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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싱 대디
제임스 굴드-본 지음, 정지현 옮김 / 하빌리스 / 2021년 1월
평점 :
처음 들어보는 작가의 책, <댄싱 대디>를 만났다. 새로운 작가 만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영국 맨체스터 출신의 제임스 굴드-본은 지금은 리투아니아에 산다고. 보어드판다라는 웹사이트에서 일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거기서 무슨 일을 했나 그래. 사실 작가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다. 그러니 작품이 집중하는 수밖에.
우리의 주인공은 대니 머룰리다. 나이가 28세였던가. 십대 시절 아내 리즈와 불장난으로 아들 윌리를 얻게 됐다. 꼬마 윌리는 어느새 11세가 되었고, 14개월 전인가 1년 전에 엄마 리즈는 교통사고로 하늘나라로 갔다. 아들 윌리는 리즈가 하늘나라로 간 다음, 선택적 함구증에 돌입했다. 세상과 대화를 거부한 것이다. 이제 대니에게 남은 사람은 아들 윌리 밖에 없는데...
설상가상이라고 대니는 4년간 일하던 공사장에서 잦은 지각 때문에 짤렸다. 당장 먹고 살 길이 없다. 악랄한 집주인 레그는 대니 부자 쫓아내기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숱한 기회가 있었지만, 대니는 변변한 기술조차 배우지 않았다. 그냥 건설 현장에서 허드렛일만 해오면서 살았기 때문이다. 제법 잘하는 일이지만,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대니가 아니더라도 비슷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널렸다는 냉혹한 노동현장의 현실 앞에 우리의 싱글 대디는 좌절한다.
그러던 어느 날, 공원에서 거리공연하는 이들이 제법 많은 돈을 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대니. 자, 바로 이거였다! 별다른 기술도 없는 이들이 저렇게 많은 돈을 땡기는데 나라고 못할소냐. 코스튬 가게에 가서 그야말로 피같은 돈을 들여 판다 코스튬을 골랐다. 역한 냄새가 나는 탈바가지를 쓰고 쭈뼛쭈뼛 공연에 나서는 대니. 참고로 타고난 댄서였던 죽은 아내 리즈와 달리 대니는 몸치에 가까운 캐릭터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내가 죽기 전에 먹고 살기 위해 춤이라도 배웠어야 했는데. 말하지 않는 아들과 좀 더 살가운 관계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렇다 소설 <댄싱 대니>는 지나간 시절에 하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의 이야기다. 우리가 시간을 되돌릴 수 없듯이 그렇게 묻혀진 시간 속에 잘못된 일들을 바로잡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다. 공원에서 마크 일당에게 시달리던 윌을 판다곰 탈을 뒤집어 쓴 대니가 도우면서 아빠와 아들간의 정상적 관계가 아닌, 말하지 않는 판다곰과 세상풍파에 시달리는 소년의 기묘한 우정이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윌리가 판다곰이 자기 아빠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또 하나의 파국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쨌든 대니는 공원에서 얼치기 춤을 추는 판다곰으로 위장해서 아들과의 관계회복에 나선다. 그리고 버스 안에서 우연히 만난 폴 댄서 크리스털의 도움을 얻어 거리공연에 필요한 댄스 기술들을 수련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대니와 윌리가 겪고 있는 경제적 문제들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 짜잔하고 제시되는데, 그것은 바로 1만 파운드의 상금이 걸린 거리공연 배틀이다. 그러니까 대니가 안무가 크리스털의 도움으로 배틀에서 우승하기만 한다면, 한 숨 돌릴 수 있게 될 것이고 뒤이어 새로운 삶의 무대가 열릴 것이다. 과연 대니의 플랜대로 소설이 전개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끝까지 읽어 보시라.
사실 소설 <댄싱 대디>의 내러티브는 기본적으로 간단하다. 소설을 보다 다채롭고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건 바로 캐릭터들과 제임스 굴드-본 작가가 곳곳에 녹여낸 사회 경제적 이슈들이다. 어떤 일도 독고다이 주인공의 힘만으로 가능하지 안다. 더더군다나 대니 같이 아무런 무능력한 사람이라면 더더욱. 아무런 기술과 자본 없이 냉정한 자본주의 3.0 시대에 내동댕이쳐진 싱글 대니 아니 싱글 대디에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일자리 구하기도 그랬지만, 거리공연 자체가 그랬다.
우선 합법적으로 거리공연에 나서기 위해서는 허가증이 필요했다. 그런데 문득 우리나라 버스킹에도 허가증이 필요한 지 궁금해졌다. 대니는 당장 돈이 필요한데, 허가증을 정식으로 발급받으려면 시간이 없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뿐이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구하는 것. 여기서 저자가 준비해둔 공사 현장의 동료 우크라이나 사람 이반이 등장한다. 이반은 소설의 엔딩에서 크게 한몫하는 캐릭터다. 그러니 기대하시라. 게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현장에서 자신을 구해준 대니에게 참으로 서윗하게 자신의 아내를 팔아 대니 부자에게 맛난 호두파이를 구워 주기도 한다. 이반은 참으로 멋진 의리남이 아닐 수 없다.
다음 도우미는 크리스털이다. 내가 붙인 부제목이 <아빠는 춤추는 판다곰>이다. 그렇다면 몸치인 대니가 아내가 좋아하던 <더리 댄싱>을 비롯한 뮤지컬에 가까운 음악 영화들을 섭렵하면서 몸에 리듬감을 익혀야했다. 이건 그냥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대니에게 최선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 다음 레벨인 거리공연 배틀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문가에 가까운 선수가 필요했고, 이번에도 역시 예비해둔 폴 댄서 크리스털이 출격한다.
우리는 대니 부자가 거리공연 배틀에서 환상적 공연으로 우승을 한다 하더라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대니 부자의 삶이 극단적으로 바뀌어야 했다. 그래서 제임스 굴드-본 작가는 대니 부자에게 거리공연 배틀의 우승 대신, 특히 대니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 이걸 까면 스포일러의 완성이니 역시 엔딩을 기대하시라.
<댄싱 대디>의 스토리라인과 전개는 노련한 독자의 예상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는 비교적 안정적인 방식을 추구한다. 하긴 평범함 속에 언제나 진리가 있는 법이지. 소설을 다 읽고 나니, 이 소설에서 굉장한 모티프를 제시해 주는 영화 <더리 댄싱>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뭐 그렇게 가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