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쟁이 톨로키
자케스 음다 지음, 윤철희 옮김 / 검둥소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우연한 기회에 남아프리카 출신의 작가 자케스 음다를 알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음다의 작품 두 권이 도서출판 검둥소를 통해 소개가 되었는데 <행복한 마돈나>와 <곡쟁이 톨로키>가 그것이다. 왜 <행복한 마돈나>가 아닌 <곡쟁이 톨로키>를 먼저 선택을 했는지 아이러니하다. 아마 제목에 들어가 있는 “곡쟁이”라는 낯선 단어가 주는 자극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물론 <행복한 마돈나>도 수중에 있어서 곧 읽을 예정이다.

<곡쟁이 톨로키>의 주인공은 두말할 것도 없이 곡쟁이라는 희귀한 직업을 가진 톨로키이다. 그는 스위스 롤에 파를 곁들여서 먹으면서 일상 가운데 죽음이 흘러넘치는 남아프리카의 어느 곳에서 곡을 하면서 하루하루의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러던 중에 그는 어느 꼬마아이의 장례식에서 18년에 떠난 고향의 동향인인 노리아를 만나게 된다. 그 ‘건방진 계집’ 노리아는 자신의 아버지 즈와라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애증의 관계이다.

톨로키가 지금 살고 있는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고향에서, 아버지 즈와라는 대장장이였다. 그리고 노리아는 즈와라의 친구 제시베와 ‘산골 여자’의 딸이었는데, 노리아는 즈와라의 창작의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존재로 그녀가 노래를 부르면 즈와라는 자신만의 입상들을 만들곤 했다. 즈와라는 자신의 자식인 톨로키보다도 노리아를 더 사랑했다. 인물이 변변치 않은 톨로키는 내내 그렇게 이웃들이나 친구들로부터 그리고 심지어 자신의 아버지로부터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

소설은 계속해서 현재에 벌어지는 톨로키와 노리아의 관계 가운데서, 플래시백으로 독자들을 과거로 향한 시간여행을 인도한다. 마치 하나하나 그 둘에 얽힌 이야기들이 풀어져 나가면서 그들의 삶에 대한 궁금증들이 풀려 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나 우리에게는 전혀 낯선 남아프리카 공동체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은 물론이고, 부족 간들의 갈등, 극단적인 폭력과 그에 수반한 죽음들이 일상화되어 버린 그네들의 삶은 가히 충격적으로 다가온다.

주인공 톨로키가 고향을 떠나 도시로 도망쳐 갔을 때, 얼핏 그 이유를 댔던 것처럼 “사랑과 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도시에서의 삶은 외롭고 신산하기만 하다. 특별한 기술이 전무했던 톨로키가 어디서나 벌어지는 일상의 죽음에서 자신의 천직이라고 생각한 ‘곡쟁이’라는 직업을 개발해낸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게다가 그는 남들이 가지지 않은 “슬픈 눈동자”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던가.

한편, 노리아의 형편 역시 나을 것이 없었다. 톨로키가 대개의 시골 청년들의 삶을 반영한다면 노리아의 경우는 시골 처녀들의 그것이었다. 나푸라는 남자와 눈이 맞아 가족들을 버리고 도시로 향했지만 그들에게 미래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경제적 무능력은 그들 가정의 파탄을 예고하고 있었다. 결국 첫 번째 아들 부타와 전 남편 나푸를 비참하게 잃은 그녀는 결국 도시의 판자촌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찾게 된다.

아이들마저 놀려 대는 톨로키에 대해 살아가는 법을 안다면서 존경하는 마음을 숨기지 않는 노리아. 그리고 정말 어울리지 않는 실크해트에 망토로 무장한 소위 작업복을 입은 톨로키는 동향의 동생 노리아를 진심으로 도와주고 싶어 한다. 정착촌의 자경단인 젊은 호랑이들의 비행으로 두 번째 부타를 잃고 집마저 화재로 잃어버린 노리아를 돕는 톨로키. 그들은 절망 가운데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새로운 내일을 향해 달려가는 남아프리카 사람들의 표상처럼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동안 미국이나 유럽의 소설 혹은 한동안 금지되어 있던 이웃 일본의 소설들은 많이 읽을 수 기회가 있었지만 아프리카나 남태평양 같은 제3세계의 글들은 상대적으로 접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마도 소재의 다양성이나 우리가 비교적 잘 알지 못하는 문화권의 이야기들이 전자들의 그것에 비해서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닐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출간되고 있는 제3세계권 문학들의 소개는 정말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다.

얼마 전에 읽었던 에펠리 하우오파의 <엉덩이에 입맞춤을>에 이어 읽게 된 자케스 음다의 <곡쟁이 톨로키>는 이런 최근의 추세를 반영하고 있는 책 중의 한 권이다. 물론 우리에게 잘 알려진 작가들이 아니기 때문에 출판사의 입장에서도 고려하게 되는 수익성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는 정말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죽음이라고 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장 피하고 싶어 하는 현실에 자신의 직업을 투영시킨 톨로키의 삶을 통해 우리는 오늘날의 남아프리카의 현실을 보게 된다. 농촌에 사는 이들이 모두 톨로키가 말했던 ‘사랑과 부’를 찾아서 나서는 모습은 산업화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발생했던 이촌향도(離村向都)의 모습을 닮아 있다. 우리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서로 적대시하는 부족 간의 갈등에서 비롯한 유혈폭력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비극적인 현실이었다. 상당수의 죽음이 바로 이 갈등에서 비롯되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가 있었다. 하지만 또 역설적으로 자신의 공동체에서 떠난 이들이 물설고 낯선 도시에서 의지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동질감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서였다. 노리아와 톨로키처럼 그들은 서로에게서 위안과 격려를 받고, 살아가는 법을 하나씩 배워간다.

죽음이라는 실존적 상실이 곳곳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들지만, <곡쟁이 톨로키>는 사람간의 관계와 화해를 도모하는 따뜻한 소설이다. 곡쟁이 톨로키는 이렇게 우리에게 묻는다.
“그대, 살아가는 법을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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