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튤립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68
알렉상드르 뒤마 지음, 송진석 옮김 / 민음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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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에 축약본으로 된 알렉상드르 뒤마의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었다. 아마 영화로는 <여왕 마고>로 알려졌었지 싶다. 영화도 봤다. 뒤마의 <삼총사><몬테크리스토 백작> 그리고 <여왕 마고>1844년 그리고 6년 뒤에 <검은 튤립>이 발표되었다. 나폴레옹 시대 혼혈 장군으로 무용을 떨쳤던 부친을 둔 뒤마는 통속소설 작가로 그동안 저평가 되어 오다가 2002년 팡테옹으로 묘를 이전하면서 비로소 프랑스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의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통속소설이 어째서?

 

<여왕 마고>에서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는 낭만주의 역사소설의 대가다운 솜씨를 <검은 튤립>에서도 유감없이 발휘한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우리나라 무협지 같은 그런 재미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까. 실제 있었던 1672820일 헤이그에서 있었던 드 비트 형제의 끔찍한 살육에서 시작해서 꽃을 사랑하는 홀란트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던 검은 튤립을 얻게 되는 일단의 과정에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그의 작품들에서 일관되게 관통하는 주제인 탐욕에 대한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홀란트의 실질적인 지배자였던 오라녜 가문의 빌렘 3(영어식으로는 윌리엄)은 약관의 나이로 순수한 공화정을 주장해오던 코르넬리스와 얀 드 비트 형제를 죽음의 구렁텅이에 몰아넣고 이웃의 강적 부르봉 왕가의 프랑스를 상대로 한 전쟁을 도모한다. 지난 세기 해양강국으로 군림했던 홀란트의 미래는 영국과 프랑스 연합을 상대로 한 경쟁에서 도태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부르주아 시민들은 경쟁국들을 제압할 수 있어 보이는 강력한 군주정을 원했고 22세의 빌렘 3세는 순수한 공화주의자 드 비트 형제를 제물삼아 권력 강화에 나선다. 드 비트 형제들의 죽음은 왠지 로마 공화정 시대의 그라쿠스 형제를 연상시킨다.

 

그렇게 소설의 1/3 가량을 당시 정국과 상황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나면 비로소 진짜 주인공인 코르넬리우스 판 바에를르가 등장한다. 부유한 상인 집안 출신의 코르넬리우스는 의사(첫번째 직업)이자 박사로 신실한 기독교도(신교도)의 모범과도 같은 사나이다. 코르넬리우스의 부친은 돌아가시면서 최대한 행복을 추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지. 그가 가진 유산과 지적 재산은 그럴 수 있을 만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작자가 그렇게 우리의 주인공 코르넬리우스를 행복하게 둘 리가 있나 그래.

 

신문연재를 하면서 다져진, 요즘 표현으로 하자면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일일드라마의 영속성을 뒤마는 일찍이 깨달았던 모양이다. 자신이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능력으로 신속한 전재와 피와 살이 튀는 그런 유혈극을 필두로 해서 소설 <검은 튤립>은 달려가기 시작한다. 뒤마에게는 이건 뭐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가 없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던 모양이다. 독자에게 그 정도는 유추할 수 있지 않나하는 도발적인 유머까지 곁들이며 몰입하게 만든다.

 

이런 막장 드라마에 악당이 빠지면 안될 것이다. 코르넬리우스의 이웃에 사는 이작 복스텔(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유대인으로 추정된다)이라는 희대의 악당을 배치해서 주인공을 고통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역할을 맡긴다. 이 시샘과 질투의 화신은 당시 홀란트를 열광 속에 몰아넣은 취미 활동이었던 튤립 재배자로, 마치 자신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모차르트를 질투하던 안토니오 살리에리처럼 코르넬리우스의 중대한 도전을 철저하게 방해한다. 그렇다면 그의 도전이란 무엇이냐? 바로 하를럼의 원예협회장이 제시한 희귀한 검은 튤립을 만드는 것이었다. 게다가 상금 10만 플로린이라는 거금까지 걸렸으니, 홀란트의 모든 튤립 재배자들이 도전에 나섰다.

 

, 이제 모든 준비가 완성되었다. 한편, 코르넬리우스는 자신의 대부 코르넬리스가 남긴 비밀편지를 맡아 두었다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복스텔의 무고로 반역자로 몰려 투옥되고 재판과정을 거쳐 사형대에 오르게 된다. 하지만 관대한 청년 군주 빌렘 3(혹은 오렌지공)의 사면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지고,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미래의 검은 튤립이 될 세 개의 소구근을 간수 흐리푸스의 딸 로자의 도움으로 구하게 된다. 아하, 로자와의 로맨스가 이어지리란 것을 명민한 독자들은 예측했으리라. , 이제 중대한 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을 수감한 뢰베슈타인으로 이송된 코르넬리우스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뒤마가 구사한 낭만주의 역사소설 <검은 튤립>은 요즘 쓰인 소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서스펜스와 재미 그리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백미다. 전작 <여왕 마고>에서처럼 자신이 특정 인물에 대해 설정한 소설 전개상의 드라이브가 어쩌면 약점으로 지적될 지도 모르겠다. <여왕 마고>에서 카트린느 메디치가 그랬던 것처럼, 이중적 속성을 지닌 청년 오렌지공에 대한 묘사가 그렇다. 초반의 묘사처럼 오렌지공이 권력의 화신이라면, 굳이 코르넬리우스를 사면하고 신원할 필요가 없을 텐데 이 영명한 군주는 비교적 공정하고 관대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이 창조한 게 아닌 타인의 것(검은 튤립)을 탐욕스럽게 갈구하는 악의 화신 복스텔의 집요한 음모와 탈취 계획은 또 어떤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코르넬리우스가 죽건 말건 상관없고 오로지 타인이 누릴 명예와 부를 가로채기에 혈안이 된 한 부르주아의 초상은, 소설 초반 등장해서 드 비트 형제를 도륙한 부르주아 군중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소설 쓰기에 일가견이 있는 19세기 대가는 코르넬리우스와 로자 그리고 검은 튤립 사이에 세밀하게 벌어지는 일종의 삼각관계에서도 대단한 심리묘사를 보여준다. 간수의 딸이자 문맹인 처녀 로자는 인도적인 차원에서 드 비트 형제와 코르넬리우스를 돕지만, 또 한편으로는 자신이 사랑할 수 없는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비련의 여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리고 코르넬리우스의 아바타처럼 자유인으로 검은 튤립을 창조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물론, 자신보다 검은 튤립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인 코르넬리우스에게 때때로 냉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 게 바로 이렇게 쪼는 연애소설의 핵심이 아니던가.

 

<카트린느 메디치의 딸>을 읽을 적에도 그랬지만, 알렉상드르 뒤마가 역시나 대단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팡테옹에 가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그의 무덤에 헌화라도 했을 텐데 뭐 그런 아쉬움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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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0-02-23 20: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 재미있을 것 같아요. 뒤마의 소설 중 가장 좋았던 책 한 권 추천해 주세요. 시작해보렵니다.

레삭매냐 2020-02-23 21:51   좋아요 0 | URL
<여왕 마고> 작년에 소개된 <카트린 메디
치의 딸>을 추천해 드리고 싶으나 축약본
이라 어떨실 지 모르겠습니다.

<삼총사>와 <몬테크리스토백작> 말고는
국내에 출간된 책이 거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