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타임
사토 다카코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아마 이 책을 서점에서 골라 들거나 혹은 온라인 서점에서 주문클릭을 한 대부분의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표지의 일러스트였을 것이다. 빨간 자전거를 탄 소년과 그 뒤에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뒷좌석의 안장을 잡고 가는 소녀의 모습은 허공에 휘날리는 한송이 꽃잎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그야말로 멋진 한 폭의 수채화가 탄생했다.

이 일러스트에 보이는 두 캐릭터가 바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소설 <서머타임>에 등장하는 세 명의 주인공 중에 고이치와 가나다. 또 다른 주인공 슌은 가나의 남동생이다. 일본 출신 작가인 사토 다카코의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열한살에서 열아홉살까지의 소년소녀들의 이야기를 다룬 글이다. 그리고 <사계(四季)의 피아니스트>라는 부제답게 소설의 메인 테마에는 조지 거슈인의 <서머타임(Summertime>이 그리고 맹인 재즈 피아니스트 조지 셰어링의 <9월의 비(September in the Rain)>가 내내 그렇게 흐르고 있었다.

여름, 봄, 가을 그리고 겨울의 사계절에 따라 화자들이 슌에서, 가나로, 고이치로 다시 가나로 돌아가 끝맺음을 한다. 사실 글 가운데 시간의 흐름은 중요하지 않다. 주인공들은 모두 자신들의 시선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하고, 자신들의 감정을 드러낸다. 하지만 묘하게 서로 상화작용을 통해, 물음표로 채워진 공간들을 보충해 주면서 전진한다. 이런 시간의 흐름에 따른 연대기적 구성에서 탈피한 구성은 우리가 궁금해 하는 여백들을 채워 주면서 이야기 전개에 감칠맛을 내주는 조미료 같은 역할을 한다.

이제는 어느덧 일본 소설 혹은 드라마에서 빠질 수 없는 소품으로 등장한 자전거는 이들 삼총사에게는 도전이자, 궁극적으로는 화개를 위한 매개체로 사용된다. 확실히 책 표지에서 보여주는 시각적 이미지가(빨간 자전거) 엄청나다. 그리고 슌-가나-고이치는 모두 피아노라는 두 번째 소설적 장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묶여져 있다. 피아노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 간절하게 피아노를 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람 그리고 그 때문에 피아노를 치게 되는 사람. 아, 그리고 부수적으로 피아노를 통해 밥벌이를 하는 사람도 두 명이나 등장을 한다.

작가가 최대한 어린 아이들의 시선에서 사건들을 보고 쫓다 보니, 자연스레 솔직한 표현들도 나온다. 어린 슌이, 고이치가 연주하는 조지 거슈인의 <서머타임>을 듣고서 당시엔 재즈가 뭔지도 모르고서 마냥 좋아하게 되었다는 고백에서는 그런 디테일이 느껴졌다. 아버지를 잃고, 시니컬하게 변해 버린 고이치와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는 새아버지 후보 간의 갈등은 새삼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비어 버린 아버지의 자리에 그 누가 다시 새로운 오이디푸스를 채워 넣으려 하겠는가. 지나가는 농담처럼 집에 남자 한 명이면 된다고 했던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어쩌면 독자들이 원하는 결론을 보여 주고서, 에필로그 식으로 나머지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재미는 마치 한 편의 순수한 동심의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느낌마저 들었다.

마치 한 편의 동화를 읽는 것처럼 꿈결 같은 책읽기의 시간이 지나가 버린 가운데, 조지 거슈인이 작곡을 하고 마일스 데이비스와 빌 에번스가 연주하는 <서머타임>을 들으며 그렇게 이 무더운 여름날은 느릿느릿 전진하고 있었다.

[뱀다리]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조지 거슈인이 작곡한 <서머타임>의 커버 버전이 무려 2,700곡이나 존재한다고 한다.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이 부른 곡이 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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