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책 일루저니스트 illusionist 세계의 작가 4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 지음, 조원규 옮김 / 들녘 / 2006년 2월
평점 :
품절


들녘 출판사에서 소개하는 영미권의 작가들이 아닌 제3세계의 다양한 문학들을 만나볼 수 있는 일루저니스트 세계의 작가 시리즈의 한 권인 <위험한 책>과의 만남을 가졌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카를로스 마리아 도밍게스라는 작가의 작품이었다. 서점에서 만났던 이 책과의 첫 대면에서 얄팍하니 금세 읽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목에서 말해고 있다시피, 책이 위험하다고 작가 도밍게스는 서두를 시작한다. 인류의 무지와 암흑의 세계로부터 해방시켜준 책이 위험하다고 하다니 도대체 무슨 소리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사상이나 정신적인 차원에서 책이 위험하다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가진 치명적인 물리적 위험에 대해 언급하면서 책의 서두를 시작한다.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스페인어학부 강의를 맡고 있던 블루마 레논이 에밀리 디킨슨의 시집을 든 채 불의의 교통사고로 작고하게 된다. 그리고 그녀의 대타로 투입되게 된 화자인 “나”는 이야기를 풀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루과이에서 죽은 블루마에게 의문의 소포 꾸러미 한 개가 도착하면서 <위험한 책>의 미스터리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소포 꾸러미 속에서는 시멘트 가루가 폴폴 피어오르는 조셉 콘래드의 <섀도 라인>이라는 책이 튀어 나왔고, 그 책을 보낸 카를로스 브라우어를 찾기 위해 “나”는 머나먼 여정에 나서게 된다. 나의 고향인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우루과이의 몬테비데오까지 브라우어에게 책을 돌려주기 위해 가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나. 나에게는 그럴 어떤 의무도 없었지만, 이 기묘한 여행을 통해 열혈 애서가 브라우어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들을 취합해 그에 대한 그림을 그려 나간다.

대형서점의 호르헤 디날리 그리고 역시 애서가로 뛰어난 서가를 자랑하고 있는 오귀스트 델가도를 만나면서 어쩌면 이 책의 실제 주인공인 브라우어에 대한 독자들의 호기심을 증폭된다. 델가도가 말하는 책에 대한 브라우어의 ‘사랑’은 우리가 상상하는 정도를 훨씬 뛰어 넘는다. 열광적으로 책을 읽고 모으는데 열중했던 브라우어는 지나친 책에 대한 사랑에 때문에 친구들과도 관계가 끊어지게 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지만, 그에 책사랑은 멈출 줄을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생한 화재 때문에 열정을 다해 만든 도서목록을 소실하게 되면서 라 팔로마로 떠나 집을 짓게 된다. 바로 그 집에서 이 이야기의 근원을 찾게 된 나.

이 책은 본질적으로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물론 그 객체가 바로 책으로 나오지만, 그 관계는 우리 일상의 다른 것들로 치환가능한 존재이다. 우리가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듯이, 실제 주인공 브라우어는 책을 통해 그 모든 것을 구현하기에 이른다. 책을 읽으면서 점점 더 책에 나오는 애서가들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는 나로서는 무척이나 공감할 수가 있었다.

책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은 단순한 수집과 읽기라는 본연의 목적에서 벗어나 통제할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삶에 있어서 우선순위는 그 모든 것에 대해 ‘책’이라는 물질이 우선하게 된다. 우리가 살면서 모든 것을 얻을 수가 없듯이, 책에 대한 지나친 사랑은 오히려 행복과 즐거움을 우리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번민의 근원이 된다. 책을 보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내 머릿속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책을 읽으면서 도밍게스가 풀어 나가는 책 이야기에 어느 순간 동화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책을 읽으면서 각각의 책에 대한 사연을 만들어 가고 있는 나에게, 또 하나의 사연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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