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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트우드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67
주나 반스 지음, 이예원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0월
평점 :

고백한다. 주나 반스의 기념비적이라는 모더니즘 소설 <나이트우드>를 읽기 전에 윤조원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않았다면 가뜩이나 이해가 어려운 이 소설을 포기해 버렸을 것이다. 사실 이번에 세 번째다. 지난달 초에 책을 사서, 세 번만에 다 읽었다. 물론 시도를 거듭할수록 진도는 더 나갔지만, 나의 책에 대한 이해는 더 나아지지 않았다. 그저 <나이트우드>를 다 읽었다는 것 하나만으로 만족하고 싶다. 지금은 적어도.
소설 <나이트우드>에는 네 명의 주요 인물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 선수는 가짜 남작 펠릭스(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폴크바인, 그의 부인 바로니 로빈 보트, 로빈을 그야말로 죽도록 사랑하는 노라 플러드 그리고 또다른 연인 제니 페더브리지다. 아, 정말 중요한 선수 한 명을 빼먹었다. 무면허 의사이자 밤의 제왕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매슈 오코너. 그가 없었다면 소설은 아예 진도가 나가지 않았으리라.
소설은 사랑과 죽음을 비롯한 삶의 모든 분야를 다룬다. 모더니즘 소설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이며 동시에 아무 것도 아닌 그런 이야기들이 독자의 이해 영역을 마구 헤집어 놓는다. 베를린과 파리, 빈 그리고 뉴욕을 넘나드는 밤의 주인공들은 우리의 고민해결사 돌팔이 의사 매슈 오코너에게 모든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나에게 밤은 어떤 시간인지 묻는다. 나에게 밤은 사유의 시간인 동시에, 책을 읽기에 너무나 좋은 시간이다. 밤에 지펴지는 어둠은 사유를 위한 완벽한 조명이 아닐 수 없다. 밤은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그런 시간이며, 내가 맺고 사는 관계에 대해 되짚어 보게 해준다. 밤이 그런 생각의 시간이라면, 낮은 정리된 생각들을 실행하는 그런 시간이라고나 할까.
<나이트우드>에서 무언가 액션이 이루어지는 그런 서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주인공들 간에 벌어지는 애증의 관계, 집착에 대한 해설과 의미 부여는 우리의 수다꾼 매슈가 도맡아서 해결해 준다. 겉으로는 화려한 시절이지만, 등장인물들은 하나 같이 상실이라는 깊게 베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돌팔이 의사를 찾는다. 밤이라는 시간과 돌팔이 의시가 그야말로 끝없이 늘어놓는 수다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니 그의 두서없이 펼쳐지는 수다 가운데,이미 우리가 기대한 해결책이 숨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주나 반스가 구사하는 다이얼로그에 명징한 해답을 기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굳이 모든 걸 이해하려고 애쓰지 마라, 강의 어디선가 만난 윤조원 교수님의 일갈은 나에게 그야말로 한줄기 빛이었다.
내가 읽어 내리는 문장들을 굳이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문장으로 치환된 주나 반스 작가의 내면화된 세계, 혹은 상실감 같은 감정들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더욱 갑갑할 수밖에 없다. 아니 이러다 나는 영영 모더니즘 소설과는 담을 쌓고 살 게 되는 게 아닐까? 두려우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스치고 간다. 또 다른 모더니즘 걸작이라는 <제노의 의식>도 고이 모셔 두었는데, 아예 읽지도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휩싸인다.
개인이 맺는 관계는 모두 상대적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펠릭스보다 더 ‘방황하는 유대인’에 가까운 로빈의 심리는 어떻게 파악해야 할까.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오로지 자식을 재생산하기 위해 미국인 로빈을 배우자로 맞은 ‘행운아’의 아들은 성직자가 되겠다고 선언한다. 행운아의 아버지는 가짜 귀족행세를 하는데 공을 들인다. 이제는 끝장나 버린 신분제 사회의 끝자락에 대한 미련이라고 할까.
솔직히 말해서 로빈과 노라 그리고 제니 사이에 전개된 삼각관계에 대해서는 작가가 구사하는 감정선을 따라가지 못했다. 다만 그들이 중계인으로 등장하는 젠더퀴어 매슈 오코너의 역할은 흥미로웠던 것 같다. 아마 그가 없었더라면 나는 <나이트우드>를 억지로라도 끝까지 읽지 못했으리라. 이해를 하지 못하면서도 끝까지 읽는 건 또 무언가. 매슈 오코너의 지휘 아래, 아무리 공감을 시도해 봐도 명징하지 않은 서사 가운데 내밀한 은유와 상징들을 잡아내기란 나에게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악전고투 끝에 <나이트우드>를 다 읽는 것으로 3월의 대미를 장식하게 되어 기쁘다. 윤조원 교수님의 <나이트우드> 강의를 다시 한 번 들어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