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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세계사 ㅣ 보르헤스 전집 1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음, 황병하 옮김 / 민음사 / 1994년 9월
평점 :

도대체 언제 샀는지도 모를 그런 보르헤스 전집 시리즈 첫 번째를 읽기 시작했다.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 게 아니다. 기존에 있던 이야기들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창조해냈다. 제목에 등장한 불한당이란, 땀을 흘리지 않는 건달을 말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들은 바로 서부 개척시대를 장식했던 빌리 더 키드 그리고 일본에서 지난 삼백년 간 줄창 우려먹었다는 <주신구라> 스토리를 제공한 기라 고즈케노스케다. 아, 한센병에 걸린 무슬림 이단자도 있었는데 원체 잘 알려지지 않은 캐릭터라 보르헤스의 저술만으로는 평가하기가 좀 그렇더라.
십대 시절부터 살인 저지르기를 밥 먹듯이 했다고 하는 전설의 총잡이 빌리 더 키드. 뉴욕 출신으로 모두가 꿈꾸던 서부로 갔던 모양이다. 미국 건국 후, 모두가 자리를 잡고 자본가 계급이 귀족층이 되어 가던 시절 서부 개척은 가지지 않고 없는 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그런 엘도라도였다. 게다가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서 금이 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나도 그런 기회를 놓칠 수 없지 하고 서부로 달려간 것이다. 문제는 그 서부에는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고 그들과의 분쟁은 시간문제였다.
마침 어제 에리크 뷔야르의 <대지의 슬픔>을 읽어서 그런 진 몰라도 희대의 불한당 빌리 더 키드, 혹은 빌리 해리건의 이야기가 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런 느낌이랄까. 14살 때부터 살인을 시작한 카우보이는 멕시코인들은 제외하고 공식적으로 21명이나 죽였다던가. 아무리 무법천지의 서부라고 하지만 빌리 더 키드의 운명 역시 교수대행이었으리라. 결국 보안관 팻 개릿에게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 받았지만, 탈출에 성공했다. 그의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뉴멕시코의 포트 섬너에서 매복 중이던 팻 개릿의 총에 한 시대를 주름잡은 불한당은 고작 21세의 나이에 저승길에 올랐으니 말이다.
빌리 더 키드의 경우에는 그나마 서구 문명권이라 그렇지만, <주신구라>의 경우에는 좀 엉망인 게 사실이다. 1701년부터 3년에 걸쳐 겐로쿠 아코 사건으로 알려진 아코번의 젊은 다이묘 아사노 다쿠미노카미의 할복 사건과 그를 따르던 가신들이 사건의 원흉이자 보르헤스가 불한당으로 꼽은 기라 고즈케노스케를 살해한 사건을 철저하게 이방인의 시선으로 해석해낸다. 게다가 보르헤스가 원전으로 삼은 텍스트도 미트포드라는 영국 출신 작가의 저술이었다. 정말 포스트모더니즘다운 설정이 아닌가.
역자는 일부러 원서(?)에 나온 대로 표기를 한 것인지 사쓰마를 사수마로, 고즈케노스케를 고수께 노 수께로 표기하는 패기를 보여준다. 복수극의 중심인물인 아사노의 가로 오이시 구라노스케의 이름에 통일을 기하지 않는 건 차라리 애교에 가까울 지경이다. 개인적으로 <주신구라>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치주의를 표방하면서도 여전히 무를 숭상하는 사무라이들이 사회의 지배계급이었던 에도 막부의 이중성이 배후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그놈의 기리[義理]를 지키기 위해 자신과 다른 사무라이들의 모든 것을 판돈으로 건 오이시 구라노스케가 구상한 주군에 대한 복수극이 아사노를 죽음으로 이끈 막부에 대한 외통수였다는 설이 가장 흥미로웠다. 아무래도 <주신구라>에 대한 책을 한 번 구해서 읽거나 드라마를 보거나 해야지 싶다. 직접 봐야 실체를 알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자기 동네에서는 한다하는 칼잡이로 소문난 로센도를 찾은 일명 “새장수” 에피소드도 흥미롭다. 그들의 세계에서 그런 허명은 때려잡아야 한다는 걸까. 새장수는 로센도가 활약하는 동네에 들러 한판 대결을 신청한다. 그런데 로센도는 비겁하게도 대결을 피하고, 칼잡이로서 명예와 자신의 여자까지도 빼앗긴다. 그리고 조용히 사라져 버린다. 그런데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전리품을 챙겨 떠난 새장수는 누군가의 칼에 맞아 비명횡사한다. 위세 등등하던 시절에는 끽소리 못하던 이들이 죽은 새장수를 약탈하는 장면이다. 난 왜 이 장면에서 역발산기개세를 자랑하던 초패왕 항우의 마지막이 생각났는지 모르겠다.
<기타 등등>에 나오는 멜란히톤은 아마도 루터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하던 신학자로 보이는데 독자가 과문한 탓에 감흥이 별로 오지 않더라. 톰 카스트로 같은 캐릭터도 마찬가지였다. 자꾸만 마틴 스코시즈의 <갱스 오브 뉴욕> 생각이 나던데,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지도 모르겠다. 예전 같은 열정이라면 리서치도 해보고 그럴 텐데 이제는 다 귀찮다. 아마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
<불한당들의 세계사>가 작가가 30대에 쓴 책이라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아직 작가적 원숙미에 오르지 않은 시절의 작품이 아닐까 싶다. 보르헤스가 다루고 있는 이야기들이 전혀 새로운 게 아니다. 예전에 어디선가 한 번 쯤은 들어본 혹은 기존에 있었던 일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다시 쓴 것이다. 하긴 언제 세상 아래 새로운 것들이 있었던가.
오랫동안 보관만 하다가 결국 읽게 된 보르헤스의 책이었는데 기대를 많이 해서 그런지 어쩐지 좀 실망스러웠다. 최근에 다시 나오고 있는 새로운 책들을 읽어야 하나 어쩌나 싶기도 하고. 번역도 그렇고, 오탈자가 어찌나 많은지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다들 대가라고 칭송하는데, 한 번에 실망해서 읽지 않거나 그런 것도 좀 그런데... 어째야 하나 고민 중이다. 어쨌든 나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도서관에서 <주신구라>나 빌려다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