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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
뤼시앵 페브르 지음, 김중현 옮김 / 이른비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몇 년 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종교개혁에 대한 책을 읽어야지 싶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그 계획은 꼴랑 한 두어권의 관계 서적을 읽는 것으로 끝났다. 그렇다고 예의 프로젝트를 포기한 건 아니다. 계속해서 종교개혁의 선전포고를 맡았던 루터나 다른 저작들을 사 모으고 있으니깐.
오늘 새벽에 잠깐 일어나서 서가를 둘러보는데,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던 뤼시엥 페브르의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이 눈에 들어왔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첫 장을 넘겼다. 이건 뭐 거의 충격이었다.
뤼시앵 페브르는 알다시피 마르크 블르호와 함께 아날 학파의 창시자다. 그는 철저하게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문제적 인간 마르틴 루터를 분석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신학에 대해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루터나 종교개혁 관계의 책들을 비종교인들이 본다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지 그 점이 나는 오래 전부터 궁금했다.
도대체 솔라 피데(sola fide)니 칭의론이니 하는 전문적인 신학 용어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라고. 하긴 종교인 행세를 하는 이들도 거의 그 난해한 문제들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대해 지난 수백년간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지 않았던가.
페브르 저자는 티롤 출신의 데니플레 신부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일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사에서 출발해서 비텐베르크의 신학 교수 그리고 종교개혁가로 거듭나게 되는 인간 루터의 본질을 추적한다. 철저하게 자신의 마음의 평화, 구원을 원하는 수도사/연구자가 어떻게 해서 종교개혁의 선봉에 서게 되었는지 그리고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가톨릭 교황주의자들과 타협을 원하던 루터에게 응답한 이들이 그가 원하던 교황주의자들이 아닌 독일 민중이었다는 점도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페브르가 루터 신화주의에 매몰되지 않고 가감 없이 학자로서 진짜 루터가 어떤 인물이었는지 그가 어떻게 해서 시대정신의 상징이 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정말 매혹적이다. 이러니 책을 읽지 않을 수가 있나 그래.
지금 1/5 지점을 넘기고 있는데, 루터가 고행이나 선행을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는 사실은 참으로 대단했다. 1521년 보름스 회의에서 목숨을 걸고, 황제 앞에서 양심선언한 점도. 가히 근대의 출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싶다. 에라스무스 못지 않은 위대한 인문주의자의 발견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