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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마리아주 Tokyo Mariage ㅣ Style Mook 2
김호진.김미선 지음 / 브이북(바이널)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처음에 책의 표지를 보고서 여유롭게 와인 잔을 테이블에 놓고 있는 이가 누군가 싶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탤런트 김호진이 아니던가. 그리고 더 놀란 건, 탤런트로만 알았던 그가 복어요리를 비롯해서 무려 5개의 요리자격증을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닌가. 어느 캐릭터에 대한 평면적인 사고가 입체적으로 전환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그는 와인 마니아라고 불릴 정도로 와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았다. 아니 형이상학적으로 안다는 표현보다는 즐긴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김호진은 그렇게 와인을 찾아 도쿄 행에 오른다. 그리고 그의 여행의 목적성은 뚜렷하다. 현지에서 몇 대를 두고 물려 가며 가업을 잇는 장인 정신을 찾아서, 그리고 타인의 것을 모방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음식을 찾는 기행이었다.
개인적으로 지난 10월말에 일본 도쿄에 다녀왔는데,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아마 나도 현지답사를 나섰을 텐데 하는 진한 아쉬움에 젖었었다. 게다가 물가가 비싸기로 아시아에서 선두를 다투는 서울과 일본의 와인 값을 비교해 본다면, 일본이 더 싸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한 요리하는 작가가 말하는 대로 와인과 음식에도 궁합이 있는 법, 그래서 책의 제목도 그대로 <도쿄 마리아주>라고 짓지 않았던가. 좋은 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에서, 맛있는 음식까지 더해진다면 그거야말로 도원경(桃源境)이 따로 있겠는가 싶었다.
<도쿄 마리아주>에서는 모두 해서 36개의 와인 바와 레스토랑들이 소개가 된다. 특히 지난 가을 숙소가 있었던 아사쿠사의 <오사카야>는 언뜻 지나쳐 가며 본 듯도 싶었다. 진작 알았더라면, 당연히 들러서 음식 맛을 보았을 텐데 하며 아쉬워했다. 대를 이어 95년째 영업 중이라는 <오사카야>의 분위기는 정갈했다. 하지만 여전히 지면 만으로는 그 분위기와 미각과 그리고 음식과 와인이 주는 식감을 느낄 수가 없으니 안타깝기만 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와인 바 두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15번째로 소개되었던 오모테산도 노상에 있다는 오크통이 잘 어울리는 <카민>과 19번째 <우피>를 꼽겠다. 캐주얼한 분위기를 더 좋아해서 그런 진 몰라도 왠지 정장을 차려 입고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고품격의 레스토랑이나 와인 바보다 이렇게 선술집 분위기가 나는 곳이 더 마음에 들었다. 어느 가을날에, 오모테산도를 걷다 지친 발걸음을 쉬기 위해 큼지막한 오크통 앞에서 마시는 와인 한 잔의 여유란 상상만 해도 즐겁다. 도쿄에 갔을 적에 에비스 스테이션에 가긴 했었는데 <우피>의 존재를 몰랐던 나는 같이 갔던 동행과 함께 에비스 맥주만 마시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다음번에 도쿄에 가게 되면 ‘머스트’ 방문할 곳 중의 하나가 추가되었다.
일본에 갔을 때, 생맥주(나마비루), 카레, 돈까스 그리고 스시를 꼭 먹어 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마지막 스시를 못 먹어 본게 무척 아쉬웠는데, <도쿄 마리아주>의 지은이는 그 유명한 만화 <미스터 초밥왕>의 실제 모델이었다는 야마다 히로시 할아버지가 운영하게 <칸파치>에 들러 주인장이 그 자리에서 바로 만들어내는 스시를 마치 어미 새가 아기 새에게 먹이를 주듯 그렇게 받아먹으면서 직접 초밥을 만들어 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단다. 한마디로 말해서 완전 부러웠다. 나도 우에노에 가게 되면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상상을 해봤다.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점이 있다면 바로, 와인을 마시던 아니면 음식을 만들던 간에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조건 와인이 비싸다고 해서 좋은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중저가에서도 자신만의 와인을 고를 수가 있다는 것이 김호진의 주장이었다. 그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개인적으로 독일 라인 지방에서 나는 리슬링 품종의 와인을 좋아하는데, 그 가격이 천차만별이라는 것을 몸소 깨달았던 적이 있었다. 그 때만 하더라도 오래되고 비싼 와인이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몇 번 테이스트를 해보면서 가격이 싸고 영(young)하더라도 내 입맛에 딱 들어맞는 와인을 찾을 수가 있어서 아주 즐거웠던 적이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오래간만에 리슬링 와인 한 잔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