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탄광
진 필립스 지음, 조혜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쇼킹한 장면으로 시작되는 진 필립스 작가의 <우물과 탄광>을 만났다. 어느 여인이 앨버트와 리타리 그리고 버지와 테스, 잭이 사는 무어 씨네 집 우물에 아기를 버리고 도망간 사건으로 소설은 시작된다. 어때 충격적이지?


그런데 소설은 누가 그리고 왜라는 영아 유기 사건의 핵심 주제보다 무어 씨네가 살고 있는 앨라배마 카본힐이라는 동네의 고단한 삶에 방점을 찍고 있다. 때는 1931년. 대공황의 여파가 다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탄광촌 마을 카본힐의 삶은 신산하기만 하다. 갤러웨이 탄광의 감독관으로 가족에 대한 뜨거운 열정으로 오늘도 막장에 내려가 탄을 캐는 앨버트의 사지는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 게다가 미래의 진폐증에 대한 기미도 보였던가. 순수한 노동으로 먹고 사는 이들에 대한 작가의 스케치가 반가웠다.


테스와 버지가 누가 아기를 버렸는지를 추적하는 동안 전개되는 카본힐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 생각해 보면 아득한 시절에 대한 향수 혹은 추억으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의 어머니 리타리는 빵 만들기 선수다. 그리고 잠시도 쉬지 않고 빨래와 식사 준비, 병조림 만들기 등의 가사노동으로 도무지 쉴 틈이 없다. 어떤 경제학 박사는 세탁기가 현대 여성들의 가사노동을 절감시킨 최고의 현대 물물로 꼽은 것 같은데 석탄 채광 도중에 찌든 앨버트의 빨래감을 삶고 헹구고 너는 리타리의 모습에서 고단한 삶의 향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한편 소녀 탐정 테스와 버지의 추적은 멈추지 않는다. 독자들은 진 필립스 작가가 인도하는 대로 카본힐 사람들의 삶의 구석구석을 체험한다. 아이들은 수 차례에 걸친 결혼으로 수많은 아이들을 낳은 엄마 리타리의 옛 친구기도 한 롤라 아줌마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롤라 아줌마네를 방문한 뒤 자신들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게 된다.


벌써부터 아름다운 숙녀 티를 내기 시작한 버지에게 달려드는 숱한 소년들의 구애 과정에서, 교회에서 집에 오는 동안 에스코트하기 위해 아빠 앨버트에게 허락을 구하는 장면에서는 1930년대 보수적인 남부 지방의 특색을 엿볼 수도 있었다. 소녀는 훗날, 동생 잭이 트럭에 치는 교통사고로 대도시 버밍행의 병원생활을 하는 동안 알게 된 간호사들을 지켜 보면서 자신도 결국에는 대처에 나가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기도 한다. 그렇지 모름지기 사람은 그렇게 성숙해져 가는 법이지.


우물 영아유기 사건이 소설의 하나의 축이라면 또 하나의 축은 남부 지방의 극심한 인종차별이다. “경건한 사람”의 대표 주자인 앨버트는 탄광 동료인 흑인 조나에게서 자기집 우물 사건에 대한 색다른 의견을 듣게 되면서, 그를 다른 눈으로 보기 시작한다. 물론 적극적으로 흑인들과 함께 사는 삶에 대한 행동에 나서진 않았지만(아직 흑인 민권운동이 시작되려면 한 참 더 시간이 필요했다), 타인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조나를 자신의 동료로 인식하고 저녁 초대를 하는 작은 행동을 시작한다. 물론 언제나 자신의 뜻을 존중해 주었던 아내 리타리의 반대가 있었지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앨버트. 아들 잭의 교통사고로 75달러에 달하는 병원비를 갚기 위해, 추가 노동을 하는 장면에서는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은 한 가정을 이끌어 가는 가장의 고단한 삶을 볼 수가 있었다. 물론 리타리 역시 그런 남편을 이해하고 그야말로 무릎이 닿도록 가사에 전념하는 장면도 마찬가지였고. 지금의 기준으로 본다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물과 탄광>은 버지와 테스 그리고 잭 삼남매의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시골 마을  카본힐에서 자란 삼남매가 어떻게 세상을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게 되는지 진 필립스는 느린 속도로 차분하게 관조한다. 당시의 판단 기준으로 아버지 앨버트는 딸들을 단도리하고, 아들 잭의 교통사고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처한다. 자녀 교육에 있어 그게 옳은지 아닌 지에 대한 판단은 아마 부모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일까. 결말에 등장하는 작은 구원의 메시지 그리고 아이들이 지닌 트라우마로부터의 해방도 좋았다. 그렇게 가는 거지.


내가 <우물과 탄광>을 읽으면서 퍼 올린 메시지는 타인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기 그리고 세상을 바꾸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는 언제나 부족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 선뜻 행동에 나서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일 뿐. 진 필립스의 소설 데뷔작이기도 한 <우물과 탄광>에서 우물 영아유기 사건에 대한 결말은 좀 싱거웠다. 아무래도 초보 작가가 두 세대에 걸친 방대하면서도 다채로운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전개 설정에 있어 성급하게 결말을 낸 게 아닐까 싶다. 진 필립스의 이전에 나온 <밤의 동물원>도 한 번 읽어 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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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22598 2020-01-31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재밌을 것 같아요. ^^ 리뷰 감사해요 :)

레삭매냐 2020-01-31 08:44   좋아요 0 | URL
책은 아주 재밌답니다. 스릴러와 1930년대
미국 사회에 대한 스케치의 조합이라고나
할까요.

동시에 성장소설이기도 하고 구원에 대한
메시지도...