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에 왔지만
다카기 나오코 지음, 고현진 옮김 / artePOP(아르테팝)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 다와다 요코 작가의 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들렸다. 평일인에도 주차장은 만차였고, 도서관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 평일에도 이렇게들 책을 열심히 읽는가 싶어 보니 휴대폰을 하는 사람, 태블릿으로 무언가를 시청하는 사람 그리고 자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물론 책 읽는 사람들도 많았고. 그날 우연히 얻어 걸린 책이 바로 타카기 나오코의 <도쿄에 왔지만>이었다. 올해 처음 읽은 그래픽 노블, 그러니까 만화였다.

 

아주 오래 전에 <뷰티풀 라이프> 서평을 하지 않았었나 싶다. 그래서인지 작가의 그림체가 낯설지 않다. 물론 아주 세련된 건 아니지만, 뭐랄까 일본 특유의 그런 푸근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미에 현 출신의 타카기 씨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청운의 꿈을 안고 도쿄로 상경해서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장하다 타카기 씨.

 

어려서 관광으로 방문한 일본 제일의 도시와 정작 거창한 생존투쟁을 위해 상경한 도쿄는 달랐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내가 오래 전에, 교토에 관광 갔을 적에 나는 아침부터 니조조 구경을 하겠다고 부리나케 나섰고, 거의 잠에 취해 비틀거리며 출근하는 일본 직장인들을 보며 내가 느낀 그런 감정이라고나 할까. 놀이와 생존투쟁은 엄현히 다르지 않은가 말이다.

 

늘 그렇지만 서설이 길었다. 당연히 타카기 씨의 일러스트레이터 도전을 쉽지 않다. 도쿄의 물가는 살인적이다. 방값부터 시작해서, 모든 게 비용의 연속이다. 종잣돈이 떨어지고 일러스트레이터의 푸른 꿈도 지지부진해진다. 결국 타카기 씨는 프리터(?)로 변신해서 스시 공장에 투입된다. 아마 스시 공장에서 일하면서 이런 자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아니 내가 고작 스시 공장에서 후토마키 따위나 말기 위해 이 고생을 하면서 도쿄에 왔나하고 말이다. 하지만, 미에 현과 도쿄의 분위기는 엄연히 다르다.

 

일단 작가가 좋아하는 미술관과 볼거리들이 차고 넘치지 않은가. 그리고 고향 사람들과는 다른 성향의 이들과 교류하면서 다음 단계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작가의 고생은 그런 기회를 위한 비용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물론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겠지만.

 

미에에서 휴가를 받아 상경한 아버지는 타카기 씨와 도쿄의 조그만 아파트에서 지내며, 여름 더위를 막아줄 발도 설치해 주시는 단란한 모습도 보여 주신다. 역시 내리사랑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리고 텔레비전 콘센트 문제도 해결해 주시고, 결정적으로 돌아가시면서 타지에서 고생하는 딸에게 용돈 봉투도 내미신다. 참 멋진 아부지가 아닐 수 없다. 멀리서 응원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타카기 씨의 귀성 이야기도 재밌다. 신칸센은 당연히 편하고 빠르고 좋지만, 가격이 비싸다. 신칸센 탑승이 4시간 정도라면 버스는 반값이지만 대신 시간이 7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항상 비용이 작가의 뒷목을 잡는다. 게다가 작가는 버스에서 잘 못잔다고. 그러니 즐거운 귀향길이 이러저러한 계산으로 머리부터 아파 오기 시작한다.

 

다음은 옷에 관한 에피소드다. 후줄그래한 입성으로 집에 오니,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걱정이다. 그네들의 걱정을 잘 알기 때문에, 한 번 데인 다음부터는 귀성길에 괜찮아 보이는 옷을 사 입고 온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누가 무슨 옷을 입고, 뭘 먹는가로 그 사람을 판단하는.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그게 차가 아닐까 싶다. 무슨 차를 타고 다니느냐에 따라 그 사람을 판단하는 거지. 진부하지만, 좋은 외제차를 타고 다닌다고 해서 그의 인격이사 성공의 척도가 되는 건 아닐 텐데 말이지.

 

그래도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꿈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우리의 타카기 씨. 어쩌면 이런 에피소드들이야말로 나중에 성공했을 때, 하나의 소재가 되지 않을까 싶다. 결론적이긴 하지만 이렇게 책으로도 나오지 않았나 말이다. 결국 그녀의 노력을 결실을 맺어, 긴자 거리에 윈도우에 전시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이번에도 그놈의 비용 문제로, 재료들을 사서 차로 배송시키지 못하고 낑낑 대면서 그걸 직접 집까지 나르는 가난한 일러스트레이터의 비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뭐랄까 좀 구질구질한 면도 없지 않지만, 그게 또 현실의 반영이라고 하니 이해가 안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마냥 살이가 신산하기만 한 것도 아니다. 각 에피소드의 말미에 행복 인 도쿄라고 해서 즐거운 이야기들도 간간히 소개된다. 그것은 마치 우리네 일상에 대한 저격이라고나 할까. 누구나 다 항상 행복할 수도 그리고 또 불행한 것만은 아니니까 말이지.

 

명절을 앞두고 있다. 다본 책들은 속히 반납하고, 도서관에 있는 타카기 나오코 씨의 다른 책들을 빌려다 볼까 어쩔까 싶다. 왜냐구? 뭐 재밌으니까. 타자의 삶을 잠시나마 이렇게 엿볼 수 있는 혹은 나의 삶을 투영해 볼 수 있는 재미야말로 우리가 책 읽는 이유 중의 하나가 아닐까나.

 

[뱀다리]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니 이 책은 아쉽게도 절판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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