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의 참새 캐드펠 수사 시리즈 7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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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도서관을 이용해서 읽을 수 있는 TCBC 시리즈는 8권과 9권을 빼고는 모두 다 읽었다. 명절에 잠시 독서 슬럼프에 빠졌었는데, 명절 전날 중고서점에서 산 궈창성의 <피아노 조율사>를 읽고 나서 또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만 하고 주춤하던 <성소의 참새>를 다 읽었다.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도 다시 시작했는데 예상했던 대로 읽기가 쉽지 않다. 이달은 넘기지 말고 다 읽어야지.

 

또 서설이 길었군. 때는 1140년 어느 봄날, 다시 슈루즈베리 수도원으로 돌아가 보자. 수사들의 새벽기도를 깨는 불청객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떠돌이 음유시인 릴리윈이었다. 살인과 절도 혐의를 뒤집어쓰고, 구약성서에 나오는 도피성 같은 수도원으로 피신하게 됐다. 그를 추격해온 흥분한 일단의 무리들은 수사들이 새벽기도를 드리는 성소라는 개념도 없이 그를 마구 두들겨 팼다. 우리 수사님들이 이런 불쌍한 참새를 그냥 죽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일. 그를 구하고, 행정관의 정당한 판결을 기다리기로 결정한다. 그에게 40일의 유예기간이 주어졌다.

 

하지만 모든 정황은 일가친척 하나 없이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의 기예를 팔아먹고 사는 릴리윈에게는 불리하다. 월터 아우리파버네 집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서 좌중의 흥을 끌어 올리도록 고용된 릴리윈은 아우리파버 집안의 실질적 주인인 줄리아나 부인의 차주전자를 깨먹고, 원래 받기로 되어 있던 3페니 중 1페니만 받고 쫓겨난다.

 

그 날 밤에, 금세공인 월터 아우리파버는 누군가의 공격을 받고 죽었고(죽은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부상만 입고 살아남았다), 결정적으로 그가 금고에 보관 중이던 재화들을 도둑 맞았다. 앙심을 품고 쫓겨난 릴리윈은 이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것이다. 이렇게 40일의 유예기간을 채우고 법정에 서게 된다면 그의 운명은 교수형이었다.

 

누구에게나 공평무사한 태도를 취하는 우리의 주인공 의사이자 수사 캐드펠 형제는 흠씬 두들겨 맞은 릴리윈을 치료하고, 그의 진술을 듣고 나서 그가 이런 사악한 범죄를 저지를 법한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바로 파악한다. 나중에 등장하게 되는 슈롭셔의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 역시 캐드펠 수사의 의견에 동의한다. 하지만, 진범이 잡히지 않는다면 릴리윈의 운명은 뻔할 뻔자가 아닌가 말이다.

 

추리물답게 누가 월터 아우리파버를 공격한 진범인가에 대한 추적부터 시작해서, 이제 막 며느리로 들어온 대니얼의 아내 마저리가 유부녀 세실리와 통정한 남편을 개스라이팅해서 아우리파버 집안의 대권을 그동안 집안의 대소사를 주관해온 수재너로부터 어떻게 빼앗는 지에 대한 구구절절한 과정이 소개된다. 엘리스 피터스 작가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범인이 될 수 있는 가정 아래, 그네들의 사정을 전개한다. 이런 게 바로 미스터리물의 기본이 아닌가.

 

캐드펠 수사와 행정 보좌관 휴 베링어는 한 때 라이벌이었지만, 이제는 둘도 없는 파트너가 되었다. 캐드펠이 신의 영역에서 일하는 의사이자 탐정 그리고 해결사라면, 휴 베링어는 인간계를 관장하는 관리로서 시리즈에서 맡은 자신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한다. 아무래도 케드펠이 수사라는 신분에 있다 보면, 관헌의 도움이 필요한 법이다. 휴는 그러한 캐드펠 수사의 필요를 충실하게 채워준다. 사사건건 캐드펠의 수사가 관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상충하게 된다면, 그 또한 답답한 설정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실제로 휴가 출장 나간 틈에 벌어진 사건에서 독자는 그런 일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편, 릴리윈은 며칠 되지 않았지만 수재너의 하녀로 일하는 래닐트와 연정을 키워 나간다. 깐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 수재너는 래닐트에게 하루 휴가를 주고, 릴리윈에게 흠뻑 빠진 래닐트는 잔칫날 남은 음식과 수재너가 건네준 대니얼의 낡은옷을 가지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둘은 거칠 것 없는 그런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어김없이 발생하는 살인사건이 등장할 차례다. 미스터리의 극적 전개를 위해 캐드펠 수사 시리즈에서 살인사건 역시 필요악이라고나 할까. 대충 월터에 대한 살인미수 그리고 절도 정도로는 약하다는 걸까. 그날 밤 일어난 사건에 대해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마스터 월터의 세입자이자 자물쇠 제조공인 볼드윈 페치가 세번 강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유명한 낚시꾼인 그가 익사했다는 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유능한 탐정 캐드펠 수사는 페치의 사인이 사가 아닌 질식사라는 걸 밝혀낸다. 다른 편에서는 살인사건이 대개 초반에 등장하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늦게 등장한다.

 

바로 전 6편에서는 정말 스펙터클한 사건들의 연속이었다면, 이번 시리즈는 좀 쉬어 가는 그런 느낌이랄까. 웨일스 근방의 중세 영국을 공간적 배경으로 해서, 살인사건과 그에 따른 미스터리 그리고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로맨스를 적절하게 배합해서 빚어내는 서사가 역시 일품이다. 가족이라는 굴레에 갇힌 이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욕망과 권력의 파노라마, 마스터 월터의 주체할 수 없는 재화에 대한 욕심, 집안의 모든 걸 통제하려는 줄리아나 부인의 노욕 그리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성소로 날아든 참새 같은 이미지의 순수한 청년 릴리윈의 사랑 이야기 등 다채로운 이야기들의 변주가 어우러지면서 엔딩의 멋진 하모니를 만들어냈다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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