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후 누군가 초인종을 울렸을 때, 나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어요. 다만 그가 택한 자살의 방식이 너무 놀라울 뿐이었는데, 잠시 뒤 생각해보니 파울에겐 그럴 이유가 충분히 있었어요. 기차는 그에게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지요. 기차의 종착역은 항상 죽음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몰라요. S시에 있던 그의 집을 둘러보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던 것처럼, 그가 운행 예정표, 운행시간 책자, 철도의 전반적인 운영방식,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강박적인 관심을 가졌던 시절이 있었어요. 비어 있던 북쪽 방의 책상 위에 만들어놓은 모형철도가 아직도 눈에 선해요. 그것은 파울이 겪어야 했던 독일의 불행을 상징하고 있었어요. - P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