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리 하우오파.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이 책 <엉덩이에 입맞춤을>을 쓴 통가 출신의 인류학자이자 작가이다. 1939년 통가 출신의 선교사 부모님 슬하에서 파푸아 뉴기니에서 태어났다. 뉴기니-통가 그리고 피지를 잇는 그야말로 남태평양 토종 작가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울러 그의 작품을 통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남태평양 출신의 작가가 쓴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바로 남태평양에 있는 가상의 섬, 티포타에 사는 오일레이 봄보키 그리고 그의 엉덩이 질환이 주소재이다. 아니 좀 더 에펠리 하우오파 스타일로 까발리자면 똥구멍이 문제라는거다. 하지만, 비위가 약하신 분들도 있을 터이니 앞으로는 항문으로 통일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다. 어쨌든 남태평양에 둥둥 떠 있는 조그만 섬 티포타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유명인사인 우리의 주인공 오일레이가 정말 남부끄러운 병에 걸려 고생을 하게 됐다. 그의 전력은 전 헤비급 챔피언으로 철저한 남성우월주의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정말 남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병이 났다면 바로 고쳐야 할 것이 아닌가. 하지만 티포타 사람들 모두 현대식 병원에 가기를 꺼린다. 그건 바로 병원에 가서 병이 낫는다는 보장도 없거니와 우수한 의료진과 약품의 부족으로 담당의사인 타우비 메이트마저 병원에 오는 것을 마다할 정도란다. 그래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치료사 혹은 치유사라고 불리는 엉터리 주술사들이다. 하지만 어느 의사들도 그리고 도토레(치료사-치유사들의 고상한 표현이랄까)들도 오일레이의 엉덩이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또 티포타 사람들은 어찌나 그렇게 남의 이야기들을 하기 좋아하는지 그렇게 쉬쉬했건만 오일레이의 엉덩이에 대한 비밀은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을 정도로 그렇게 전국적인 소문이 되어 버렸다. 이어지는 에피소드들은 정말 포복절도할 만큼 재밌고 신나는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지은이 에펠리 하우오파는 역시 인류학자답게 곳곳에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에 대한 분석들을 죽 나열해서 보여 주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타인에 대한 지나칠 정도의 관심과 걱정들이 그것이다. 이제 핵가족화의 전개로 전통적 지역공동체의 개념이 파괴된 우리나라에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모습들이 그네들의 삶 가운데서는 절절하게 드러나고 있다. 현대의술이 아닌 전통신앙에 의존한 치료사 혹은 치유사들에게 병 치료를 구하는 모습도 낯설기만 하다. 하지만 그네들만의 문제가 아니듯이, 정도에 상관없이 일단 아프면 돈이 든다. 하지만 먹을 것조차 변변하지 않은 마당에 남태평양에 사는 이들이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고 치료를 받을 수 있을까? 그들이 병원을 찾지 않는 이유는 단지 현대의학이 못미더워서만이 아닐 것이다. 값비싼 진료비와 그에 상응해서 들게 되는 약값을 도대체 감당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뭐 이런 문제는 마이클 무어의 <식코>에서 보이듯이 제3세계의 문제만은 아니지만. 주인공 오일레이가 부인 마카리타에게 청혼하는 과정 또한 남태평양의 풍습을 엿볼 수 있는 재미를 보여준다. 이름나고 이젠 지역유지로 돈 많고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은 오일레이가 우연한 기회에 자신의 미래의 와이프 마카리타를 만나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단도직입적으로 마카리타의 부모님을 찾아가서 그네들의 딸을 자신에게 달라고 하자 마카리타의 부모님들은 엉뚱한 오해를 하면서도, 과히 싫지 않은 내색을 한다. 에펠리 하우오파의 재치와 유머가 반짝반짝 빛을 낸다. 자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하필이면 신체의 많은 부분 중에서 하필이면 작가는 엉덩이를 소재로 삼았을까? 일단 어느 정도는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에 의거한다고 한다. 4년간의 엉덩이 질환으로 고생한 그는 자신의 엉덩이가 다 나으면서 엉덩이를 소재로 한 글을 쓰겠다고 마음먹는다. 신체의 부위 중에서 가장 천대 받는 엉덩이를 위해서 말이다. 그건 바로 은유적으로 세계사적 국면에서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는 남태평양 아일랜더(섬나라 사람들 정도가 되겠다)들을 지칭한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남태평양 바다는 강대국들의 핵실험장이 되고, 참치사냥을 위한 낚시터가 되고, 돈 많고 부유한 관광객들을 위한 휴양지가 될 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네들의 삶의 연속성을 계속된다는 것이다. 엉덩이가 아프고, 그 아픈 엉덩이를 낫게 하기 위해서 굿판을 벌이고 침을 맞고 별의별 짓을 다해도 낫지가 않는다. 가난과 고통의 질곡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3세계인들은 몸부림을 치지만 그들의 현실은 냉혹하기만 하다. 하우오파의 그런 재밌는 해학 속에는 이런 반의적이면서 고의적인 숨김 들이 존재한다. 확실히 <엉덩이에 입맞춤을>은 읽기에 재밌는 책이다. 하지만, 살짝 한 꺼풀만 벗겨 보면 21세기를 살아가는 남태평양 사람들의 삶의 애환들이 책의 곳곳에 배어 있다. 이런 뛰어난 작품을 만나게 된 행운에 입맞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