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다 반사
키크니 지음 / 샘터사 / 2019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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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 어딘가에 있는 쿠르초 말라파르테의 <망가진 세계>를 결국 찾지 못하고 도서관에 빌리러 갔다. 그리고 나오는 길에 키크니 작가의 에세이집 <일상, 다 반사>와 마스다 미리 작가의 책이 반납 카트에 놓여 있는 걸 봤다. 명절에 에드워드 P. 존스의 <알려진 세계>를 사서 읽으려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희망도서로 신청했더라. 뭐 그런 거지.

 

나에게 이제 인스타는 정보를 취득하는 하나의 창구가 되었다. 좀 더 스피디하게. 그리고 좀 더 깊은 정보가 알고 싶다면 너튜브를 뒤진다. 사실 키크니 작가도 인스타 피드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양반, 갬성 넘치는 무엇이든 그려드립니닷인가에서 자신의 실력을 마음껏 뽐내신 바 있다. 초반의 서너컷은 유머로 빌드업을 한 다음, 마지막에서 자신의 진가를 발휘한다. 그러니까 인스타 팔로우들의 갬성을 한껏 자극하는.

 

그냥 그런 작가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에세이집을 통해 작가의 내면에 좀 더 도달하게 되었달까. 그러니까 5.3KG돼한의 건아의 태어나 농구를 좋아하고, 만창과에 진학한 살벌한 인상의 청년이 그림으로 세상고 맞짱을 뜨는 이야기가 <다 반사>의 주를 이룬다. 비즈니스 미팅의 긴장감을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절로 났다. 어라, 그리고 보니 연달아 읽고 있는 마스다 미리 작가의 <작가생활>에도 비슷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것 같다.

 

어쨌든 프리한 고독랜서로서 고정적이지 않은 수입과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장면 그리고 자신이 항상 부족한 인간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리 모두는 항상 부족과 결핍 그리고 불안 속에서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보니 얼마 전, 인스타 피드에서 본 거창한 행복이라는 목표 대신 조금만 행복의 기준을 낮춘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는 어느 현자의 말이 기억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떤 행복을 추구하지 말라는 말은 아니고. 행복조차 경쟁이 된 것 같아 보이는 SNS 월드에서 그런 소소한 행복은 피드로 올리기에 어쩌면 좀 쪽팔리는 그 무엇인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암튼 그렇게 소소한 일상으로 빌드업을 마친 작가는 자신의 백그라운드를 조용하게 들려준다. IMF로 집이 망하고 언제나 건강하실 것 같았던 어머니가 뇌경색 당뇨합병증으로 고생하시게 된 스토리는 참 그랬다. 아마 어쩌면 그 시절을 경험한 탓에 우리는 더 불안한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정년이 보장된 평범한 직장에 들어가 하루하루 일하다가 때가 되면 은퇴하는 게 꿈이었던 소시민들이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이 문을 닫고 아무런 보호장치 하나 없이 그야말로 약육강식 자본주의가 판치는 세상에 내던져지게 되었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키크니 작가 역시 막노동으로 돈을 벌어서 선배 네 명과 작은 월세집에서 살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큰형님은 호주로 도망치다시피 2년간 워홀을 가셨다고. , 듣기만해도 절로 한숨이 나오는 사정이지 싶다. 그래서 홀로 가정을 보살펴야 했던 무게감에 대해서도 키크니 작가는 그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그려낸다. 되짚어 보니 그가 구사하는 모두의 마음이 훈훈해지는 빌드업 서사가 어쩌면 이해가 되기도 한다. 에세이의 어디선가 발견한 덤벼라 세상아라는 구절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그런 순간이었다.

 

인스타 피드로 만나는 짤과 이렇게 나름 긴 호흡으로 가는 에세이집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느낌이다. 다음에 도서관에 다시 가게 되면, 그의 다른 책들도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다. 오늘 도서관에 가는 날인데 명절이라 휴관이다. 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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