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보다 소중한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하연수 옮김 / 문학수첩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정말 오랜만에 하루키와 만난 것 같다. 하루키의 열혈 팬임을 자부하는 동생 덕분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들을 읽게 되었었다. 새로 나온 책인가 하고, 책을 펴보니 2001년에 나온 <시드니!>가 원작이라고 한다. 난 마라토너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이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지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기간 중에 직접 시드니를 찾은 하루키가 현장을 누비면서 직접 쓴 글이었다.

8년이나 지난 당시의 일들은 사실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당시에 올림픽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던지라 누가 무슨 메달을 따고 그랬는지도 알 도리가 없었다. 하루키는 이 책을 쓰는 내내 올림픽이 “지루”하다고 했지만 난 한술 더 떠서 그 지루함에 아예 동참할 생각이 없었나 보다. 어쨌든 언론사에서 준 미디어 패스를 목에 걸고, 현장을 취재한 하루키 덕분에 생생한 당시의 상황들을 지면으로나마 간접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하루키는 자신이 올림픽 종목 중에서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종목인 철인3종경기와 마라톤에 대해 심층적으로 다룬다. 하루키의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당시 여자 마라톤에서 일본 선수가 금메달을 땄었다고 한다. 그 이름은 책을 읽었어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루키가 책에서 내내 근대 올림픽 정신을 훼손시키는 두 가지 해악으로 짚은, 상업주의와 국가주의 중에서 두 번째 이유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인들의 시선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올림픽 경기에 스폰서를 맡는 것처럼 효과적인 홍보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의 유수한 기업들이 너도나도 달려들어 날이 갈수록 그 비용이 늘어가는 올림픽 스폰서쉽에 그렇게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기에, 국가주의만큼이나 상업주의도 스포츠계에서 경계해야할 것이다.

하지만 나도 한국 사람인 이상, 당시 동메달이 걸린 한일야구전에서 우리나라 대표 팀이 지금은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고 있는 당시 일본팀의 에이스 마츠자카를 넉다운시키는 장면에서만큼은 뿌듯한 감정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일본 킬러로 알려진 4번 타자 김동주의 결승타로 결국 일본을 꺾었으니 말이다. 어쩌면, 하루키는 이런 마음들을 예리하게 사전에 짚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하게 펼쳐지는 올림픽 경기들 외에도 올림픽 기간 동안만이지만, 오지(Aussie:호주) 사람들과 지내면서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글로 담아내는 과정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다년간의 외국생활 덕분인지 어쨌든지(아니면 자신의 말대로 괴짜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일본인 특유의 ‘국가주의’ 정신 대신 절제된 감정의 표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동시에, 나도 이런 경험을 해봤으면 하는 부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정작 제목으로 뽑은 “승리보다 소중한 것”이 뭐지?라는 질문에는 슬쩍 비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차피 그런 것은 뭐 독자 개개인이 판단할 부분이니 우리는 하루키 선생이 중계해 주는 지난 시드니 올림픽의 재방송을 보는 재미에 흠뻑 빠지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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