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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어제 그전에 빌린 책들을 반납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빌린 책이다. 내가 도서관을 사랑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물론 어떤 책을 빌리러 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 만나게 되는 책들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보통의 경우 나름 목적 있는 독서를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다. 그것이 책 읽는 이들의 즐거움이 아닐까.
아마 이 책을 읽게 된 이유 중의 하나는 저자가 에코이기 때문이리라. 숱한 저자들일 책을 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선뜻 집어 들지는 않는다.
이 세계적인 석학은 정보 과잉과 극단적 소비의 시대를 유동 사회(Liquid Society)라고 명명한다. 우리 현대인은 소비하기 위해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우리는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끊임없이 사들이고, 방치하고 결국 폐기한다. 저자의 주장 대로 우리가 애지중지하는 핸드폰은 이미 우리의 눈을, 귀를 그리고 심지어 성기까지 대신할 판이다.
에코는 또한 SNS와 너튜브 시대에도 따끔한 일침을 가한다. 자신은 트위터를 하지도 않는데, 자신을 사칭한 이들이 암약하는 공간이 바로 인터넷 공간이라는 점을 꼬집는다. 그렇다면 그를 사칭한 이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바로 유명세가 아닐까? 며칠 전 들은 팟캐에서는 인별그램을 보면 대한민국의 모든 이들이 필라테스를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게 필라테스와 빡센 다이어트로 만들어진 환상적 몸매는 버추얼 공간에서 자산이 된 지 오래다. 누군가의 고통이 나에게 행복이라는 생각으로 동영상을 찍어 너튜브에 올릴 생각을 하지 말고, 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고 대가는 말한다. 진짜 넘쳐 나는 정보 과잉의 시대에 적합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에코 선생은 자신의 책에서 “미친 세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은 것 같은데, 그렇다면 그 표현은 역자와 출판사의 작품일까? 그것이 좀 궁금했다. 에코 선생은 어느 인터뷰에서 당시 이탈리아 총리였던 베를루스코니가 히틀러 같다는 비유를 적당하게 “만들어서” 실은 언론을 준엄하게 꾸짖기도 한다. 기자가 지식인의 속마음까지 넘겨짚어서 기사화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긴. 세 개나 되는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사실을 마음대로 왜곡하고 주작질도 마다하지 않는 언론 현실에 빗대어 본다면 그 정도는 애교지 싶지만 말이다.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광풍처럼 몰아닥치는 코로나 시대에도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말들이 많다. 에코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 세계는 거의 우연으로 만들어진 세계다. 그런데 어떤 우연들이 겹친다고 해서, 누군가가 어떤 사적 이익을 편취하기 위해 만들어진 근거 없는 가짜 뉴스와 음모론을 맹신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음모와 비밀들은 언젠가는 밝혀지기 마련이다. 가령, 미국의 달나라 착륙에 대해 여전히 불신하는 이들이 있는데 만약 그랬다면 당시 가장 유력한 라이벌이자 검증할 실력까지 있었던 소련이 가만 있었겠냐는 것이다. 지금은 퇴임한 어느 나라 대통령 역시 자신의 사적 이익을 위해 검증되지 않은 낭설들을 퍼뜨리는데 앞장섰다가 결국 선거에서 지고 초라하게 물러나지 않았던가. 자신의 본거지를 남부의 어디로 옮겨 권토중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더 이상 정치판에 나서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시 대가는 대가라는 생각이 에코의 글들을 접하면서 불쑥불쑥 들었다. 이제 더 이상 이 작가의 빛나는 문장들과 사유를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베를루스코니 같은 B급 정치가에 대해서도 관심을 끝으라는 말로 점잖게 그는 조언한다. 내추럴 본 관종을 자처하는 그런 인물들에게 언론이나 대중이 주는 관심 자체가 과분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우리 사회에도 그와 유사한 인물들이 준동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도 에코 선생의 처방전을 주문하고 싶다. 보수언론의 지면이고 자신이 그렇게 애착하는 SNS고 간에 뭐라고 떠들어 대건 간에, “똥싸개” 타령을 하던 에코의 어머니가 하셨던 대로 그냥 무시하라는 거다. 나도 전적으로 동감하는 바다. 내가 던진 일말의 관심과 비판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는 꼴은 도저히 못 보겠다.
모바일폰에 대항하는 책의 시대가 끝났다는 타령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사랑하는 책은 꿋꿋하게 이 위기의 시절을 버티어 가고 있다. 수백년 전의 책들은 여전히 우리의 곁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지만, 80년대 초반에 등장한 플로피 디스크를 읽어낼 수 있는 컴퓨터는 이제 더 이상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정전이라도 된다면, 그 현란한 정보 검색과 숱한 기능을 자랑하는 이북을 필두로 한 전자기기들은 모두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라는 게 현자의 고언이다. 우리가 신주 단지 모시듯 떠받드는 CD나 엄청냔 대용량을 자랑하는 USB도 마찬가지란 말씀. 나만 하더라도 오래 전 100메가 짜리 ZIP 디스켓이나 1기가 짜리 재즈 드라이브가 출현했을 때 얼마나 경이롭게 느꼈던가. 지금은 손톱만한 사이즈의 USB들이 그 이상의 저장 용량을 자랑한다. 앞으로 저장 매체 기술의 진보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이 될 것이 분명하다. 다만 저장된 정보의 유용성과 유효기한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는 점도 에코 선생은 예리하게 지적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 에코 선생은 인터넷을 타고 퍼지는 가짜 뉴스들에 대해서도 경계하라는 말씀을 잊지 않는다. 예전에는 주변의 지인들에게 전파하는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범지구적 차원의 가짜 뉴스가 횡행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은 팩트 체크에 좀 더 신중하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아니 그런데 그런 팩트 체크를 담당해야할 언론이 나사서 투박한 스타일로, 자신이 예전에 썼던 기사에도 반하는 가짜 뉴스들을 앞장서서 전파한다면? 그야말로 쉬르리얼스틱한 현재가 아닌가?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그런 ‘미친 세상’일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에코 선생은 우리가 숱하게 읽어대는 책들에 대해 우리가 책장을 덮자마자 잊는다는 점에 대해서도 언급해 주었다. 나같은 책쟁이에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말인지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는 무당파의 대사부 장삼봉 앞에서 신묘한 태극권을 연마하는 장무기 같은 선수들일 뿐이다. 읽고 상상하고 잊어라. 그러다 보면 구원에 도달할 지도 모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