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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행
시노다 세츠코 지음, 김성은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스토리는 아주 간단하다. 가정에서 기르는 골든 레트리버가 이웃집 아이를 물어 죽였다. 물론 그 아이가 이웃집까지 넘어 가서 그 개를 괴롭히다가 개주인에게 과실 책임이 돌아가진 않지만 그래도 도의상의 책임이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런데 개주인은 그 개를 보호하기 위해, 도쿄에서 나고야까지 이사도 생각하고 있다. 결국 개주인은 개를 데리고 가출을 하게 된다. 이게 이 책 <도피행>의 전체적인 줄거리이다.
어떻게 보면 아주 단순한 이야기지만, 한 꺼풀 벗겨 내고 이야기의 본질을 살펴보기 시작하면 그리 만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걸 바로 알게 된다. 여주인공의 이름은 다에코상, 그리고 그 골든 레트리버의 이름은 포포. 다에코상은 평범한 주부로 두 딸을 키우고, 남편 뒷바라지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해본 적이 없는 매우 평범해 보이는 전형적인 일본 중산층의 주부이다.
하지만 이 다에코상의 평화스러워 보이는 가정에는 아주 심각한 의사소통의 부재가 내재되어 있다. 딸들은 포포에 대한 어머니 다에코상의 집착을 갱년기 장애로 치부해 버리고, 남편은 노후 대책을 위해 나고야에 집을 사면서도 일절 다에코상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는다. 게다가 다에코상은 일전에 자궁 근종 수술까지 받아 건강한 몸도 아니다.
뭐 이 정도 상황이라면, 아주 작은 불꽃 하나만으로도 폭발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뇌관을 바로 그 집에서 기르는 못난이 골든 레트리버 포포가 촉발시켜 버렸다. 이 기가 막힌 스토리를 가만 놔둘 리 없는 매스컴의 집요한 추적과 이웃들의 냉정한 시선을 이기지 못한 다에코상과 포포는 가출을 감행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빈손으로 나선 건 아니고, 2000만엔이 든 남편의 통장과 인감도장을 들고서 말이다. 어딜 가더라도 돈이 필요하다는 건 기본 아닌가 말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중년의 다에코상과 노견 포포의 예측불허의 모험담이 펼쳐진다. 몰래 남의 차를 훔쳐 타며 시작된 그들의 도피행은 히치하이킹과 어느 시골집에 세를 들었다가 추격을 당하고 다시 정착하는 과정이 반복이 된다. 그런 가운데, 자신을 가족을 위해 희생한 다에코상의 무력한 모습들이 하나하나 들어난다. 근 30년간을 가정을 위해 봉사해 왔건만, 자신의 딸들은 자신의 이야기는커녕 이해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원래 사냥견을 길들여서 교배한 종인 골든 레트리버인 포포는 야생에 살게 되면서 자신의 먹을 것을 사냥으로 해결하게 되면서 점점 야성화 되어 간다. 동시에 진행되는 포포의 노화는 다에코상을 절망으로 몰고 간다.
소설 <도피행>은 우리 어머니 세대의 슬픈 비가의 형식으로 독자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의 장인 가족에서 철저하게 남편과 자식에게 소외당한 어머니인 여성은 평안과 안정을 버리고, 대신에 위험천만한 모험 길에 나선다. 그것도 사람도 아닌 애견과 함께 말이다. 여기서 포포의 존재는 다에코상에게 가족의 존재 이상으로 비약된다.
결말은 도피행의 진행과 과정에서 주는 기대감을 잘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일탈적인 다에코상의 도피행이 시간이 흐르면서 일상의 삶 속으로 어이 없이 스러져 버리면서 뭐랄까 맥이 빠져 버렸다. 하지만 다시 한 번 일상의 일어날 법한 일과 상상의 조화라는 경계의 줄타기에 흠뻑 빠질 수 있었던 독서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