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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인의 사무라이 - 완역 가나데혼 주신구라 ㅣ 일본명작총서 1
다케다 이즈모.미요시 쇼라쿠.나미키 센류 지음, 최관 옮김 / 고려대학교출판부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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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과연 너튜브는 온갖 정보의 보고가 아닐 수 없다. 예전에 블로그가 한 일들을, 더 편하고 간단하게 너튜브가 전달한다. 사무라이 영화을 검색하다 보니, 알고리즘이 나를 기무다쿠가 연기한 <주신구라>로 연결해 주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알고 있었지만, 좀 더 알고 싶은 생각에 이 주제를 다룬 책을 찾다가 만나게 된 것이 다케다 이즈모의 <47인의 사무라이>였다.
우선 연극 상연을 위해 만들어진 인형극의 각본인 만큼 상당히 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첨가되어 있다. 배경은 1701년 일왕의 칙사 대접을 맡은 아코번의 다이묘 아사노 나가노리가 의전 담당 고케 출신의 기라 요시히사에게 칼부림을 한 사건에서 유래했다.
이 사건으로 결국 아코번의 영주 아사노는 할복을 명령받았고, 영지는 몰수되었으며 가신단은 해산되었다. 사건 초반, 아코 번사들의 격렬한 저항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가신단은 막부의 조치를 순순히 받아 들였다. 하지만, 가로이자 아코 번사들의 수장이었던 오이시 구라노스케는 막부의 엄중한 감시망을 뚫고, 의사들을 규합해서 결국 주군의 원수인 기라 저택을 급습해서 복수에 성공했다. 복수가 끝난 뒤, 막부에 체포된 46인의 아코 번사들은 전원 할복을 명령받았다.
백년간의 치열한 센고쿠-모모야마 시대의 대전란을 수습한 도쿠가와 막부는 더 이상 천하의 질서를 교란시키는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꿈 같았던 한 시절을 보낸 사무라이들은 다섯 번째 쇼군 시절인 겐로쿠 태평성대에 순치되고 있었다.
주군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은 사무라이가 지배하던 시절이었지만,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는 전대의 쇼군들 같은 카리스마를 지니지 못했다. 사실 아코 사건 당시에도, 아사노 뿐 아니라 사건의 당사자인 기라에 대해서도 같은 처벌이 필요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아사노가 저지른 죄 역시 불경죄로 다스려, 근신 정도로 마무리할 수 있었지만 천하의 질서를 세운답시고 할복을 명령했다가 결국 주신구라 사건의 단초를 제공하지 않았던가.
아코 번사들의 복수극이 발생하고 45년 뒤에 씌여진 인형극 대본인 <주신구라>는 이제 거의 전설이 되어 버렸다. 지금처럼 정확한 기록이 존재하지 않으니, 사건에 연루된 번사들의 에피소드에 양념이 많이 추가된 것 같다. 가령 예를 들어, 기라를 처단하는 거사에는 참가하지 못했지만 구라노스케에 의해 주군 아사노의 영령에 두 번째 분향하는 영광을 안은 하야노 간페이의 경우를 살펴보자. 간페이의 아내가 된 오카루를 유곽에 팔아, 주군의 복수 자금으로 쓰려다가 비운에 간 장인 그리고 장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결국 자결한 간페이. 아코 번사들이 추구하는 복수극의 정당성을 위한 빌드업이 극한으로 확장된다.
아사노 가문이 망하고, 낭인 신세가 된 오보시의 아들 리키야와 혼례를 치르기 위해 그들을 찾은 고나미와 그녀의 어머니 도나세의 이야기는 또 어떤가. 거사를 앞둔 오이시 부부는 청상과부가 될 며느리가 불쌍해서 고나미를 며느리로 받아 들이길 거부하지만, 도나세와 고나미는 거의 막무가내였다. 여기서도 그놈의 석고의 많고 적음 타령을 하는 도나세의 전근대적 발상이 황당하긴 했지만, 이 이야기가 무려 276년 전에 쓰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아주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다수 아코 번사들과 의견을 달리하고, 결국 기라 편에 서서 부역하게 되는 오노 부자의 비참한 죽음도 전형적 권선징악의 경우를 따른다. 아들놈은 오카루 아버지를 죽이고 강도질하다가, 멧돼지로 오인한 간페이에게 주살당한다. 아버지 역시 유라노스케의 기만술을 파악하고, 아코 번사들의 거사 계획을 간파하려고 하다가 결국 응징당한다. 인형극에서 이런 빌런들이 하나둘씩 무대에서 사라져 갈 때, 팬들의 환호성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사카이에서 47인의 사무라이들의 거사를 위해 거사에 필요한 문자들을 아낌없이 지원한 죠닌 출신 아마가와야 기헤이의 에피소드도 엔딩을 위한 마지막 빌드업의 하나였다. 삼엄한 막부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고용한 일꾼들도 트집을 잡아 모두 해고하고 습격에 필요한 사다리 같이 특수한 물품의 구매처를 숨기는 일을 기헤이는 도맡아서 처리했다. 사랑하는 아내 오소노와의 위장이혼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런 빌드업에 비해 마지막 장의 기라 저택 습격사건은 의외로 간단하게 기술된다. 가코가와 혼조가 제공한 기라 저택의 지도와 구라노스케의 치밀한 전략에 따라 아코 번사들은 순조롭게 저택에 침투해서 결국 기라를 사로잡아 죽이는데 성공했다. 기라 저택 부근의 인근 다이묘들 역시 2시간에 달하는 복수극이 펼쳐지는 걸 알면서도 그들의 행동을 저지하는데 나서지 않고 방조했다. 막부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기라 구조에 나섰더라면 아마 주신구라 전설은 아예 생겨나지도 못했을 것이다.
에도 막부의 통치자들은 모든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자신들에게만 복종할 것을 원했다. 하지만, 일본식 막번 시스템의 구조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막부에 대한 충성은 고위 관료들이나 대형 다이묘들에게나 해당되는 이야기였고, 각 지역의 번주와 그 휘하의 사무라이들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주군의 억울한 죽음을 막지 못한 책임은, 아코의 모든 번사들이 나누어져야 하는 명예스러운 치욕이었다.
막부가 아무리 금령을 내려, 주신구라 전설의 회자를 막으려 하더라도 민간에서 아코의 사무라이들은 사사로운 복수에 나선 불한당 집단이 아닌 의사들로 간주되었다. 그런 이유로 <주신구라> 이야기가 계속해서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재창조(re-creation)되는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