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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특별한 악마 - PASSION
히메노 가오루코 지음, 양윤옥 옮김 / 아우름(Aurum)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책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왜 주인공의 이름이 프란체스코였을까?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아시시 출신의 가난한 자들의 성자 프란체스코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프란체스카라고 지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계속해서 책을 읽다 보니, 주인공의 젠더는 여성이지만 그와 불편한 동거를 하는 또 다른 까칠한 성격의 주인공은 남성이 아니었던가. 조금 이해가 되는 명명이었다.
책의 표지를 보면, <내 안의 특별한 악마> 옆에 달린 부제로 “PASSION"이라는 영어 단어가 수줍게 달라붙어 있다. 이 단어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열정’이라는 뜻과 더불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뜻이 숨어 있다. 자, 그럼 이제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열정과 수난의 세계 속으로 뛰어 들어가 보자.
주인공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왼쪽 팔뚝에 종기가 난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이 종기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사람의 낯짝을 닮은 종기(인면창이라고 불린다)는 원래 자리에서 프란체스코의 은밀한 곳으로 위치이동을 해서 그녀와 수년간에 걸친 동거에 들어가게 된다. 그것만이면 좋다, 도저히 여자로서 매력이 없는 프란체스코에게 온갖 폭언에 독설을 퍼붓는다. 그럼 이 짜증나는 상황에 대한 프란체스코의 대처방식은? 그녀가 이름 붙인 이 인면창인 고가 씨의 말은 하나도 틀린 게 없고 사실이다. 그렇게 때문에 그녀는 고가 씨의 말에 수긍을 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이 독특한 발상을 착안한 작가 히메노 가오루코는 <내 안의 특별한 악마>를 네 개의 장으로 구성했다. “소녀의 기도”, “세레나데”, “엘리제를 위하여”, 그리고 “백조의 호수”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피아노 소품들을 제목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녀가 독설가 고가 씨의 입을 빌려 내뱉은 이야기들은 모두 섹스와 관련된 말들뿐이다. 그녀에게 지고지순한 사랑 이야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남녀 간의 관계는 바로 그 섹스로 귀결이 된다. 선남선녀가 만나서 무슨 짓거리를 하던 간에 마지막 종착지는 빤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뻔뻔한 주장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고, 고갯짓으로 상념들을 허공으로 날려 버렸다.
자신의 연애사는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는 프란체스코가 자신의 보금자리를 개조해서 치바 최고의 러브호텔로 만들어서 청춘남녀들에게 제공을 하고, 더 나아가서는 그들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해서 사랑의 메신저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이 참 재밌었다.
그리고 주인공 프란체스코의 이미지는 작년 여름에 아주 재밌게 봤었던 아야세 하루카 주연의 <호타루의 빛>에 나오는 여주인공 ‘건어물녀’와 일맥상통하는 느낌을 받았다. 도대체 연애는커녕 에로에는 젬병인 주인공, 그 주인공을 계몽하는 역할을 맡은 고가 씨와 부쬬(부장)의 그것 또한 거의 유사했다.
어쨌든 <내 안의 특별한 악마>는 재밌다. 다만 지난 천년에 나온 책이 우리에게 조금 늦게 도착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