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캐
필라르 킨타나 지음, 최이슬기 옮김 / 고트(goat)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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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떻게 해서 이 책을 알게 되었지? 출발점을 특정할 수가 없다. 동네 도서관에 책이 없어서 상호대차로 지난주에 빌려서 부지런히 읽었다. 요즘 책구매를 최대한(?) 자제하고 어지간한 책들은 도서관 대출로 읽는 중이다. 어쩌면 오늘도 집에 가는 길에 도서관에 들러서 또 어떤 책을 빌리지도 모르겠다. 항상 후보들은 줄지어 대기 중이니 무슨 걱정이랴.

 

소설 <암캐>의 공간적 배경을 추적해 본다. 부에나벤투라까지는 찾았는데 아마 콜롬비아 서부 태평양 바닷가에 인접한 어느 작은 어촌 마을이 아닐까 싶다. 주인공 다마리스가 도냐 엘로디아에게 암놈 강아지, 치를리를 한 마리 데려오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수놈들은 그나마 입양이 손쉬운데, 암놈 강아지들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애견인이 아니다 보니 그 쪽 세계 이야기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무려 11마리의 강아지들이 태어났는데, 어미는 독살당했다고 한다. 어쩌면 이 도입부가 결말에 가서 마주하게 되는 비극과 수미상응하는 어떤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보면 소설가들은 자기 소설의 곳곳에 그런 장치들을 아주 영리하게 계획적으로 배치하는 지도 모르겠다.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치를리의 형제들은 모두 죽고 유일하게 치를리만, 아이가 없는 다마리스의 지극정성으로 생존하는데 성공한다. 다마리스의 남편인 로헬리오는 이미 데인저, 올리보, 모스크라는 세 마리의 개들을 키우고 있는데 난폭하게 개를 다룬다. 다마리스는 자신이 애지중지하는 치를리(미스 콜롬비아의 이름을 따서 명명했다고 했던가)에게 로헬리오가 손을 댄다면 죽일 지도 모른다는 고백도 한다. 이거 조금 살벌한데 그래.

 

다마리스와 로헬리오는 작은 오두막집에서 텔레노벨라를 시청하며 아주 소박한 삶을 영위해 나간다. 그리고 이웃에는 레예스 저택이 있는데, 그 집 아들이었던 7세의 동갑내기 니콜라시토를 파도가 집어 삼키는 비극이 벌어졌었다. 그 때가 197712, 셜리 사엔스가 미스 콜롬비아가 됐던 해라고 한다. 셜리 사엔스가 실존 인물인지 구글링으로 검색해 보기도 했다. 역시 소설은 현실을 반영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됐다.

 

다마리스의 보살핌을 받는 치를리가 계속해서 가난하지만 인정 많은 부부와 같이 살았다면 좋았겠지만, 어느 날 다른 개들을 따라 밀림으로 들어간 치를리는 한 달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다마리스는 마체테 칼로 무장하고, 치를리를 찾아 무성한 정글을 이 잡듯이 뒤지지만 결국 달아난 개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포기하려던 차에 치를리가 돌아왔다.

 

참 다마리스는 부부는 많은 노력을 기울였지만, 아이를 가질 수가 없었다. 심지어 많은 돈을 들여 주술의 도움에 청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다마리스가 나중에 치를리가 새끼를 가지게 되었을 때, 모종의 시기심을 느끼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로헬리오는 다마리스에게 정글의 맛을 본 치를리가 계속해서 도망칠 거라고 예언한다. 그리고 그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했다. 동시에 도주와 귀환을 반복하는 치를리에게 다마리스도 서서히 지쳐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던 치를리는 임신한 채로 다시 다마리스에게 돌아온다. 치를리는 자기가 낳은 새끼들에게 모성이 없는지 다시 밀림으로 도망쳐 버렸고, 남은 새끼들은 다시 다마리스가 돌보게 됐다. 수컷 두 마리는 쉽게 주인을 찾아 주었지만, 하나 남은 암컷 새끼는 원하는 이가 없어 히메나 아주머니에게 주기로 결정한다.

 

일이 좀 꼬여서 히메나 아주머니에게 암컷 강아지를 주지 못하고, 대신 어미인 치를리로 대신하게 된다. 히메나에게 단속을 단단히 하라고 주의를 주지만, 치를리를 다시 다마리스에게 돌아온다. 그리고 레예스네 니콜라시토 방의 커튼을 엉망으로 만들고, 비극으로 이어지는 단초를 제공한다.

 

필라르 킨타나 작가는 다마리스와 치를리의 만남으로부터 시작해서, 엔딩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들을 담담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언뜻 보면 강아지 치를리의 일생에 주인공의 삶을 투영시키는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가지는 치를리(임신)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이라고나 할까. 유년 시절, 니콜라시토의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던 다마리스에게 소중하게 지켜온 니콜라시토의 방을 엉망으로 만든 치를리를 그녀가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소설의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분출하는 증오와 애정, 시기 같은 감정의 부스러기들이 만들어 내는 소용돌이가 느닷없이 닥치는 폭풍처럼 그렇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2만 원에 육박하는 책값이었다. 물론 책의 가치를 분량으로 매길 수는 없겠지만 백쪽 조금 넘어가는 책인데 말이지. 그게 조금 궁금했다. 어쩌면 서지 정보에 나와 있는 대로, 알려질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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