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The Complete Maus 합본
아트 슈피겔만 지음, 권희종 외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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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대학 친구의 추천으로 아트 슈피겔만의 <마우스>를 읽었다. 무려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래픽노블로 아무런 기대 없이 도전했지만 홀로코스트 육성 증언을 다룬 콘텐츠에 한동안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았나 싶다. 그후로 다양한 장르의 홀로코스트를 주제로 삼은 책과 영화 등을 만나게 되었다.

 

1978년부터 무려 13년이나 걸려 자신의 아버지인 블라덱과 어머니 아냐 슈피겔만이 겪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바탕으로 해서 작가는 <마우스>를 창조해냈다. 처세의 달인으로 죽음의 수용소였던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아버지 블라덱과의 대화가 그래픽노블의 중심에 놓여 있다.

 

작가의 아버지 블라덱은 그래픽노블 서두에서부터 친구는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혹독했던 아우슈비츠 10개월을 경험한 블라덱은 낭비를 허용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비용이 드는 일들은 모두 자신이 직접 처리해야 직성이 풀린다. 사랑했던 아내 아냐가 죽은 다음에 재혼한 말라는 블라덱의 강박적 절약 강조와 잔소리 그리고 자신의 재산을 노린다는 모함에 혀를 내두른다. 자식인 아트 역시 그런 아버지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고백한다.

 

거의 강박적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 복용할 알약을 세고, 스스로 세무자료들을 정리하고 거리에서 주은 전선 조각의 필요성에 대해 아들에게 세뇌한다. 화자는 그런 아버지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또 지긋지긋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이 과연 어떻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한다고 결심했던 이들의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지 조용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속삭인다.

 

은행 계좌에 수십만 달러의 자산이 있으면서도, 묵지도 않는 옆 리조트 시설에 몰래 침투해서 시설을 이용하는가 하면 상점에서 산 물건을 다시 봉해서 환불 조치하는 꼼수도 마다하지 않는다. 성냥을 아끼겠다고 가스 요금이 월세에 포함되어 있다고 하루종일 가스불을 켜놓는 낭비에 대해서는 또 어떤가. 홀로코스트 생존자가 모두가 그런 건 아니겠지만, 블라덱 슈피겔만의 케이스는 너무 극단적이다.

 

그리고 자신도 지독한 인종차별의 희생자이면서도 동시에 미국 흑인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이기도 하다. 이런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중적 태도야말로 전후 세대이자 홀로코스트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아트 슈피겔만이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닐까. 절대선과 절대악이 공존하는 아이러니 말이다.

 

폴란드 게토에서 죽은 형 리슈의 그림자는 또 어떠한가. 아트 슈피겔만은 전후 태어났다. 그리고 그에게 죽은 형은 언제나 이길 수 없는 그리고 모든 순간에 이상화된 비교대상인 그런 존재였다.

 

이제 <마우스>의 실질적인 주인공 블라덱 슈피겔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으니 본격적인 이야기에 들어가 보자. 1906년 폴란드령 슐레지아에서 태어난 블라덱은 젊어서 호남자라는 평가를 받았고, 이재에 밝았다. 부유한 집안 출신의 아냐를 만나게 되면서, 그동안 교제하던 여자를 냉정하게 걷어차 버리는 냉혈한의 이미지도 갖고 있다.

 

아냐와 결혼하고 장인의 도움을 받아 사업을 일으키지만, 그 무렵부터 나치 독일의 유대인에 대한 핍박이 시작됐다.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고, 폴란드 군으로부터 징병된 블라덱은 개전 초기 독일군과 최전선에서 싸우다가 전쟁포로로 사로잡힌다. 1940년 전쟁포로에서 석방된 블라덱은 생존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폴란드 각지의 게토로 소개된 블라덱 가족 친지들은 차례로 절멸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블라덱은 특유의 수완을 발휘해서 최대한 아우슈비츠 행을 막아 보지만, 그 역시 아냐와 함께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된다.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실력도 필요했지만 그 이상으로 운도 필수적이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야말로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곳에서 블라덱은 자신이 가진 재능과 운을 최대한 발휘했다.

 

유대인들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행사하는 폴란드인 카포에게 영어를 가르쳐 주고 생존을 도모했고, 공산주의자 함석장이 십장인 이들 밑에서도 실력을 발휘했다. 프리모 레비도 그의 책에서 말했다시피, 지배 계급의 언어인 독일어 구사도 생존에 반드시 필요했다. 물물교환이라는 유사 이래 가장 기본적인 거래 방식에서도 블라덱은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생명 연장에 힘을 보탰다. 죽음의 가스실로 가는 선별에서도 운 좋게 살아남았고, 티푸스에 걸려서도 주변인들의 도움으로 살아남았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해서 고대해 마지 않던 아냐와 만나는 것으로 <마우스>는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그런데 그렇게 생존한 이들은 과연 행복했을까? 아냐의 죽음을 볼 때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비극에서 살아남았지만, 가족을 모두 잃은 생존자들은 상상할 수 없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훗날 아트 슈피겔만이 자신의 아내에게 자면서 비명을 지르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어려서 자신은 모든 어른들은 잘 때 그러는 줄 알았다는 말이 어찌나 슬프게 다가왔는지 모른다. 그리고 그들은 끝까지 예의 비극을 극복하지 못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이 모두 블라덱 슈피겔만처럼 증언에 나서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비극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으리라. 하지만, 기억과 추모의 차원에서라도 어떤 일들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시간의 흐름에 편승해서 역사적 사실 자체를 왜곡하려는 무리들이 준동하는 현실이야말로 비극의 재현이 아닌가 말이다. 다시 읽어도 배울 게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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