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평전
클로드 B. 르방송 지음, 박웅희 옮김 / 바움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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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선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달라이 라마와 그의 조국 티베트에 대해 아는 게 무엇이 있는가에 대해 자문해 보았다. 세계의 지붕, 신들의 도시 라싸, 공산화된 중국의 침략, 달라이 라마의 인도 망명, 풍장(風葬)으로 대표되는 장례의식 그리고 포탈라 궁[布達拉宮] 정도. 그리고 개인적으로 가장 최근의 나와 티베트와의 조우는 지난 5월 초 들렀던 인사동에서 중국의 자유 티베트 억압에 대한 항의와 티베트 사람들의 민속 음악 연주였다. 그리고 금번에 출간된 <달라이 라마 평전>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알고 있던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전면적으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저자인 클로드 르방송(Claude B. Levenson) 여사가 누구인지 궁금해져서 바지런하게 인터넷 서핑을 했다. 프랑스 작가인 탓에 심지어(?) 영어로 된 정보조차 많이 찾을 수가 없었지만, 영어번역기의 도움으로 간략한 정보를 취득하게 되었다. 1938년 프랑스 파리 출신으로 대학에서 러시아어와 언어학, 철학과 종교학을 공부하는 그녀는 졸업 후 번역가이자 저널리스트로 네팔, 캄보디아, 인도, 미얀마, 태국 그리고 인도네시아 등을 여행했다. 그리고 1984년 처음으로 티베트를 방문했다고 한다. 이제 티베트 전문가가 된 르방송 여사의 티베트에 관한 많은 저술들이 영어는 물론이고 독일어, 스페인어, 이태리어 심지어는 대만에서 중국어로까지 출간이 되었다고 한다.

모두 3부 11개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의 서두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티베트의 교정(敎政)의 유일한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유래와 그 현신(現身)의 과정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독자들에게 보여 주고 있다. 특히나 이 부분에서 오스트리아 출신의 유명한 산악인이자 하인리히 하러(Heinrich Harrer)로 분했던 브래드 핏이 주연한 영화 <티베트에서의 7년>에서 환생한 14대 달라이 라마를 찾던 장면이 떠오르면서 사실의 이미지화가 얼마나 깊은 각인을 남기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됐다.

르방송 여사는 평전의 서두에서 1대 달라이 라마인 게둔 투파의 첸레지[Chenrezi, 관음보살]의 화신으로 시작되어 현 14대 달라이 라마인 텐진 갸초(Tenzin Gyatso)에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서사적으로 다루고 있다. 1939년 4세에 공식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현신으로 인정받은 다음 해인 1940년 즉위식을 가진 달라이 라마는 1950년 10월부터 점증되던 중화인민공화국과의 정치적 알력으로 인해 결국 1959년 티베트인들의 봉기 중에 인도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2부에서부터는 본격적으로 달라이 라마의 초상을 그리기 시작한다. 르방송 여사가 서구인이라, 아무래도 서구인의 시각으로 동양을 본다는 게 조금은 우려가 되기도 했지만 그런 나의 생각은 전혀 우려에 지나지 않았다. 오히려 같은 동양인들보다도 달라이 라마와 티베트 불교 그리고 불교철학에 대해 상당한 경지의 지식과 안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게다가 사실을 기술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질문에 달라이 라마의 대답들로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이야기들을 부드럽게 풀어가는 저술기법은 정말 대단했다. 매우 형이상학적인 주제들에 대해서는 읽으면서도 잘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들도 더러 있기는 했지만, 티베트의 자연과 설역에 사는 이들에 대한 서정적인 묘사와 더불어 여성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유려한 필치에 감탄을 마지않았다. 하지만 역시 많은 서구인들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오리엔탈리즘과 그에서 비롯된 신비주의에의 동경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르방송 여사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달라이 라마 평전>을 통해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들을 나열해 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첫 번째로, 우리네 인간사의 무한한 잠재력에 기반을 둔 깨달음과 그리고 실천의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누구나 다 알 수가 있지만, 동시에 또 누구나 다 알 수 없는 진리. 그 진리에 다다가기 위해서는 부단한 개인의 수양이 필요하다고 달라이 라마는 역설하고 있다. 두 번째로 역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는 무한자비의 본질에 대한 질문과 그 대답이다. 우주의 본질을 알기 위해 꼭 필요한 지혜를 얻기 위해선 개인의 내적 성장이 꼭 필요하다. 물질세계인 색계에서 마음의 정수를 갈고 닦아 빛과 본질로 나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달라이 라마는 명상을 제시해 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궁극적인 행복의 단계, 다시 말해서 진실한 깨달음을 통해 해탈[니르바나]에 도달하기 위해 오염된 마음의 얼룩들을 지우고 완전무결한 성품의 성취에 관한 대답은 개인적으로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을 뒤로 하고 책은 다시 색계(현실세계)로 귀환하기에 이른다. 달라이 라마의 사랑하는 조국 티베트가 중국에게 병합된 지 어언 반세기가 흐른 이 시점에서 홀로 인도의 변경 다르살람에서 티베트 망명정부를 이끌고 있는 달라이 라마. 얼마 전 있었던 티베트 소요사태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티베트 민중봉기 기념일에 즈음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의 주목을 끌었지만, 불필요한 폭력과 인명사상을 극도로 염려한 달라이 라마는 다시 한 번 망명한 이래 자신이 기조를 유지하고 있는 비폭력 대화를 통한 방법으로 중국당국과 소통에 나섰다.

어쩌면 마지막 달라이 라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세인들의 깊은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여전히 자신의 안위보다는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티베트인들과 그들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 이 평전을 통해, 영겁의 시간의 수레바퀴 속에서 달라이 라마와 뜻 깊은 만남을 가졌다.

* 아쉬웠던 점 하나. 티베트의 여러 지명들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지도 한 장을 첨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티베트의 수도인 라싸야 그렇다 치더라도, 달라이 라마의 고향인 암도 그리고 성지로 추앙받는 코코노르 호수 그리고 현재 달라이 라마의 망명정부 소재지인 인도의 히마찰프라데시 주의 다람살라 그리고 인도의 불교성지 부다가야 등의 지도를 첨부해 주었더라면 금상첨화였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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