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들 - 돈과 기름의 땅, 오일샌드에서 보낸 2년
케이트 비턴 지음, 김희진 옮김 / 김영사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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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출신 작가 케이트 비턴의 <오리들>과 만났다. 도서관에 희망도서로 수급을 신청했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다. 지난 주말, 책이 도착했다고 해서 부리나케 가서 대출해서 바로 다 읽어 버렸다.

 

노바스코샤주 케이프브레턴 마부 출신 케이트 비턴은 가족과 다른 사촌들처럼 일자리를 찾아 정든 고향을 떠나야했다. 이유는 시골마을에는 그녀가 필요한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일자리 이주는 세대를 이어온 마을의 전통이라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렇게 떠난 이들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케이트는 고향을 떠나면서 다시 돌아올 거라고 결심한다.

 

참 케이트가 왜 앨버타주로 떠났는지 말하지 않았네. 그건 바로 돈이 흘러 넘친다는 오일샌드 광산에 가서 돈을 벌기 위해서다. 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대학 다니면서 받은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서다. 문과대를 나와, 특별한 기술이 없는 케이트가 고향에서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돈이 흘러 넘치는 곳으로 가야만 했다. 가족들과 떨어져서 말이지.

 

그렇게 케이트가 찾아온 돈과 기름의 땅은 이십대 초반 여성에게 절대 호의적이지 않다. 고향과 멀리 떨어진 남초 사회에서 케이트는 모든 남성들이 가진 호기심의 객체로 간주된다. 한 마디로 말해 피곤하다는 말이다. 유부남부터 시작해서 자기와 엄청나게 나이가 차이 나는 이들도 모두 케이트에게 직접댄다. 자신의 언니 베키가 훨씬 예쁘다고 생각하는 케이트에게 이런 상황은 낯설고 불편하기만 하다.

 

어 그런데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어디서 읽지 않았나? 대략 1년 전에 읽다만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의 <러스트벨트의 밤과 낮> 말이다. 다시 한 번 느끼게 되는 거지만, 글쟁이들에게 이런 특이하고 낯선 경험이야말로 그 무엇보다 좋은 글감이 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아니 누가 평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는가. 이 정도는 되야 그나마 타인의 시선을 사로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케이트 역시 새출발을 시작한 싱크루드 등지에서 오로라를 보러 오는 일본인 관광객들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정작 자신도 그런 대자연으로부터 고달픈 노동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상처 받은 마음을 위로 받지 않았던가.

 

돈이 되는 오일샌드를 퍼올리는 험난한 노동현장에서 젠더에 따른 차별은 일상이라고 그녀는 몸으로 증언한다. 시간당 페이부터 시작해서, 좀 더 험한 일을 하고 노조에 속한 소위 짬바가 많은 이들이 당연히 많은 돈을 번다. 그렇게 번 돈을 흥청망청 쓰는 이들도 당연히 존재하고, 케이트처럼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도 등장한다.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서 좀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기 위해 선커나 롱 레이크 같은 곳으로 점프하기도 한다. 학자금을 절반 정도 갚은 다음에는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빅토리아로 가서 해양박물관 일을 하기도 한다. 자신을 따라, 언니 베키와 친구 린지도 왔던가. 그들과 함께 아픈 기억들을 공유하며 극복해 가는 과정도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친구와 가족이 필요한 거지.

 

오일샌드가 나는 곳이 야생 그 자체였다면, 빅토리아는 문명 정도로 볼 수가 있을까. 벌이는 시원치 않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생활, 뭐 그 정도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옆지기가 예전에 빅토리아에 산 적이 있다고 해서 그래픽노블을 보면서 특히 빅토리아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물어봤다. 정말 그곳에 산 적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그런 '인하버'와 호텔 등등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 주더라. 실제 체험과 책을 통한 간접체험의 만남, 기가 막혔다.

 

사실 난 케이트 비턴 작가의 개인적 체험보다는 제목 <오리들>처럼 환경 문제가 전면에 나서지 않을까 싶었지만 무분별한 오일샌드 채취로 벌어지는 환경오염에 대한 문제 제기는 생각보다 적었다. 우리 지구별이 돈이 되는 에너지 자원 발굴 때문에 계속해서 앓고 있다는 전지구적 고민보다는, 젊은 여성이 고향을 떠나 오지의 시골마을에서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고군분투한다는 개인적 고민에 더 치중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국 케이트는 남은 학자금 대출 유예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다시 오일샌드 지역으로 돌아간다. 돈이 아니었다면, 저자는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암담한 시절의 경험을 그래픽 노블로 만들어서 성공을 거두고 작가가 되었다. 그녀의 커리어에서 오일샌드 시절을 뺀다면 어떻게 현실이 변하게 될지 궁금해졌다.

 

케이트 비턴의 글과 그림들을 보면서, 노동과 재화를 교환해서 벌어먹고 사는 나 같은 보통사람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됐다. 대부분 현재의 벌이에 적당히 만족하고 살지만, 케이트 비턴이나 엘리스 콜레트 골드바흐처럼 자신이 이루고 싶은 꿈을 위해 달리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케이트는 오일샌드 지역에서 일하는 동안, 그림을 그리고 사람들에게 피드백을 받으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 누군가에게는 고된 노동의 시간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산다는 건 다 그런 게 아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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