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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2 ㅣ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0
프레데릭 포사이드 지음, 이창식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서평을 준비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알게 됐다. 오늘 다룰 서평인 <아프간> 저자의 이름을 랜덤하우스코리아에서는 ‘프레더릭’ 포사이드라고 하고 또 어디서는 프레데릭 그리고 또 어디서는 프레드릭이라고 표시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그의 전작들이 국내에서 출간되었는가를 확인하는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우리에게는 그의 초기작은 <재칼의 날>로 잘 알려져 있다는데, 개인적으로는 포사이스의 세 번째 작품인 <오데사 파일>에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의 <오데사 파일>은 1993년에 <나치스의 망령>(문조사)이라는 제목으로 출간이 되었었다고 하는데 품절이 돼서 지금은 구할 길이 없다. 이 소설 역시 1974년에 영화화되었다.
1938년 영국 켄트 출신의 프레데릭 포사이스는 1969년 넌픽션인 <비아프라 이야기>를 출간한 이래 최근작인 2006년 <아프간>에 이르기까지 모두 18권의 책들을 발표해왔다. 포사이스에게 국제적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역시 <재칼의 날>로 프랑스의 대통령 샤를 드 골의 암살하라는 지령을 받은 암살범 재칼과 그의 뒤를 쫓는 민완형사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이다. 본격적으로 <아프간>을 읽기에 앞서, 포사이스의 문학 세계를 엿보기 위해 부족하나마 아주 오래 전에 영화화된 <재칼의 날>(1973)을 보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아프간> 속으로 들어가 보자. 1989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로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 체제가 허물어지게 되자 2차 세계대전 이래의 냉전도 그 운명을 함께 하게 됐다. 그리고 뒤이어 9·11 사건이 터지면서 테러와의 전쟁이 전면으로 부상한다. 포사이스는 런던 폭발물 테러사건으로 시작된 이야기를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에서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국제적으로 악명 높은 테러 조직인 알 카에다의 자금조직책인 튜픽 알키르의 휴대전화를 추적하고, 투신한 그의 랩탑 컴퓨터에서 알 카에다가 준비 중인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계획안, ‘알-이스라’에 대한 단서를 찾아 내기에 이른다.
이 정보를 입수한 영국의 비밀정보부와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합동으로 이에 대한 대책을 세우기로 하고 예언자 무함마드의 밤의 신비로운 여행을 뜻하는 ‘알-이스라’에 대한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아랍어와 아랍문화에 정통한 소위 ‘코란위원회’를 소집한다. 미국과 영국의 정보부에서는 알 카에다 전사들이 위대한 셰이크로 추앙하는 오사마 빈 라덴과 그의 오른팔 아이만 알 자와히리가 극도의 비밀리에 추진하는 있는 계획이 서방세계에 9·11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타격을 가하는 것이라는데 까지 추론해낸다. 알 카에다의 비밀계획을 파헤치기 위해 스파이를 심으려고 하나 원체 보안을 중시하는 알 카에다 조직에 스파이를 침투하기란 쉽지가 않은 일이다. 이 과정에서 코란위원회의 일원이 테리 마틴이 이라크 출생으로 영국인과 인도인의 혼혈인 자신의 형으로 현역에서 대령으로 은퇴한 마이크 마틴을 언급하고, 영국 특수부대 출신의 마이크가 예의 스파이 역에 제격이라는 인정을 받게 된다.
여기서 또 한 명의 주인공인 진짜 아프가니스탄 사람 이즈마트 칸이 등장하게 된다. 마이크보다 열 살 어린 이즈마트는 어려서부터 구소련의 아프간 침공에서는 무자헤딘으로 그리고 그 후에는 용맹한 탈레반 전사로 이름을 떨친 파슈툰 부족 출신으로, 미국이 발사한 미사일로 자신이 사랑하는 가족과 부족원 전체가 몰살당한 후 거대한 사탄(미국)에 대해 죽을 때까지 복수할 것을 다짐한다. 하지만 아프간 내전에서 포로가 되어 악명 높은 칼라이장이 포로수용소에서의 무장폭동으로 결국 쿠바에 소재한 미국 관타나모 기지에 5년 동안이나 압류되어 있는 상태다. 알 카에다 조직에 침투시키기 위해 그보다 더 좋은 인물은 없다고 판단한 CIA에서는 마이크 마틴을 이즈마트의 대역으로 삼기 위한 공작에 돌입한다.
여기서 포사이스는 이즈마트와 마이크가 소련에 대항해서 싸우던 80년대에 서로 대면하게 되는 기가 막힌 구성을 심어 놓는다. 그 인연의 끈은 나중에 마이크가 이즈마트의 대역으로 인정받게 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하게 된다.
미국과 영국 양국 정보부는 치밀하게 계획된 공조로 이즈마트 칸과 마이크 마틴을 바꿔치기하는데 성공하고, 알 카에다의 비밀계획을 막기 위한 쇠지레 작전을 발동시킨다. 이제 등장인물들에 대한 배경 설명과 모든 준비를 마친 소설은 본격적인 스파이 스릴러의 세계로 독자들을 인도한다.
올해 70세의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꾸준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정치 스릴러 장르의 대가 프레더릭 포사이스. 역시 이번에도 저널리스트로서 해박한 중근동 정세와 문화 그리고 세계 곳곳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바탕으로 훌륭한 스릴러물을 창조해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느 것이 사실이고 어느 것이 허구인지 모를 정도로 상당 부분 사실에 입각해서 정말로 있을 법한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게다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구성은 책을 읽는 내내 그야말로 폭발할 것만 긴장감을 빚어낸다.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도대체 그 알 카에다의 엄청난 타격계획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뒤로 미루면서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전략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그 계획에 대한 포사이스의 아이디어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두 명의 ‘아프간 사람’에 대한 포사이스의 사전 작업은 경이할만하다. 먼저 진짜 아프간 사람인 이즈마트 칸에 대한 생애와 경력은 무자헤딘 그리고 탈레반 전사로써 그야말로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다. 이런 캐릭터가 알 카에다가 아니라면 누가 알 카에다 조직원이겠는가. 그리고 두 번째로 가짜 아프간 사람인 마이크 마틴 역시 영국 공수특전단 출신으로 포틀랜드전쟁(아르헨티나에서는 말비나스 전쟁이라고 부른다)으로부터 시작을 해서 북아일랜드, 아프가니스탄, 시에라리온, 보스니아 등 최근 전 세계에서 벌어진 분쟁지역을 두루 섭렵한 최고 엘리트 군인의 화려한 이력의 소유자다. 게다가 이 두 남자가 사전에 운명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는 설정은 그야말로 작품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프레더릭 포사이스가 보수파 작가로서, 자신의 생각과 대척점에 서 있는 알 카에다로 대변되는 아랍의 근본주의에 대한 권선징악적 구도가 너무 편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소설 초기에 코란위원회의 인물들이 부분적으로 호의적인 모습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왜 그 수많은 아랍의 젊은이들이 서방세계에 성전(지하드)을 선포하고 자살폭탄공격을 하는 현실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오래 간만에 뛰어난 구성으로 무장된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물을 읽는 재미를 만끽했다. 노령의 작가가 계속해서 작품활동을 해서, <아프간>이 포사이스와의 마지막 만남이 아니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