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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작인간
샤를로테 케르너 지음, 조경수 옮김 / 브리즈(토네이도)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즐겨 쓰는 표현 중에 용두사미(龍頭蛇尾)라는 표현이 있다. 첫 시작은 멋졌으나, 뒤에 가서는 흐지부지된다는 뜻으로 주로 쓰인다고 할 수가 있겠다. 오늘 이야기할 샤를로테 케르너의 <걸작 인간>만큼 이 표현을 쓰기에 적합한 책도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디어의 발상은 기발하기 그지없다. 18세의 요제프 메치히는 애인을 만나러 자전거를 타고 가는 길에 우연한 사고로 후두부를 연석에 부딪쳐 뇌사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32살 난 화가 게로 폰 후텐은 자동차 사고로 화가에겐 생명과도 같다고 할 수 있는 오른손을 절단하고 다른 손도 거의 으스러지는 불운에 빠진다. 여기 또 다른 주인공으로 유능한 신경외과의사인 레나 마리아-크라프트 박사가 등장한다.
요제프와 게로의 유족들(?)의 신체 이식 동의하에, 프로메테우스 재단의 지원을 받는 크라프트 박사 팀은 치밀한 준비 끝에 뇌사한 요제프에 몸에 게로의 머리를 접붙이는 이식수술 그 중에서도 최고의 난이도를 요하는 WBT(Whole Brain Transplantation)에 도전하게 된다. 전무후무한, 그야말로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이들의 도전이 어떻게 귀결되지 궁금해졌다. 게다가 윤리적인 문제들까지 더해져서 이야기가 더 복잡해질 것은 너무나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크라프트 박사가 이끄는 수술 팀에 의해 새로이(!) 창조된 JM/GH 는 누구에 속해져야 하는 걸까. 책에서는 게로가 수혜자가 되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체에 따른 기억들이 전부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는 걸까. 이런 치열하기 그지없는 논쟁 가운데, <걸작 인간>은 이미 200년 전에 발표된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과 동종 교배를 시작하게 된다. 실제로 책에서도 후반부로 갈수록 <프랑켄슈타인>에 대한 언급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인간이 만들어낸 테크놀로지에 의해 새로운 인간형이 창조된다는 발상에서 벌써 <프랑켄슈타인> 이야기가 빠질 수 없겠다는걸 본능적으로 느꼈지만, 샤를로테 케르너는 공공연하게 메리 쉘리의 이야기를 빌려 오고 있었다. 왜 작가는 이렇게 매력적인 소재를 가지고서, 빅터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괴물’을 만들어낸 것처럼 자신만의 독창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메리 쉘리의 품으로 투항을 한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결말로 갈수록 읽기가 버거워져 버렸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요르게(JM/GH의 새로운 인간형)를 만들어낸 창조주로서의 레나의 감정적 전이와 요제프의 전 여자 친구로 자신의 남자친구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알고 요르게를 철저하게 이용하는 리타 지몬의 행동들과 캐릭터 창조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다시 한 번 세상 아래 새로운 어떤 것을 창조해낸다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는 독서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