름돈으로 산악자전거를 사는 꿈에 젖기도 하지만, 자신을 속일 때마다 별이 하나씩 사라진다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에 번쩍! 정신을 차린다. 결국 마로는 사랑하는 어머니로부터 꿈에도 그리던 선물을 받게 된다. 아, 이 동화적 상상의 진수란.

자, 이제 나이가 차서 철이 든 마로는 어머니의 생일선물로 장미향이 나는 핸드크림을 직접 만들기로 작정한다. 모든 재료들은 준비가 되어 있으나, 단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으니 그건 바로 장미꽃잎이다. 결국 이웃 고퍼우드 씨네 집에 장미꽃잎을 서리하러 간 마로는, 보름달이 뜬 날 가슴 떨리는 만남을 하게 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풋내기 사랑의 미로에서 그 길을 잃어버리고 만다.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인 네 번째 에피소드 <호두과자 오리온의 탄생>의 순간이 되었다. 까다롭기로 유명한 마슈 아주머니네 네 명의 딸내미들을 위한 특별한 주문이 도착한다. 다른 딸들의 주문은 그럭저럭 해내지만, 맨 마지막 주문인 미각을 잃은 “문어대가리 먹물빛 머리의 딸”은 주문은 유별나다. ‘호두 크러쉬가 별처럼 총총하게 씹히는 맛’이란 도대체 어떤 맛이란 말인가. 가뜩이나 상상력 부족으로 고생하는 나의 머리는 이 기발하면서도 빼어난 판타스틱한 맛은 어떤 걸까 하는 상상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이건 아무래도 마로를 골탕 먹이기 위한 계략이 아닐까? 하지만 우리의 용감하고 불굴의 의지로 무장한 마로는 고객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로부터 영감을 빌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어린 시절 누구나 꿈꿔봤음직한 캠핑을 하면서, 별 총총한 맛을 알아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마로. 이제는 다시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아버지와의 추억들이 밤하늘에 오리온 별자리를 통해 오롯이 마로의 가슴에 아로 새겨진다. 그리고 붉은 꼬리 원숭이를 찾는다는 정체불명의 노인이 등장해서 별 총총한 맛을 해결할 수 있는 화두를 던져 준다. 그저 이야기의 전개가, 잃어버린 날의 동화 같은 판타지들이 정겨울 따름이다. 게다가 캐러멀 자갈이니 슈거 레이크 같은 말들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낸걸까? 경이로움의 연속이었다.

마지막 이야기는 사랑하는 엄마와의 이별이다.

한 10년 전 쯤에 보았던 <맛있는 청혼>이라는 드라마가 생각났다. 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도, 그 안에 상대방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아무 맛도 낼 수 없다고 했었던가. <달콤한 호두과자>의 주인공 마로는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호두과자 반죽을 하고, 날마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에게 호두과자를 물려준 아버지와 생명의 빛이 꺼져가는 어머니를 위해 마로는 오늘도 호두과자를 굽는다. 이렇게 만들어진 호두과자가 달콤하기만 하겠는가.

이 아름다운 동화의 작가 크리스티나 진은 호두 그리고 호두과자라는 어떻게 보면 볼품없는 매개체를 가지고 가족의 진정한 사랑을 스케치해낸다. 거창하게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그야말로 가랑비에 옷이 젖는지 모르게 그렇게 은은하게 사랑의 층위를 쌓아간다. 마로의 어머니가 마지막 순간에, 마로에게 알려주는 그들 가족만의 암호는 감동 또 감동이다. 그 누가 이렇게 아름답고 순결한 사랑의 초대장을 마다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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